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L

MOVIE

NOV-DEC 2020

가족의 보금자리

가족의 꿈이 성장하고 사랑이 싹트는 곳. 영화 속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집의 의미를 그려본다.

Writer 홍순채(칼럼니스트) Editor 주원

온기가 피어나는 이층집 <남매의 여름밤>

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시골집에 놀러가서 지내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은 화장실이며 부엌이며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오랜만에 모인 사촌 동생들과 어울려 특별한 추억을 쌓기에 그만이었다. 이혼한 아버지(양흥주 분) 밑에서 성장하는 고등학생 옥주(최정운 분)와 초등학생 동주(박승준 분) 남매는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다. 좀 낡고 오래되긴 했지만 서울의 좁디좁은 집에 비하면 할아버지 집은 마당도 있고 다용도실엔 온갖 먹을거리가 그득하며 게다가 이층집으로 꽤 넓고 아늑하다. 노부부가 평생 가꾸고 살아온 집은 할머니의 부재로 쓸쓸한 공간이 된 지 오래지만 아이들의 방문으로 새로운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매일 정적이 흐르던 집은 떨어져 살던 삼대가 만나면서 비로소 가족의 온기로 훈훈하게 데워지기 시작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에 생채기가 남아 있던 남매에게도 이 여름날의 추억이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 집은 실제로 인천의 한 노부부가 자식을 낳고 키워 독립시킨 공간으로 제작진이 두 달간 설득 끝에 촬영 장소로 사용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층집의 개성과 존재감이 촬영 내내 감독에게 자극을 주어 계속 시나리오를 수정했다는 후문이 들릴 정도로 이 집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가족 이야기를 그린 <남매의 여름밤>은 지난 9월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19회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국내 출품작 중 유일하게 최우수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윤단비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제작한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했고,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선 ‘밝은미래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

남매의 여름밤(2019, 한국)
감독 윤단비
출연 최정운, 양흥주, 박현영, 박승준 외
장르 드라마

집에 보내는 연애편지 <집의 시간들>

집에 대한 추억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제각각의 모습으로 각인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둔촌주공아파트에 대한 지극히 소소하고 개인적인 추억을 담은 기록물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과거 이곳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아련한 기억이다. 영화는 둔촌주공아파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들만의 역사가 담긴 사라진 공간을 회상하며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따스한 고백과 성찰을 들려준다. 모든 동물이 삶의 보금자리를 가지듯이 인간 역시 집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어간다. 집 역시 인간을 닮아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으며 인간과 같이 희로애락을 거듭하다가 수명을 다해간다. 사람이 사람과 이별하듯이 사람은 공간과도 이별한다. 이 영화는 인간과 집이 평화롭게 공존하다가 어떻게 온전한 모습으로 이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을 개개인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준다. 옛 아파트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기록을 담은 이야기는 길든 짧든 사라질 가족의 안식처에 대한 연애편지를 보는 듯하다. 집이 단순히 소유물이나 재산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이 함께했던 존재라는 사실을 조용히 웅변하는 작품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담긴 의미 있는 영화다.

집의 시간들(2017, 한국)
감독 라이
출연 김채순, 함동산, 정혜숙, 윤원준 외
장르 다큐멘터리

아버지와 딸의 연결고리 <집 이야기>

누구나 이 영화가 끝나면 지난날 몇 번 이사를 다녔는지 손꼽아보게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 은서(이유영 분)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지만 끝내 정착하지 못하고, 홀로 인천에 사는 아버지 진철(강신일 분)의 집으로 향한다. 이혼 후 아내도 자식도 없이 홀로 지내던 아버지에게 딸은 반갑지만 불청객이고, 딸에게 아버지 역시 불편한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집을 꾸미듯이 집은 운명적으로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닮을 수밖에 없다. 한때나마 아내의 온기와 가족의 정이 남아 있던 집이 지금은 창문도 없이 단절된 공간이자 홀로 남겨진 아버지의 모습처럼 처량하고 외롭기만 하다. 가족으로부터 유리된 아버지는 집에 창문을 두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보여준다. 남의 집 닫힌 문을 열던 출장 전문 열쇠공 아버지는 평생 남의 집 문을 따면서 세상과 소통하지만 어색한 부녀 사이의 문은 쉽게 열지 못한다. 기자 생활을 하며 늘 세상과 소통하던 은서에게 창 하나 없이 사는 아버지의 존재는 철 지난 달력처럼 궁상맞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아버지의 그리움과 외로움이 절절한 단층집을 매개로 부녀는 서로 이해의 강을 건널 수 있을지 영화의 결말이 궁금하다.

집 이야기(2019, 한국)
감독 박제범
출연 이유영, 강신일 외
장르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