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

PEOPLE

SEP-OCT 2020​

그림으로 꿈꾸는 기적,
한국화가협동조합 황의록 이사장

미술로 마음을 치유하고 삶에 에너지를 주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황의록 이사장은 미술을 요술봉처럼 다루며 기적 같은 꿈을 현실로 이뤄낸다.

Editor 장새론여름 Photographer 최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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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협동조합은 하나의 목적에 따라 두 그룹을 상대로 크게 세 가지 활동을 한다. 목적은 ‘그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고 타깃은 미술가 그리고 대중이다. 임무는 첫째 작가의 작품 활동 전반을 지원하고, 둘째 갤러리쿱과 티롤갤러리의 다양한 전시를 운영하고 매거진을 발행하는 등 대중의 미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셋째 아이들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자극해 미래와 미지의 세계를 꿈꾸도록 미술 전반의 활동을 돕는다. 황의록 이사장은 손가락을 펼쳤다 하나씩 접어가며 설명한다. 수십 년 학생들을 가르친 경영학 교수답게 논점이 분명하다. 5년여 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다듬은 신념은 잔가지 없이 명징하고 또렷하다. 황의록 이사장은 한국화가협동조합을 두고 ‘작은 예술 협동조합’이라고 정의한다. 조합원은 화가가 단 한 명도 없이 모두 후원자로만 구성된다. 진중한 설명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바보들의 천국’이라고 황의록 이사장은 덧붙인다. 예술에 홀려 일체의 물리적 이득을 바라지 않고, 그저 예술을 위해 지갑을 열고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다. 다만 꿈을 꾸는 사람들, 즉 마음 부자들이 모여 있기에 넉넉하고 풍요한 ‘천국’이라고 설명한다. 천국이라는 단어는 거듭 등장했다. “작가들의 천국.” 한국화가협동조합이 소속 작가에게 주는 혜택은 여느 갤러리에서도 찾기 힘들다. 단 소속 작가가 되기까지 조건이 무척 까다롭고 남달라서, 내로라하는 중견 작가가 심사에서 탈락할 수 있는 반면 무명 작가가 통과할 수도 있다. 관문은 총 네 개, 작품성부터 인간성까지 작가의 거의 모든 면면을 평가한다. 선발된 소속 작가를 ‘2% 작가’라고 부를 정도다. “1차 평가는 오직 작품만을 봅니다. 서로 전혀 모르는 10명의 전문 심사위원이 블라인드로 평가하죠. 우리는 ‘Yes’인지 아닌지만 답변받고, 70% 이상 긍정 의사를 보인 작가에 한해 2차 심사를 진행합니다. 2차는 작업실 현장 심사입니다. 가능성 있는 작가가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을 경우에 한해 3차 심사를 합니다. 미공개 신작으로 초대전을 하고, SNS에 올려 대중의 반응을 살핍니다. 전문 심사위원의 평론도 물론 받지요. 여기에서도 70% 이상 긍정 평가가 나와야 비로소 공모 작가로 선발해 지원을 시작합니다. 이제 4차로, 2년간 성실성과 인간미를 가늠합니다. 꾸준한 열의와 발전 가능성을 보인 작가에게만 ‘소속 작가’ 타이틀을 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지요.” 한국화가협동조합이 설립된 지 5년여. 현재는 40여 명의 작가가 소속돼 있다. 소속 작가라고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연말마다 작품과 작업 평가를 하고, 전시 때마다 적나라한 감상평을 듣기 때문이다. 좋은 작가를 선발해 더 좋은 작가로 키우는 게 한국협동조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다. 앞서 언급한 목적, 그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의 자양분이 곧 작가 양성이기 때문이다. 갤러리쿱 소속 작가에게는 작품 전시와 판매, 홍보 일체를 지원하고 1년에 한 번 ‘따로 또 함께’ 하는 해외 창작 여행을 후원하며 주기적인 워크숍을 열어 작가의 애로사항을 수시로 파악해 반영하기도 한다. 이 중 작가 입장에서 가장 발전적인 지원은 여행이다. “여행 없이 머무르면, 재주는 늘지언정 창작력은 저물 것이다.” 황의록 이사장의 말처럼, 작가의 표현력은 여행 전후 크게 달라진다. 한국에 없는 빛과 색, 냄새와 소리는 작가만의 섬세한 감각으로 캔버스 위에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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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현재를 바꾸는 미술의 마력

