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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산책로 원픽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산책로를 선별했다. 기꺼이 지갑을 열고 거뜬히 두 다리를 움직일 만한 명소들이다.

Editor 장새론여름
Photographer 김재이, 한국관광공사

숲 그 푸르름 속으로, 부산 아홉산숲

“여기에 오니까 부산 여행 다 한 것 같다.” 산책 막바지에 앞선 여행객이 말을 흘렸다. 동행이었다면 분명 호들갑을 떨며 맞장구쳤을 것이다. 강릉 소나무보다 건장한 금강송을 마주하고, 담양 대나무보다 굵고 높은 맹종죽을 올려다보며 몇 번이고 전율이 일었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난생처음 보는 구갑죽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한다. 수 세기 공들인 자연은 인류의 명작 못지않게 감동을 준다. 아홉산숲은 남평 문씨 일가가 대대로 가꿔왔다. 덥고 가물 땐 아래에서 물을 끌어올려 숲을 적시고, 흙이 퍼석퍼석해질 때를 대비해 부산의 음식 쓰레기를 모아 발효해 퇴비를 만들어 뿌리며 정성껏 가꿨다. 일제강점기 송진 채취가 만연할 때 집안의 장물을 눈에 쉽게 띄는 곳에 숨겨놓아 숲 밖으로 관심을 끌었고 끝내 일본군으로부터 금강송을 지키기도 했다. 숲을 가꾸고 지켜온 역사는 무려 400년에 달한다. 방문객도 엄격히 제한해 불과 5년 전만 해도 전문가와 일부 예약자만 들였다가, 2015년 3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일일 방문객을 제한하기에 방문 전 예약을 권한다.

주소 부산시 기장군 철마면 미동길 37-1
문의 051-721-9183
홈페이지 www.ahopsan.com

바다와 육지의 경계 따라,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곳이 여기에도 있다. 산책로에 무슨 입장료를 받나 싶다가, 이 정도면 받아야지 하고 수긍하고 나온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정동진 썬크루즈호텔과 심곡항 사이 2.86km를 연결한 산책로다. 길이 없다면 들어설 엄두조차 못 냈을 자리에 산책로를 깔아두었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일대는 2,300만 년 전 지각변동 이후 변치 않은 모습을 오롯이 지닌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다. 과거에는 군사 지역으로 민간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으나 2016년 개방해 관광객을 받았다. 데크길은 곧지만 좌우 풍경은 거칠기 그지없다. 뾰족하고 갈라진 절벽을 스치듯 걷다가 바다 위를 건너고, 넓적한 바위를 오르내린다. 매끈하게 반짝이는 몽돌해변, 비장하고 위엄 있는 투구바위, 바다를 향해 부채처럼 펼쳐진 부채바위까지 유구한 시간의 작품이 길목마다 반긴다. 간혹 파도가 뿜어낸 포말을 미처 피하지 못해 옷자락이 눅눅해지기도 하는데, 바람골을 몇 번 지나면 어느새 빳빳하게 말라 있다. 아쉬운 점은 지난해 태풍으로 인해 심곡매표소~부채바위의 1km 구간이 유실된 점. 10월까지 복구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정동진 썬크루즈리조트 주차장의 ‘정동매표소’에서 출발해 부채바위를 관람하고 원점 회기하는 코스로 운영 중이다. 편도 1.8km가량, 왕복하면 넉넉히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군사 지역이기에 통제 시간을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입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 30분, 매표는 오후 4시 30분에 마감한다(4~10월 기준).

주소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헌화로 950-39(정동매표소)
문의 033-641-9444
홈페이지 searoad.gtdc.or.kr

잘 가꾼 정원의 가치, 배론성지

배론성지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된 가톨릭 성지다. 제천의 명소로도 이름나 있어 여행자도 즐겨 찾는다. 무채색 현대 건축물과 고즈넉한 고택이 공존하고, 연못과 시내가 나란히 자리한다. 야트막한 산자락이 배론성지를 감싸는데, 그 속에 로사리오의 길과 십자가의 길 등 아담한 숲길이 나 있다. 여행 후 일기장에는 ‘배론성지’ 한 곳만 기록해도, 사진첩에는 마치 열댓 군데는 다녀온 듯 다양한 장면을 남길 수 있다. 고요하고 고즈넉한 건축물, 알록달록하고 싱그러운 꽃나무, 투박하지만 정겨운 민속 유물이 자꾸 카메라를 들게 한다. 배론성지는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다. 이 일대는 1800년대 신유박해를 피해 천주교인들이 숨어들어와 정착한 터다. 1801년 천주교인 황사영이 토굴에 숨어 지내며 ‘황사영 백서’를 썼고, 1855년 프랑스 선교사 메스트로 신부는 한국 최초 서양식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당을 세웠다. 다채로운 풍경 너머 옛이야기를 만나는 묘미도 쏠쏠하다. 명상하듯 산책하기 좋은 곳으로 추천한다.

주소 충북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문의 043-651-4527
홈페이지 www.baer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