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 THEME

JOURNEY

달콤한 파리

예술의 중심지로 손꼽히는 프랑스 파리에는 오래전부터 왕족과 예술가들의 파티가 끊이지 않았다.

Editor 이지윤
Reference <DESSERT DAYS>(홍은경 지음, 책밥 펴냄)

파리를 여행하다 이른 아침 흔하게 보였던 프랜차이즈 빵집을 찾았다. 식사 대용이 될 법한 갓 구운 크루아상과 빵 안에 초코가 숨겨진 뱅오쇼콜라, 쇼케이스 안에서 반짝거리는 에클레르를 주문했다. 별 기대 없이 크루아상을 베어 문 순간 빵 맛의 신세계가 열렸고, 기대를 안고 맛본 에클레르는 맛있는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경험하게 해줬다. 단연코 지금까지 먹었던 최고의 디저트로 기억된다. 명품 가방이나 옷처럼 정성스럽게 진열해놓은 마카롱과 케이크를 구경하는 일이 재밌다는 것을 알게 해준 프랑스 파리는 디저트 천국, 말 그대로 달콤한 도시다.

디저트의 기준

굳은 설탕을 숟가락으로 톡톡 깨뜨려 먹는 재미가 있는 크림 브륄레, 요즘에는 국내 카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마들렌과 카눌레 같은 구움 과자 등 우리에게 익숙한 디저트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프랑스는 싱싱한 식재료를 구입해,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식탁에 차려 여러 사람이 함께 맛보는 모든 과정을 중요시 여긴다. 오랫동안 유럽의 중심 국가로 군림하면서 베르사유궁처럼 큰 궁궐에서 수많은 왕과 귀족들의 연회가 열렸다. 파티를 위한 화려한 요리와 디저트가 발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프랑스 미식 문화는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세계적인 레스토랑 안내서 미쉐린 가이드, 1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일류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루 등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풍성한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디저트(Dessert)라는 단어 역시 ‘테이블을 치우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데세르비르(Desservir)에서 유래됐다. 식사를 정리한 후 마지막에 먹는 것이 디저트였기 때문이다. 낯선 디저트 이름도 대부분 프랑스어 뜻을 알면 이해가 된다. 얇은 반죽을 켜켜이 쌓아 사이사이에 크림이나 초콜릿 등을 채우는 밀푀유는 프랑스어로 ‘천 겹의 잎사귀’라는 뜻이다. 밀푀유 케이크, 샤부샤부처럼 먹는 밀푀유 나베 역시 여러 겹 쌓아 올린 모양에서 본뜬 이름. 부드러운 크림 맛으로 각인되어 있는 에클레르는 프랑스어로 ‘번개’라는 뜻이다. 19세기 프랑스 최고의 셰프였던 마리 앙투안 카렘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길쭉한 슈의 표면에 바른 크림이 빛에 반사되어 번개처럼 번쩍번쩍 빛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콤한 크림과 폭신한 질감으로 번개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 만큼 맛있는 디저트다. 국내 대부분의 카페에서도 음료 말고 작은 쿠키나 케이크가 없는 곳이 없다. 간단하게 즐기기 좋은 피낭시에르는 그 모양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프랑스어로 피낭시에르는 금괴라는 뜻이다. 듣고 보니 잘 구워 황금빛이 도는 먹음직스러운 피낭시에르가 금괴와 닮은 것 같다. 실제로 파리 곳곳에는 베이커리와 카페를 겸하는 곳도 있지만 오직 디저트만 판매하는 디저트 숍이 셀 수 없이 많다. 매장 외관만 봤을 때는 멋쟁이로 소문난 파리 사람들이 들를 법한 옷 가게처럼 보여도 쇼윈도에 비친 몽블랑과 타르트를 발견하고 디저트 가게임을 알아차렸던 적도 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디저트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트렌디한 디저트까지 하루쯤은 파리 전역의 카페나 디저트 숍을 투어하는 것도 좋은 여행 코스가 된다. 무엇보다 어떤 가게든지 실패할 일이 전혀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예술과 트렌드가 집약된 마레 지구

