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 THEME

JOURNEY

JUL-AUG 2020

미스터리 시티, 런던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와 길게 드리운 그림자만이 특별할 것 없는 낡은 뒷골목을 배회한다. 한낮의 열기가 사그라진 거리 위, 런던에 얽힌 기이한 스토리가 스멀스멀 깨어나기 시작한다.

Writer 이은혜(칼럼니스트) Editor 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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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여름은 하루 종일 걷고 싶을 만큼 맑고 청량하다. 템스 강을 따라 여유롭게 걷다 타워 브리지 인근의 노천카페에 앉아 상큼한 핌스(Pimm’s) 칵테일을 홀짝이노라면, 마음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다. 달콤하고 상큼한 핌스는 런던의 여름과 동의어다. 약간의 알코올에 레몬과 오이, 민트, 딸기 등을 섞고 얼음을 동동 띄워 한두 모금 마시다 보면 한낮의 열기를 가볍게 물리친다. 마음 같아선 한량처럼 슬렁슬렁 도시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싶지만, 그러기에 런던은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웨스트민스터 궁전(국회의사당) 같은 랜드마크뿐만 아니라 휘황찬란한 그라피티와 예술 감각이 부유하는 쇼디치, ‘뮤지컬의 성지’ 웨스트엔드, 판타지 무비를 대표하는 해리포터 스튜디오까지 숨 돌릴 틈이 없다. 거기다 미스터리나 호러 마니아라면, 런던의 밤거리를 걸으며 도시에 얽힌 섬뜩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는 투어를 놓칠 수 없다. 낭만적인 런던의 야경이 조금은 으스스하게 느껴질 만큼 투어는 꽤나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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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의 비밀

마치 중세 시대의 탑을 연상시키는 타워 브리지는 런던 금융의 중심인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다. 우아한 고딕 양식의 이 다리는 템스 강에 놓인 다리 중 가장 아름답고 또 유명하다. 타워 브리지를 건너자마자 철옹성 같은 런던탑이 눈에 담긴다. 런던을 지키는 요새이자 궁전 그리고 형무소로 사용되다 지금은 왕실의 진귀한 보물을 전시 중이다. 방문객이 가장 즐겨 찾는 장소 역시 화이트 타워 북쪽에 자리한 크라운 주얼스(Crown Jewels)다. 국왕이 사용하던 왕관, 장신구 등이 즐비한데 그중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제작된 530캐럿 다이아몬드가 특히 눈부시다. 런던탑은 겉으로 보기엔 중세의 여느 고성과 다를 바 없지만 그 이면은 수세기 동안 왕실의 피비린내 나는 처형과 음모의 장소였다. 수많은 이들이 런던탑에 갇혀 생을 마감했는데,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이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앤 불린’이다.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헨리 8세와 결혼한 그녀는 간통과 근친상간 누명을 쓰고 참수당하고 만다. 억울한 죽음 때문인지 목이 없는 그녀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목격담이 전해온다. 런던탑 인근에는 공개 처형을 진행하던 악명 높은 단두대가 있었다. 지금은 런더너의 평범한 일상이 부유하는 트리니티 스퀘어 가든이다. 런던탑에 갇힌 대다수의 사형수들은 이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런던 시민들에게 단두대 처형은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웃돈까지 오갔을 정도라니, 지금으로서는 꽤나 오싹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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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을 누비는 유령 투어

어느 도시나 화려함 뒤에 짙은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런던 역시 마찬가지다. 런던의 역사는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도시의 역사가 말해주듯 온갖 고난과 궤를 같이했다. 1665년에는 흑사병이 돌아 당시 런던 인구의 25%에 달하는 10만 명이 죽었고, 1666년에는 대화재가 발생해 도시가 검게 불탔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대공습을 겪었다. 수많은 부침 속에서도 런던은 유적을 지키고 건물을 복원하며 도시를 재건했다. 수세기 전 사람도 쭉 이 도시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오늘날까지 도시는 옛 정취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어둠이 내려앉은 런던 거리는 고풍스럽다 못해 음침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유령 투어를 즐기기에 더없이 완벽한 무대가 아닐 수 없다. 런던 곳곳에서는 다양한 콘셉트의 밤 투어가 진행된다. 로맨틱의 결정판이 야경 투어라면 그 대척점에는 고스트 워킹 투어가 자리한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워킹 투어는 런던탑에서 출발해 세인트폴 대성당까지 가이드와 함께 역사적인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곳에 얽힌 섬뜩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반면 고스트 버스 투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비롯한 웨스트엔드, 템스 강 남쪽까지 유명한 장소들을 둘러보며 무서운 체험까지 즐길 수 있다. 음산함을 자아내는 클래식한 2층 버스는 장례차를 연상시킬 만큼 검은색으로 도배돼 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유적지에 얽힌 무서운 실화와 함께 유령의 궁전, 표시되지 않은 무덤과 같이 도시의 숨겨진 으스스한 장소도 안내한다. 오랜 세월 런던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연쇄살인 사건이라고 하면 잭 더 리퍼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런던 아트 신의 새로운 거점이자 트렌디한 명소로 거듭난 이스트엔드는 과거엔 슬럼가였다. 19세기 런던을 발칵 뒤집어놓은 잔인한 연쇄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지만 결정적 단서를 찾을 수 없어 많은 이들이 공포에 떨었다. 잭 더 리퍼 가이드 투어는 런던의 화이트 채플 지구를 걸으며 끔찍한 범죄 이야기와 살인의 증거 기록을 살펴보며, 마치 탐정처럼 과거의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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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탐정, 셜록 홈스

