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 THEME

JOURNEY

바이올린 선율 따라, 크레모나

자그만 공방 문틈 사이로 애달픈 바이올린 선율이 빠져나와 인적 드문 골목 위에 내려앉는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완성된 현의 울림이 천상의 메아리처럼 크레모나를 켜켜이 감싸 흐른다.

Writer 이은혜(칼럼니스트) Editor 방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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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에서 크레모나로 향하는 창밖으로 롬바르디아 평원이 펼쳐진다. 기차로 1시간 남짓 달려왔을 뿐인데 밀라노와 크레모나는 천양지차다. 소박한 정취가 반기는 이곳에선 관광지 특유의 혼잡함이나 부산스러움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장밋빛 벽돌로 쌓아 올린 소담한 도시는 한가로운 전원 풍경과 어우러져 여유롭기 그지없다. 달리 말하면 볼거리 없는 심심한 동네라는 뜻이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은 곳. 그래서 누군가에겐 당일치기 여행으로 충분한 곳이지만 클래식 애호가나 현악기 전공자라면 몇날 며칠을 머물러도 부족한 별천지다. 17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크레모나는 걸출한 루시어(Luthier, 현악기 제작자)를 배출해내는 현악기의 산실이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2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에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장인 정신이 등재되기도 했다. 바이올린의 토대를 확립한 아마티, 과르네리, 스트라디바리와 같은 명품 현악기 장인들이 대대손손 악기를 만들어온 곳이 바로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 크레모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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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의 탄생

모르면 따분하지만 알고 보면 비로소 진가를 찾는 법이다. 크레모나 역시 마찬가지다. ‘바이올린의 도시’를 여행하기에 앞서 바이올린의 역사를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다. 현대 바이올린과 비슷한 형태의 바이올린은 16세기 안드레아 아마티에 의해 탄생했다. 이후 바이올린 제작 기술은 자손으로 대물림됐고, 그의 손자인 니콜라 아마티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기존보다 견고하고 명쾌한 음향을 지닌 바이올린 ‘그랜드 아마티’를 제작해 아마티 가문은 바이올린 명가로 우뚝 서게 된다. 그리고 아마티는 위대한 제자들 덕분에 더욱 명성을 얻는다. 그의 공방에서 수학한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주세페 과르네리는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현악기의 명장이다. 그들의 명성 덕분에 덩달아 크레모나의 평판도 나날이 높아졌다. 스트라디바리는 오늘날 사용되는 표준형 바이올린의 창시자로,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하프, 기타, 비올라, 첼로 등 평생에 걸쳐 총 1,100여 점의 악기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전 세계에 약 600여 점이 남겨진 걸로 추측되며, 극소수의 악기만이 실제 연주에 사용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바이올린 안쪽에 라틴어로 ‘Antonius Stradivarius Cremonensis Faciebat Anno…(크레모나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년도에 만들다)’를 표식으로 남겼는데, 그리하여 그가 만든 악기를 스트라디바리우스라 부르게 된다. 특히 1698~1725년도는 그의 전성기 시절로, 1710년 이후 제작된 바이올린은 최고의 걸작으로 칭송받는다. 미국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은 “스트라디바리의 최상품은 연주회장이 아무리 넓어도 끝없이 퍼져나가는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를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같은 스승에게 배웠지만 과르네리의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모든 면에서 정반대다. 외형적으로는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날 만큼 거친 조각이 눈에 띄고, 소리 역시 남성적이며 드라마틱하다. 두 바이올린에 대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아무리 슬퍼도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이라면, 과르네리는 슬플 때 바닥에 앉아 통곡할 수 있는 농부와 같아 인생의 맛이 묻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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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음악이 하나 되는 곳

