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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EY

영원한 레고랜드, 빌룬

호화찬란한 장난감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레고(LEGO)는 마법의 장난감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레고가 탄생한 덴마크의 작은 도시 빌룬은 영원한 동심의 세계 네버랜드를 닮았다.

Writer 이은혜(칼럼니스트) Editor 방은주

레고 브릭을 모티프로 삼은 순백의 레고 하우스에서는 레고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도시의 미래를 바꾼 브랜드

빌룬(Billund)은 ‘레고를 위한, 레고에 의한, 레고의’ 도시다. 인구 6,000명의 작은 소도시는 레고로 인해 벼락 스타가 됐다. 레고 본사가 설립되면서 공장이 들어서고, 레고를 테마로 하는 레고랜드와 유일무이한 레고 실내 체험장인 레고 하우스를 관람하기 위해 수십 만 명의 관광객이 매년 이곳을 찾는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브랜드이자 자부심으로 통하는 레고는 1932년 빌룬의 작은 목공소에서 첫발을 뗐다. 창업자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은 원래 집을 짓는 목수로, 대공황으로 일이 없어지자 나무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투리 목재로 만든 요요, 나무 블록, 자동차, 바퀴 달린 목재 오리 인형이 인기를 얻자 본격적으로 완구 사업에 몰두한다. 상호도 ‘잘 놀다’는 뜻의 덴마크어 ‘레그 고트(Leg Godt)’를 줄인 레고(LEGO)로 바꿨다. 레고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띠게 된 건 올레의 아들 고트프레드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회사를 물려받으면서부터다. 그는 영국의 한 장난감 박람회를 둘러보고 기존의 쌓기만 하는 블록이 아닌 뚝딱 연결하고 조립할 수 있는 브릭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브릭에 튜브와 파이프를 만들어 서로 단단하게 조립할 수 있는 오늘날의 레고 브릭을 특허출원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완성된 레고 브릭은 장장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치 않고 이어져 오늘날 전 세계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장난감으로 사랑받고 있다.

(좌) 레고 브랜드의 심벌이자 덴마크 빌룬을 대표하는 관광지, 레고랜드. (우) 코펜하겐 뉘하운 운하를 그대로 본뜬 미니어처. 실제로 자동차와 배가 움직여 생동감을 자아낸다.

(상) 레고 브랜드의 심벌이자 덴마크 빌룬을 대표하는 관광지, 레고랜드.
(하) 코펜하겐 뉘하운 운하를 그대로 본뜬 미니어처. 실제로 자동차와 배가 움직여 생동감을 자아낸다.

2×4브릭이 만들어내는 세계, 레고랜드

마치 거대한 장난감 상자를 쏟아부은 것 같은 레고랜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레고로 만들어졌거나 레고 모형을 띤 테마파크다. 레고랜드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공장 밖에 다양한 레고 작품들을 전시했는데, 마을 주민은 물론 멀리서 구경 오는 사람들이 생길 만큼 인기였다. 그리하여 1968년 빌룬에는 레고를 테마로 하는 세계 최초의 레고랜드가 문을 열었고, 개장하자마자 큰 인기를 끌며 단숨에 덴마크의 인기 여행지로 떠올랐다. 코펜하겐에서 레고랜드가 위치한 빌룬까지는 기차와 버스를 이용해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코펜하겐에서 기차를 타고 빌룬 인근 도시 바일레(Vejle)까지 이동한 뒤 바일레역에서 빌룬 공항으로 가는 43번 버스를 타면 드디어 꿈에 그리던 레고랜드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침 일찍 움직인다면 점심시간 전에 도착해 레고랜드에서 반나절 남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빠듯한 당일치기 일정 대신 빌룬에서 하루 머물다 가길 추천한다. 레고 마니아라면 더더욱 1박 2일은 필수다. 하루는 레고랜드, 다음 날은 레고 하우스를 방문하는 코스는 빌룬 여행의 불문율이기 때문. 레고랜드 내에 위치한 레고랜드 호텔에 머문다면 금상첨화다. 리셉션부터 각 층, 객실별로 각양각색의 레고 디스플레이에 둘러싸여 꿈 같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레고랜드를 방문하는 이들의 얼굴엔 환한 웃음꽃이 핀다. 이곳은 모든 것이 아이들의 눈높이로 꾸며져 있다. 2세에서 12세 사이 어린이를 위한 50여 가지 놀이기구는 어른들에겐 다소 시시할 수 있지만, 놀이기구 외에도 볼거리는 차고 넘친다. 놀이공원 곳곳에 설치된 레고 블록으로 만든 조형물은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정교하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를 20분의 1로 축소해 레고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미니어처 도시, 미니랜드다. 덴마크를 대표하는 뉘하운 운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건물과 실제 움직이는 배와 자동차,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실감나게 묘사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소인국을 여행하는 걸리버가 된 것처럼, 미니랜드 곳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참고로 내년 2022년에는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우리나라 춘천에 레고랜드가 문을 열 계획이다.

