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 THEME

JOURNEY

자유를 찾아서, 프라이부르크

한때 누구나 당연히 누렸던 깨끗한 환경은, 이제 선택하고 노력한 이들의 권리가 되었다. 프라이부르크는 지난 세월 친환경 정책을 펼치며 기꺼이 애쓴 결과 세계에서 가장 청정한 도시가 되었다.

Editor 장새론여름
Reference <녹색문화도시, 프라이부르크 읽기>(홍윤순 지음, 나무도시 펴냄),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이소영 지음, 오마이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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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며 쾌적하다고 느낀 도시들엔 공통점이 있다. 낮이고 밤이고 맨발의 보행자가 흔하다. 구두를 손에 든 젊은 여성부터 플립플랍을 백팩에 대롱대롱 매단 남성, 꼬까신을 엄마 손에 들려준 아이까지 발가락을 넓게 벌리고 땅을 디디는 걸 자주 보았다. 호주 시드니, 미국 시애틀, 태국 크라비 그리고 독일 프라이부르크가 그러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는 특히 땅에 맨살을 맞대고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주거단지의 모래밭 놀이터 입구에서 아이들은 대부분 신발을 벗어던진다. 잔디 광장에는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하는 사람도 흔하다. 관광지에도 가벼운 옷차림에 맨발로 걷는 이가 많다. 그 모습만으로는 여행자인지 시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피부가 더 깨끗한지, 주변 환경이 더 깨끗한지는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는 듯하다. 환경과 일상이 안전하다고 굳게 믿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 이면엔 도시 환경을 가꾼 오랜 역사가 깔려 있다. 깨끗한 환경을 누릴 자유를 위해, 의무와 책임을 기꺼이 다한 시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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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간 가꿔온 오늘의 환경

1940년 프라이부르크에 60여 발의 폭탄이 투하됐다. 독일 폭격기의 오발이었다. 무너진 건물과 도로를 겨우 추스르나 싶었는데, 1944년 11월 27일 연합군의 공습이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도시의 80%가량은 파괴되었고, 황무지가 되었다. 이내 전쟁이 끝나고, 도시 재건 사업이 시작됐다. 사업은 과거 구조와 환경을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중세 시대 형성된 시가지를 복원하고 길마다 자갈을 정갈하게 깔았으며 트램도 설치했다. 대학교와 상업지구가 형성되며 어엿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었다. 프라이부르크가 친환경 도시를 추구한 건 그로부터 30여 년 뒤, 1970년대 초부터다. 독일 정부는 프라이부르크 인근에 핵발전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반발은 무척 거셌다. 도시민을 비롯해 독일 전역, 프랑스와 스위스 등 프라이부르크 인근 나라 국경도시까지 나서서 집단적으로 반핵운동에 동참했다. 결국 정부는 계획을 전면 취소한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핵발전의 위험성에 전율한 프라이부르크 시의회는, 향후 안전한 에너지 생산과 공급을 위해 친환경 에너지 계획을 대대적으로 세운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가장 흔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태양열을 핵심 에너지원으로 선택했다. 프라이부르크의 연중 일조시간은 2,000여 시간, 일조량은 1㎡당 1,117KWh에 달한다. 태양광에너지 발전은 독일에서 햇볕이 가장 많이 내리쬐는 도시에 걸맞은 방식이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생산하는 태양광에너지량은 영국 전체 생산량과 거의 맞먹을 정도다. 여기에서 나아가 프라이부르크는 에너지 낭비를 막고 자연과 오래 더불어 생활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해서 마련한다. 그렇게 또 30여 년이 흘러, 오늘날 프라이부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어디에서나 쾌적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다. 교통체증이나 공회전하는 차량은 찾아볼 수 없고, 중심지가 아니면 차량의 행렬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대신 자전거와 보행자, 트램은 늘 눈에 띈다. 시민 대부분 이 세 가지 이동 수단을 이용한다. 살기 좋은 도시의 면모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곳으로는 리젤펠트와 보봉 등 생태주거단지가 손꼽힌다. 리젤펠트는 유모차와 휠체어, 자전거를 요철의 충격 없이 매끄럽게 운행할 수 있도록 단지 전체에 장애물을 없앴다. 보봉의 경우 주택가 앞 도로에서 모든 차량이 보행 속도 이하로 움직여야 한다.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은 운전자가 져야한다. 자동차와 달리기를 해도 거뜬히 이길 수 있는 동네, 살고 싶은 동네의 표본 같은 곳이 곧 프라이부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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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프라이부르크의 미감

