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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DEC 2020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

정희숙에게 집의 의미를 물었을 때, 이 노련한 정리 컨설턴트는 단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가족이라고, 그리고 사랑하는 만큼 가꾸는 공간이라고.

Editor 장새론여름 Photographer 최충식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의 인터뷰

피플

‘대청소’는 있지만 ‘대정리’는 생소하다. 집 안 구석구석을 훑어 깨끗이 하는 일이 대청소이니, 대정리는 집 안을 대대적으로 정리하는 일일 테다.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은 청소와 정리가 엄연히 별개라고 강조한다. 목적부터 다르고, 행위도 구분된다. 청소는 먼지와 쓰레기를 없애기 위함이다. 정리는 공간에 효율과 편의를 더하는 게 목적이다. 청소가 쓸고 닦고 비우는 일이라면 정리는 물건을 치우거나 옮기는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리도 순서와 방법이 다 있어요. 모르는 상태에서 청소와 정리를 함께 하는 건 겉핥기만 하는 거예요. 청소는 청소대로, 정리는 정리대로 각각 제대로 해야만 집을 오래 단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리 컨설턴트는 정리법을 알려주고 직접 정리해주며 유지법까지 전하는 직업이다. 정희숙은 2,000여 곳 이상의 집을 바꾼 잔뼈 굵은 정리 컨설턴트이자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의 저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리법을 알리는 인플루언서다. 방송이며 광고 현장까지 전방위로 오가는 와중에도,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으로 출근한다. 어제도 오늘도 집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살림을 어루만졌고, 내일도 마찬가지일 테다. 현역 정리 컨설턴트 정희숙과 함께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간 쌓은 정리 철학만으로도 2시간이 모자랄 만큼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가장 먼저 물은 질문, ‘집의 정의’에 대해 그는 ‘가족과 사랑’이라고 단숨에 말한다. 나와 가족을 더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 정리는 꼭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지만 충분히 식상할 수 있는 대답이다. 그럼에도 그 대답에 귀가 쫑긋 솟은 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묵직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와 가족을 사랑하는 법

“정리를 왜 해야 할까요?” 단순한 질문에 정희숙은 진지한 표정으로 뜸을 들인다. “돈이 낭비되지 않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가족 관계가 나빠지지 않습니다.” 신중한 대답엔 ‘정리’ 하면 으레 떠오르는 깔끔함과 깨끗함, 단정함이 없다. 정희숙은 “정리는 속된 말인 ‘집구석’을 어엿한 ‘우리 집’으로 바꿔줍니다”라고, 보다 큰 개념으로 말을 맺는다. 정리는 집 고유의 목적을 찾아준다. 재충전이다. 집은 어지러운 바깥에서 돌아와 마음 놓고 쉬는 공간이다. 집은 소파든 침대든 방바닥이든 허리 펴고 누울 수 있고, 두 손 두 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하지만 소파에 옷가지가 널려 있고 발에 장난감이 밟히면 마음 한편이 불안해진다. 눈에 보이는 걸 치우고 싶은데 그것 말고도 할 게 널려 있으니 결국 손을 놓게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어느새 어디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가늠조차 안 된다. 물티슈가 온 방에 돌아다니고 창고마다 빈 상자가 쌓이니, 정작 중요한 물건을 제대로 수납하지 못한다. 물건이 흘러 넘치니 사람이 쉴 공간도 줄어든다. “정말 가족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아낀다면 공간 역시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쉴 자리에 물건이 쌓여 있으면 한쪽으로 밀어내거나 제자리에 수납해야 하는데, 실상 피곤한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하기 싫어요. 그래서 정리는 일상적으로 매일 틈틈이 해야 합니다. 공간을 사용하는 주인이라면, 그곳이 가장 편안하고 아늑하도록 스스로 하든 전문가에게 맡기든 가꿔야 하죠.”

정리 컨설턴트로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월세인데 굳이 정리를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다. 월세든 전세든 자가든 관계없이 집은 어엿한 생활 공간이다. 금전적 형태에 휘둘려 돌보기를 가벼이 여기는 건 내 하루하루를 그저 ‘때우기’ 식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와 가족을 돌보고 보듬기 위해서라도 정리는 중요하다고 정희숙은 강조한다. “집 안에 물건이 많아 가족이 머물 자리가 좁아지면 대부분 큰 가구를 들이거나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해요.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에 맞게 공간을 활용하고 쓸모를 다한 물건을 정리한다면 충분히 머물 자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정리는 ‘현재를 살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지요.”