이탈리아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크레모나의 일상도 두오모를 중심으로 흐른다. 현지에선 두오모 광장으로 통하는 코무네 광장(Piazza del Comune) 주변으로 도시의 주요 볼거리가 한데 모여 있다. 웅장함을 자아내는 크레모나 대성당 양옆으로 하늘로 쭉 뻗은 종탑과 팔각형으로 지어진 예배당 건물이 수호하듯 자리한다. 12세기 초 짓기 시작해 15세기 완공된 크레모나 대성당은 크고 작은 지진 속에서도 꿋꿋하게 도시를 지켜오는 터줏대감이다. 긴 세월 동안 증축과 복원을 반복한 탓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여러 건축양식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아치로 이뤄진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천장을 뒤덮은 정교한 프레스코화가 압도한다. 신심 두터운 신자는 아니지만 고요한 분위기가 주는 장엄함에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 대성당을 빠져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듯 종탑으로 시선을 옮긴다. 높이 112m에 달하는, 오늘날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종탑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천문시계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도시 전경은 물론 드넓은 지평선이 한눈에 담긴다. 502개에 달하는 가파른 계단을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 같은 특권이다. 대성당을 등지고 돌아서면 고풍스러운 시청사와 광장을 바라보며 한갓지게 쉬기 좋은 카페와 식당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광장의 오후는 더없이 한가롭다. 볕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커피와 신문으로 소일하는 할아버지와 졸고 있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할머니, 서로의 안부를 묻는 주민들과 때때로 피어나는 웃음소리가 광장에 메아리친다. 마침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연주자가 긴 독백을 읊조리듯 서서히 바이올린을 켜자 소란은 잦아들고, 사람들은 발길을 멈춘 채 연주에 빠져든다. 크레모나에선 어느 길을 걷든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가 귓가를 맴돌고, 매일 밤마다 크고 작은 연주회가 일상을 위로한다. 우아한 기품이 돋보이는 폰키엘리 극장(Teatro Comunale Ponchielli)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도 종종 무대에 오르는 유서 깊은 오페라극장이다. 운이 따른다면, 이탈리아의 작은 소도시에서 행운 같은 공연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인 정신이 빚어낸 소리

도시는 눈길 닿는 곳마다 스트라디바리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벤치에 앉아 유심히 바이올린을 들여다보는 나이 지긋한 동상부터 박물관 수장고에 이르기까지, 크레모나는 바이올린의 도시이자 스트라디바리의 도시다. 코무네 광장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바이올린 박물관(Museo del Violino)은 바이올린의 역사와 장인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크레모나 대표 관광지다. 수십 아니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스트라디바리의 작품 중 유명한 ‘일 크레모네제(Il Cremonese, 1715)’를 비롯해 아마티, 과르네리 가문이 만든 바이올린과 첼로를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더불어 크레모나에서 명품 바이올린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주요 교역로였던 크레모나는 질 좋은 목재를 구하기가 수월했다. 여기에 악기의 내구성을 강화하고 방수와 병충해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바니시(도료)의 품질이 우수했다. 덥고 건조한 기후 덕에 도료가 잘 마르고, 바이올린을 구성하는 70여 가지의 부품에도 기후 조건이 적합했다. 그렇게 탄생한 현악기는 유럽 각지에서 명품 악기로 칭송받았고, 특히 황금기로 꼽히는 17~18세기에 만들어진 작품은 질 좋은 나무와 최고의 장인 기술이 접목돼 오늘날 평가받는 가치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바이올린 박물관 입구에서 한글 안내서와 영어로 진행되는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해 전시실로 향했다. 유명한 악기를 실제로 본다는 사실에 흥분이 고조됐지만, 정작 감동을 느낀 건 현대 악기 컬렉션을 둘러보며 각 악기의 연주를 들을 때였다. 크레모나에서 3년마다 열리는 ‘크레모나 트리엔날레 현악기 제작 콩쿠르’에서 수상한 악기 중에는 한국인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만난 반가움에 마음속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재 크레모나에는 100여 곳이 넘는 악기 공방이 운영되고 있다. 크레모나의 국제현악기제작학교에서 일정 수준의 기술을 익힌 학생들은 다시 지역 공방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기술을 연마하고 숙달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자신의 공방을 차린다.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공예는 철저히 장인 정신에 근거한 수공업 방식을 따른다. 일부라도 공장에서 가공된 재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모두 손으로 직접 성형하고 조립한다. 수세기 동안 스승과 제자의 손끝으로 전해지는 도제식 역사와 전통을 고수해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1년 생산량이 손에 꼽을 정도다. 코무네 광장 주변의 멋스러운 골목을 걷다 보면 수많은 공방과 마주친다. 좁은 공방에 앉아 내일의 스트라디바리 혹은 과르네리를 꿈꾸는 장인들이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만드는 풍경을 창문 너머로 엿볼 수 있다. 작업대에 앉아 나무를 깎고 다듬는 장인의 손놀림은 급하게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의 연주를 보는 듯하다. 흔쾌히 안으로 초대해 바이올린을 보여주거나 직접 소리를 들려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300년 역사를 품은 유리 상자 너머의 악기보다 이제 막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악기의 울림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크레모나에선 매일 새로운 소리가 탄생하고 시간과 함께 여물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