(좌) 수만 조각의 브릭이 쏟아져 내려오는 듯한 ‘레고 폭포’.ⓒLEGO House  (우) 레고 하우스는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존뿐만 아니라 브릭 아티스트의 걸작도 전시돼 있다.ⓒLEGO House

(상) 수만 조각의 브릭이 쏟아져 내려오는 듯한 ‘레고 폭포’.ⓒLEGO House 
(하) 레고 하우스는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존뿐만 아니라 브릭 아티스트의 걸작도 전시돼 있다.ⓒLEGO House

영감의 원천, 예술적인 레고 하우스

레고 하우스를 원하는 날짜에 방문하려면 최소 한 달 전 온라인 예약이 필수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 하루 방문객 수를 제한하고 있어서다. 레고랜드 호텔을 나와 20분 남짓을 걸으니, 한눈에도 빌룬에서 가장 높아 보이는 순백의 건물이 짠하고 등장한다. 레고의 새로운 본사이자 세계 최대의 레고 전시, 실내 체험관인 레고 하우스는 ‘미술관 같다’는 첫인상을 안긴다. 4년의 공사 끝에 2017년 완공된 레고 하우스는 외관은 물론 내부까지 레고 브릭을 모티프로 삼았다. 거대한 레고 블록 21개가 겹쳐 있는 듯한 외관은 온통 흰색으로 덮여 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일대 반전을 이룬다. 옥상마다 색색의 컬러가 알록달록 칠해져 있고, 누구나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야외 계단식 의자는 파랗고 노란 브릭을 층층이 쌓아 올린 형태를 띠고 있다. 레고 하우스의 설계를 맡은 이는 구글 신사옥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건축가 비아케 잉겔스로, 그 역시 어린 시절 레고를 갖고 놀던 마니아로서 언젠가 레고 건물을 설계하겠다는 꿈을 꿨다고 한다. ‘전 세계 레고 팬들에게 레고에 관한 최상의 경험을 선물한다’는 레고 하우스의 설립 취지는 레고 하우스 곳곳을 체험하는 동안 온몸에 와닿는다. 레고를 상징하는 4가지 컬러인 그린, 레드, 블루, 옐로를 중심으로 4가지 테마존으로 구성된 내부는 다채로운 조형물과 놀이공간, 브릭 아티스트의 작품 전시, 레고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 알차게 배치돼 있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은 함께 어울려 마음껏 레고 브릭을 조립하고, 신나게 뛰어놀며 작품을 감상한다. 레고 하우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중앙 계단에 자리한 ‘창조의 나무’와 다양한 색상의 브릭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레고 폭포’다. 무려 건물 3층 높이에 달하는 ‘창조의 나무’는 631만 개가 넘는 브릭을 사용해 제작 기간만 3년이 소요된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걸작이다. 계단을 오르며 나뭇가지, 나뭇잎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관찰하다 보면 작품의 진면목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레드존 한쪽 벽면에 설치된 ‘레고 폭포’는 수만 조각의 브릭을 마음대로 조립할 수 있는 체험존이자 방문객들이 필수 인증샷을 찍는 시그너처 포토존으로 사랑받는다.