여행자로서 도시의 역사가 깃든 구시가지를 들르지 않을 수 없다. 중세 시대 도시의 양쪽 끝 관문이던 슈바벤 문과 마르틴 문 안으로 고풍스러운 풍경이 펼쳐진다. 슈바벤 문과 이어지는 콘비크트 거리, 마르틴 문을 받친 카이저 요제프 거리 모두 동화 같은 구시가지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한적하다가 북적이기도 하며 생동하는 거리 인파는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에 가까워질수록 눈에 띄게 늘어난다. 방문하는 날이 일요일이 아니라면, 또 오후 2시 이전이라면 성당 앞에 펼쳐진 왁자지껄한 마켓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과일과 채소를 자연스럽게 쌓아둔 상점부터 그릇과 조리도구 가게, 옷과 액세서리 상점, 풍성한 꽃을 내놓은 상점까지 형형색색 빛깔을 뽐낸다. 줄기까지 길게 커팅한 심장 형태의 펜넬과 보라색 꽃봉오리까지 달고 있는 아티초크도, 긴 머리채를 잡아당겨 질끈 묶은 것 같은 당근 다발도 생소한 구경거리다. 대부분 지역 주민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다. 마켓이 철수하면 광장의 주인공,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이 우람한 몸체를 드러낸다. 시장의 차양에 가려졌던 부분은 일부분이었을 뿐, 대성당의 당당한 풍채는 광장 테두리의 절반은 차지하는 듯 보인다. 높기는 또 얼마나 높은지, 가장 높은 첨탑의 길이가 무려 116m에 달한다. 도시가 쑥대밭이 된 1944년 공습에도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은 기적적으로 화를 면했고, 과거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할 수 있었다. 심지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폭격이 있기 전 미리 떼어 옮겨 두었기에 안전하게 보전되었다고 한다.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섞여 있다. 오랜 건축 기간으로 인해 두 가지 양식이 섞였다. 대성당은 1200년경 터를 닦기 시작해 1500년경에야 완공했다. 건물을 올리는 동안 건축가도, 시대도 거듭 변화한 것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위압감이 든다. 섬세한 조각과 장식으로 둘러싸인 높고 넓은 허공 때문인 것 같다. 손에 쥔 물건을 있는 힘껏 던져도 천장 근처는커녕 중간까지도 못 다다를 듯하다. 숙연해진 마음으로 첨탑을 향해 간다. 첨탑 정상 부근은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다. 3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제법 가파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도시 전체를 발밑에 둘 수 있다. 멀찍이 도시와 숲의 경계까지 내다보인다. 쾌청한 날에는 프랑스령 보주 산맥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위에서 내려다본 프라이부르크는 지붕이 온통 붉다. 골목길에서 눈높이로 바라볼 땐 색도 장식도 다채롭기만 했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건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지붕이 이어진다. 시선을 정면에 두면 시계를 돌리는 거대하고 정교한 태엽 장치와 수백 년 대물림된 종이 보인다. 격자 장식이 돋보이는 뾰족뾰족한 장식도 가까이 보인다. 경이로운 경관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성당을 가운데 두고 크게 한 바퀴 돈 뒤 골목으로 들어선다. 성당 주변을 돌며 위로만 향하던 고개가 이제는 자꾸 아래로 내려간다. 보행로를 장식한 문양이 이색적이어서다. 침대와 맥주잔을 나타내고 있다. 100년 역사의 숙박 시설과 음식점 등 주변 시설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손으로 일일이 박아 넣은 듯한 자갈 장식을 보니 시간을 거스른 듯한 기분이 든다. 가는 물줄기가 이어지는 베힐레 역시 소소한 볼거리다. 베힐레는 13세기경 조성된 실개천이다. 당시 마을엔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었기에 화재 진화용으로 수로를 팠다. 요즘은 콘크리트와 시멘트 구조물이 많아 소화용수보다는 온·습도 유지 시설로 여겨진다. 여행객에게는 소소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신발 가게 앞 수로에는 알록달록한 장화 화분이 잠겨 있고, 장난감 가게 앞 물길엔 색실로 몸을 연결한 오리 인형들이 떠 있으며, 자전거 가게 앞에는 꽃으로 치장한 자전거가 물길을 가르고 있다. 상점 주인이 예술가인가 싶을 정도로 곱다.
젤라토를 입에 물고 걷는다. 여기는 봄이고, 햇살이 쏟아지는 프라이부르크다. 맨발로 산책해도 아무 거리낌 없는 도시에서 자유와 행복을 배운다. 과거 무너진 도시를 마주하며, 당시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지, 무엇을 향해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심오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당장의 편의 대신, 현재와 미래를 아우르는 해법으로 생태 환경의 보존을 선택했다. 그 덕분에 오늘날 프라이부르크는 세계적인 생태 도시이자 누구나 쾌적한 환경을 누리는 도시로 재건됐다. 독일어로 ‘프라이(Frei)’는 자유를 뜻한다. ‘부르크(Burg)’는 성을 의미한다. 먼 과거 자유무역 도시로 건설한 역사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여기에 오늘날 오염으로부터 해방된 도시라는 의미를 더하는 건 외부인의 억지일까. 세계 각국의 도시가 공해와 싸울 때,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찬란한 햇살과 맑은 공기를 누구나 공평하게 누린다. 환경과 자연을 즐길 자유를 누구나 갖고 있는데, 이 정도 해석쯤이야 너그럽게 이해할 만하지 않을까, 자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