20세기 초, 영국의 추리소설 전성기를 이끈 장본인은 아서 코넌 도일과 애거사 크리스티다. 의사였던 아서 코넌 도일은 탐정의 표본이자 대명사로 불리는 셜록 홈스를 창조했고,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는 제인 마플과 포와로 탐정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후대에 전하며 영국인의 안방극장을 20년 넘게 추리 드라마로 채웠다. 추리소설의 계보는 세대를 뛰어넘어 첩보물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와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콘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필한 J. K. 롤링으로 이어졌다. 20세기에 이어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 역시 소설 속 주인공을 실존 인물인 양 애정을 쏟기도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셜록 홈스다.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고 비상한 추리력으로 미제 사건을 척척 해결하는 그에게 열광한 독자들은 셸로키언(Sherlockian), 홈지언(Holmesian)이라 스스로를 칭하며 팬을 자처한다. 방문객으로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 셜록 홈스 박물관은 소설의 주요 무대로 등장한 베이커가 221B 번지에 자리한다. 19세기 하숙집으로 사용되던 오래된 아파트를 개조해 소설 속 셜록 홈스의 집을 재현한 것이다. 심지어 실재하지 않는 주소인 221B마저 1930년 도로 정비를 통해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입구를 지키는 경찰 복장을 한 안내원을 지나 비좁은 내부로 들어서면 진짜 셜록 홈스의 집에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왓슨 박사와 머리를 맞대고 추리를 거듭하던 서재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품으로 가득하다. 한쪽에는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 설명과 함께 작가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소설에 등장한 24개의 에피소드 장면을 재현해, 문장으로 읽던 장면들이 실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박물관 1층의 기념품 숍에 들러 돌아본 후 걸어서 3분 거리에 자리한 셜록 홈스 동상에서 인증사진까지 남겼다면, 비로소 소설 속 세상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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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영혼, 웨스트엔드

시티 오브 런던이 금융 지구라면 웨스트엔드는 번화한 산업 지구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트라팔가 광장을 비롯해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영박물관, 옥스퍼드가와 코번트 가든 등 런던에서 손꼽히는 명소와 레스토랑, 호텔, 극장, 상점들이 웨스트엔드에 모여 있다. 런던의 심장부로 불리는 웨스트엔드의 중심가는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다. 빌딩 숲 사이 전광판이 불야성을 이루는 뉴욕의 타임스퀘어와 달리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는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오래된 건물과 어깨를 맞댄 채 쉴 새 없이 광고를 쏟아내는 대형 네온사인 광고판이 어색하면서도 이채롭다. 런던의 모든 길은 피카딜리 서커스로 통한다고 할 만큼 교통의 요충지인 탓에 도로는 늘 혼잡하고, 광장은 번잡하다. 이곳에서 다양한 음식점과 거리 공연, 상설 마켓 등 볼거리 다양한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까지 약 50개의 극장이 즐비하게 이어진다. 웨스트엔드는 세계적인 연극과 뮤지컬의 본고장이자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더불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산실이다. 뮤지컬은 런던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다. 누구나 한번은 들어봄직한 뮤지컬 대작들이 웨스트엔드에서 태동했다.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히는 <캣츠>,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이 모두 이곳에서 초연됐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은 스산하게 연주되는 파이프오르간의 도입부를 시작으로 남녀 주인공이 듀엣으로 부르는 넘버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으로 유명하다. 뮤지컬의 줄거리를 짧게 요약하면, 사고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가면으로 숨긴 괴신사가 아름다운 프리마돈나를 짝사랑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프랑스 추리 작가 가스통 르루가 1910년 발표한 소설을 영국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로 탄생시켰다. 웨스트엔드의 허 마제스티 극장(Her Majesty Theatre)에서 세라 브라이트먼과 마이클 크로퍼드 주연으로 1986년 초연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뮤지컬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비록 명성은 <오페라의 유령>에 미치지 못하지만, B급 감성의 컬트 뮤지컬 <록키 호러 쇼>와 영국식 공포 스릴러 연극 <우먼 인 블랙>도 런던의 뜨거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