(좌로부터) 오덴세를 꽃피운 아동 문학의 거장, 안데르센 동상. 
 H.C. 안데르센 하우스에 전시된 작품.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과 조약돌이 깔린 오덴세의 올드타운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H.C. 안데르센 하우스는 숲과 정원으로 둘러싸여 마치 동화책 속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 H.C. Andersen’s House, Laerke Beck Johansen

(위로부터) 오덴세를 꽃피운 아동 문학의 거장, 안데르센 동상.  H.C. 안데르센 하우스에 전시된 작품.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과 조약돌이 깔린 오덴세의 올드타운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H.C. 안데르센 하우스는 숲과 정원으로 둘러싸여 마치 동화책 속을 탐험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 H.C. Andersen’s House, Laerke Beck Johansen

안데르센의 동화적 상상력의 밑거름, 오덴세

빌룬에서 창의력을 키우는 레고의 진면목을 만났다면, 오덴세에서는 동화적 상상력을 꽃피울 수 있다. 빌룬에서 버스로 2시간을 이동하면 ‘덴마크의 정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핀 섬의 중심 도시이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고향 오덴세에 닿는다. 누구나 한번쯤 읽어봤을 <미운 오리새끼>,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빨간 구두>, <벌거숭이 임금님> 등 160편의 동화를 발표한 안데르센이 코펜하겐으로 떠나기 전까지 나고 자랐던 도시가 바로 오덴세다. ‘안데르센의 도시’라 불릴 만큼 그의 생가와 박물관, 거리, 공원, 동상 그리고 그의 동화를 1년 내내 상설 연극으로 선보이는 극장과 축제가 오덴세를 수놓는다. 오덴세의 올드타운은 오렌지빛 기와지붕 아래 은은한 파스텔 색감으로 칠해진 집들이 골목골목마다 이어진다. 정갈하고 때론 고요하기까지 한 동화 같은 마을이 시가지를 관통한다. 비록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안데르센이 동화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마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 보존지구로 지정된 올드타운의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반질반질한 조약돌이 깔린 올드타운을 걷다 보면 구수한 커피 향과 빵 냄새가 발길을 붙든다. 제법 많은 카페와 베이커리 중 덴마크의 국민 빵집으로 불리는 락케에후세(Lagkagehuset)에 들렀다. 바삭하게 구운 페이스트리에 초콜릿이 뿌려진 데니시 페이스트리와 커피 한 잔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 안데르센 생가와 박물관으로 향했다. 한스 옌센 거리 45번지에 자리한 생가는 거창한 안내판도 없다. 그저 여느 집들처럼 노란 담에 붙은 자그마한 명패가 전부다. 이곳은 안데르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08년부터 쭉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생가보다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일게 하는 장소는 따로 있다. 생가와 연결된 ‘H.C. 안데르센 하우스’는 이제 막 오픈한 안데르센 박물관이다. 이곳은 오덴세나 코펜하겐에 있는 여느 안데르센 박물관처럼 작가의 삶에 집중하기보단 그가 쓴 동화의 세계에 더 집중한 박물관이다. 그래서인지 박물관에서 흔히 느껴지는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한 편의 멋진 예술 작품을 관람하고 나온 기분이 들게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숲과 정원으로 둘러싸인 타원형의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The Fairytale of My Life’라는 안데르센 자서전 제목처럼 환상적인 동화 속 세상이 펼쳐진다. 그가 평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즐겨 했던 종이 커팅 작품과 스케치, 삽화, 유품, 여행 장비 등 각종 전시물이 빛과 사운드와 함께 전시돼 고전 동화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엿볼 수 있다. 빌룬과 오덴세를 여행하며 어린아이처럼 동화 속 세상을 만났고, 이제 다시 어른이 되어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 할 시간. 오덴세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급행열차 안, 창 밖으로 흘러가는 잔잔하고 고요한 풍경과 아쉬운 작별의 눈인사를 나누며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