세계 최대의 관광지로 손꼽히는 파리는 짧은 시간 안에 둘러볼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꼭 가봐야 한다는 미술관만 해도 열 손가락을 넘어가고, 패션과 트렌드가 집약된 도시답게 길을 걷기만 해도 눈길을 사로잡는 각종 매장이 즐비하다. 마레 지구에는 크고 작은 독특한 숍이 모여 있다. 국내에 잘 알려진 편집매장 메르시(Merci)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작은 파우치나 컬러풀한 에코백부터 접시, 가구, 옷, 가방 등 장르 불문 다양한 아이템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생각보다 고가의 제품이 많아 이것저것 고르다 보면 예상치 못한 큰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파리의 상징적인 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도 마레 지구에서 멀지 않다. 전기 배선 파이프, 계단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자유분방한 외관에서부터 예술성이 돋보이는 이곳에는 20세기 초반 이후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모여 있다. 피카소, 샤갈, 마티스, 달리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과 조각, 설치, 영상 등 최신 현대미술의 트렌드도 짚어볼 수 있어 고전 미술 전시에 지루함을 느꼈다면 흥미로울 미술관이다. 열심히 걷고, 구경했으니 이제 디저트로 잠시 충전을 해야 할 때. 마레 지구에 있는 얀 쿠르베 파티세리(Yann Couvreur Patisserie)는 본인 이름을 걸고 얀 쿠르베 셰프가 운영한다. 요즘 프랑스에서 핫한 셰프 중 한 명으로 자유로운 마레 지구와 디저트가 잘 어울린다는 평이다. 한정 판매로 유명한 밀푀유는 꼭 맛봐야 한다. 즉석에서 크림을 얹어 만들어주는데 바삭한 식감과 달콤한 바닐라 크림이 환상적이다. 파리에서 꼭 먹어봐야 할 에클레르를 찾고 있다면 에클레르 드 제니(L’éEclair de Genie)를 추천한다. 매장은 아담하지만 마치 보석 매장처럼 예쁜 쇼윈도 안에 화려한 에클레르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선택지에서 고민하다 하나를 고르면 점원은 하얀 장갑을 끼고 명품 가방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에클레르를 포장해준다. 피스타치오 베리 에클레르는 피스타치오 크림의 고소함과 베리의 상큼함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로맨틱한 파리의 모습,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

파리에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은 바로 에펠탑을 마주했을 때가 아닐까? 반가운 마음에 멀리서부터 보이는 에펠탑을 쫓아 다가가면 웅장한 느낌이 먼저 든다. 따뜻한 색감 따위 하나 없는 고철 덩어리임에도 낮은 건물이 즐비한 파리 도심에서 우뚝 솟아 있는 위용과 우아한 곡선이 만들어내는 낭만이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에펠탑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다니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파리를 특별하게 즐기는, 파리에서만 가능한 여행 방법이다. 에펠탑 북쪽 샤요궁 앞에 조성된 트로카데로 정원은 에펠탑의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포토 스폿으로 유명하다. 에펠탑이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완벽하게 한눈에 들어와 인생샷을 건지기 좋은 장소다. 파리 군사학교 앞에 위치한 마르스 광장은 특히 밤에 에펠탑의 야경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비르하켐 다리는 아는 사람만 오는 숨겨진 뷰 포인트다. 2층으로 된 다리로 상부 다리를 받치는 연속적인 기둥이 기하학적인 멋을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에펠탑과 센강이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영화 <인셉션>에 나온 장소여서 ‘인셉션 다리’로도 알려져 있으며, 현지인은 물론 웨딩 촬영 장소로도 애용된다. 에펠탑이 보이는 트로카데로 건물에 있는 카레트(Carette)는 식사와 디저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양파 수프와 마카롱, 타르트가 유명하다. 파리의 디저트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디저트 편집매장도 있다. 포 드 파티세리 부티크(Fou de Patisserie Boutique)는 프랑스 대표 베이커리 잡지사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파리의 핫한 디저트 숍의 시그너처 메뉴와 베스트 메뉴를 모아놓은 곳이다.

개선문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는 명품 숍과 호텔, 카페, 상점이 자리 잡고 있다. 개선문 전망대에서는 에펠탑을 비롯해 파리 시내가 한눈에 담기니 올라가보는 게 좋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번쩍이는 명품 숍만큼 꼭 들러야 할 디저트 가게 두 곳이 있으니 바로 라뒤레(Laduree)와 피에르 에르메 파리(Pierre Herm Paris)다. 두 곳 모두 프랑스 마카롱을 대표하는 곳으로 라뒤레는 150년 전통을 자랑한다. 처음으로 과자 두 개를 합쳐 필링을 채워 넣은 지금의 마카롱 형태를 선보인 곳이기도 하다. 역사만큼 클래식하고 앤티크한 분위기가 느껴지며 색색의 마카롱은 어떤 종류를 골라도 달콤함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다. 라뒤레 매장에서 도로를 건너면 바로 피에르 에르메 숍이 있다. 라뒤레가 전통적이고 클래식한 분위기라면 피에르 에르메는 현대적인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 장미, 리치, 푸아그라 등 색다른 재료를 활용하거나 마카롱 케이크, 마카롱 타르트 등 실험적인 마카롱 메뉴를 선보이며 디저트의 천국과도 같은 파리에서 대표 마카롱 숍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수십만 점의 유물로 가득 찬 루브르 박물관에서 다리가 너무 아파 관람을 포기하고 나왔다. 카페를 찾아볼 힘도 없어 터덜터덜 거닐다가 길거리 노점에서 누텔라를 잔뜩 바른 크레페를 사 먹었다. 밀가루 반죽에 초콜릿을 바른, 휘황찬란한 디저트 가게에 비교하면 그저 평범한 디저트였지만 크레페 한 입에 놀랍게도 힘이 샘솟았다. 디저트의 힘은 강력하다. 바쁘게 파리 곳곳을 누벼도 슈크림, 몽블랑 등 여러 종류의 달콤한 디저트가 심심한 입을 달래주고, 여독으로 지친 몸과 마음도 위로해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그래서 달콤한 파리 여행은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