작가 선발을 위한 전시부터 소속 작가의 전시는 대부분 한국화가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갤러리쿱에서 열린다. 갤러리쿱은 100% 기획 전시로만 몇 년 치 계획이 짜여 있다. 갤러리는 1년 365일 문을 연다. 빈 벽일 때는 작품을 교체하는 단 몇 시간에 불과하다. 언제 방문해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늘 문을 열어둔다. 갤러리를 운영하며 황의록 이사장이 실감한 건, 사람이 편안함을 느끼거나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지점, 즉 공감 코드에 보편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림이 낯선 관람객이라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큐레이터와 심사위원, 황의록 이사장이 한마음으로 선호한 걸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누구나 좋은 작품을 알아볼 준비가 돼 있다”고 황의록 이사장은 강조한다. 느낌은 공부해서 익히는 게 아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관람객이 오면 되도록 설명이나 도록을 보지 않고 작품부터 감상하도록 안내합니다. 작가의 의도나 평론가의 설명을 먼저 접하면, 관객의 머릿속에 정답이 그것 하나로 형성돼요. 스스로 느끼고 판단할 기회를 막게 되지요. 작품은 거울입니다. 작가가 마음을 반영한 거울이기도 하고, 관객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해요. 작품과 관객 사이 코드가 잘 맞아떨어지면 감탄이 터져나오고 때로는 눈물까지 흐르지요. 작품을 많이 접할수록 감수성과 공감력이 높아집니다. 안목이 높아진다는 건 곧 이런 느낌에 밝아진다는 의미가 될 수 있죠.” 미술은 개개인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만큼 사회경제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기업 대부분이 예술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화가와 큐레이터를 전속으로 채용하기도 한다. 황의록 이사장 역시 미술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한 경험이 있다며 짧은 에피소드를 전한다. “언젠가 수출업을 운영하는 분에게 경영 컨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로비에 대형 미술 작품을 걸고 그 앞에 벤치를 놓도록 조언했죠. 외국에서 바이어가 오면 꼭 이곳에서 맞이하고, 작품을 먼저 소개하라 했습니다. 작품은 500년 된 노송을 품었어요. 나뭇가지에 새가 있고, 나무 아래 평상이 있어 사람들이 노니는 풍경입니다. 기업이 이 노송처럼 튼튼하고 그 덕에 새와 사람들처럼 우리 직원도 건강하며, 또 이런 문화를 나누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도록 했어요. 작품을 걸고 난 후, 계약 성사율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분위기를 유연하게 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예술이 지닌 강력한 힘이지요.” 미술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30여 년 전, 황의록 이사장은 지인으로부터 작은 미술 작품을 선물 받았다. 그 행복감, 인정받은 기분이 여전히 생생하다고 전한다. ‘그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이 당시의 벅찬 감흥에서 비롯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또 있다. 갤러리쿱에서는 5월과 12월 일종의 ‘생애 첫 그림 선물전’을 개최한다. 후원받은 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작가는 수백만원짜리든 수천만원짜리든 관계 없이 일정 가격으로 작품을 균일 판매한다. 이 자리에서 한 기업 경영인이 작품 수십 점을 구입했다. 직원 선물용이라기에 황의록 이사장은 호기심이 불쑥 솟았다. “그림을 선물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그 역시 수십 년 전 사회 초년생일 적 상사로부터 그림을 건네받았다. 그 감동이 워낙 커 두고두고 되새기다가, 기업을 경영하면서 적극 활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직원들이 좋아했나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럴 돈 있으면 월급이나 올려주지”가 대체적인 첫 반응이었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곳곳에 걸린 작품을 들여다보는 직원이 늘었고 부쩍 전시에 관심을 갖거나, 선물 받은 작품과 작가를 부러 찾아보는 사례도 있었단다. 황의록 이사장은 “예술이 이렇게 힘이 셉니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감동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그리고 감동은 나눌수록 커진다. 이것이 황의록 이사장이 반평생에 걸쳐 깨달은 사실이자, 한국화가협동조합의 양분이 되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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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학교 안 미술관

아이의 감각은 열려 있다. 시각과 청각, 촉각 모두 어른보다 아이가 훨씬 민감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고도 유연하다. 낮달에서 시린 맛을 유추하기도 하고 구름 모양으로 새나 강아지를 그려내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며 감각을 발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글자와 숫자, 논리와 설명을 외우고 계산하고 추리하느라 감각을 느낄 여유가 부족해진다. 생각하고 눈치 살피느라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 예술을 향한 향수가 있다면 어릴 적 감각을 되찾으려 시도하지 않을까. 예술의 아름다움을 기억해내고 누리려 노력하거나, 혹은 그 기억을 발판 삼아 근사한 꿈을 다시 꿀 수 있지 않을까. 요즘 황의록 이사장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상상력과 창의력, 감수성을 저마다의 색으로 발휘하길 바랍니다. 미술을 통해 미지의 세계를 오래도록 꿈꿀 수 있길 바라요. 한국화가협동조합은 올해부터 ‘학교 안 작은 미술관 드림(Dream)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 소외 지역의 학교에 우리 소속 작가의 작품으로 미술관을 만들어주는 사업이지요.” 강원도청, 강원도교육청과 협력한 이번 사업을 통해 한국화가협동조합은 올해까지 10개, 내년까지 20개 초등학교에 작품을 기증해 갤러리공간을 근사하게 꾸밀 예정이다. 작품은 학교당 원화 세 점과 판화 에디션 스무 점가량으로 추렸다. 처음에는 원화를 기증해 전시할 예정이었지만 사업을 구체화할수록 현실적 문제가 걸렸다. 고가인 원화만 전시할 경우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작품이 손상되지 않을까, 혹은 도난당하지 않을까 수시로 염려할 것이다. 결국 아이들 역시 미술을 특별하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이건 사업의 취지와 정반대되는 결과다. 계획을 수정했다. 원화 수를 줄이고 CCTV가 있는 열린 공간에 걸고, 원화에 버금가는 고급 판화 에디션을 곳곳에 전시한다. 나아가 작가가 직접 아이들을 지도하는 미술 수업을 열고, 아이들이 만든 작품과 작가 원작을 함께 선보이는 전시도 개최할 예정이다. “8월 28일 원주 학성초등학교의 첫 개관을 앞두고 한창 준비 중입니다. 지금까지 구체화한 건 정부가 추천한 강원도 내 30개 학교지만, 조만간 강원도의 나머지 600여 개 학교에도 근사한 미술관을 만들어줄 것입니다. 나아가 전국의 문화 불모지를 예술로 밝히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난 5년간 꿈 같은 목표를 현실로 이뤄왔으니, 분명 언젠가는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한국화가협동조합과 갤러리쿱 설립 당시, 황의록 이사장은 ‘꿈꿀 수 있어 행복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에 망하더라도 여한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원칙을 지키며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함께 꿈꾸며 “그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그 발자취를 좇는 것만으로도 뭉클한 희망이 솟아난다. 꿈을 현실로 이뤄내는 일,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