현재의 행복을 찾아서

집에는 과거에 쓰던 물건과 현재 쓰는 물건, 앞으로 쓸 물건이 혼재돼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해야 할 건 현재 사용하는 물건이다. 상식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실상 많은 집들은 현재보다 과거 혹은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 젊고 날씬했을 적 입었던 옷과 향후 날씬해질 때를 대비한 새 옷을 옷장에 잔뜩 걸어둔다. 정작 요즘 자주 입는 옷은 의자며 러닝머신, 거실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정희숙이 정리한 집 대부분이 그랬다. 지금을 충족하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 언저리를 그저 부여잡고 있었다. “전쟁이 날까 두려워 비상식량과 물, 상비약을 잔뜩 쌓아놓은 집이 의외로 많았어요. 최근에는 거의 10년 치 마스크를 쌓아둔 집도 방문했지요. 미래가 불안해서 그러리라 이해는 하지만, 적합한 생활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과거와 미래에 그렇게 공간을 할애하면 정작 지금의 내 자신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집 안 물건의 가치는 내가 얼마나 자주, 편리하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행복해야 미래도 행복할 수 있다고 정희숙은 굳게 믿는다.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는 게 곧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정리는 지금 상황에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한 번 하고 마는 게 아니라 꾸준히 자주 해야 하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족 구성원이 달라질 때마다 해야 하고요. 쉽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정리한다고 하면 버리기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다. 많은 정리 전문가가 그렇게 제안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희숙은 그 방식이 우리 정서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이 무척 많아서 물건 하나하나 의미를 두고 추억하기 때문이다. “저 역시 사람인지라, 버려야 할 이유보다 버리지 못할 이유에 더 공감하곤 합니다.” 전문 정리 컨설턴트이기 이전에 정 많은 사람의 면모가 정희숙의 목소리에 묻어난다. 타인의 입장에서 집을 정리하다 보면 버릴 물건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몇 마디만 나누면 물건에 실린 마음에 절로 공감하고 만다. “우리 아이가 꼭 껴안고 자던 인형인데 어떻게 버려요”, “어머니가 혼수로 챙겨준 물건이라 되도록 갖고 있으려고요.” 추억이 실린 물건일수록 특히 그렇다. “애정 어린 물건도 삶의 일부분인데 어떻게 버리라고만 강요할 수 있겠어요. 버리지 못할 바에는 최대한 활용하도록 유도하려고 하죠. 다만 이 물건이 정말 집에 있어도 될지 파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재고 조사를 해야 합니다. 집의 모든 물건을 꺼내놓고,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가늠하는 단계예요.” 정리의 순서를 짚어보자면 재고 조사 그리고 수십 번의 분류로 이어진다. 물건별, 사용자별, 기능별, 색과 소재별로 분류한다. 물건을 다 끄집어낸 집은 흡사 전쟁터가 된다. 물건에 질리고 뜬금없는 물건에 놀라며,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껴안고 살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러고 나서 중복되는 물건, 고장 난 물건, 쓸모를 다한 물건을 버리는 것이다. “줄자가 필요하니 좀 빌려달라고 하면 열에 일곱은 ‘분명 집에 있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줄자뿐만이 아닐 거예요. 구석구석 숨겨진 물건이 많은데 정작 필요할 땐 못 찾으니까, 새로운 걸 계속 사죠. 정리를 하고 나면 어떤 물건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모든 물건은 눈에 잘 보이게 수납해야 하죠.” 필요 없는 물건임에도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할 땐, 가족에게 서로의 물건을 추려달라고 제안한다. 남편이든 아내든 아이든 고민도 없이 잘 골라낸다. 정리는 역시 가족 모두의 몫이라고 정희숙은 덧붙인다. 물건의 제자리를 함께, 잘 정해두면 매일 양말을 찾는 남편도 연필깎이 찾아달라는 아이도 어느새 제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찾게 된다. 정희숙은 그렇게 유지하기 쉬운 정리의 원칙으로 ‘물건별 정리’를 강조한다. “옷방과 안방, 아이방 등 공간별 정리가 익숙하겠지만 그렇게 하면 금세 원 상태로 돌아갑니다. 정리는 물건별로 해야 해요. 안방 정리가 아닌 옷 정리, 신발장 정리가 아닌 신발 정리, 욕실 정리가 아닌 욕실용품 정리가 바른 방법이죠. 욕실용품이 화장실뿐 아니라 베란다 창고며 주방 수납장까지 흩어져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물건이 얼마나 남았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물건별로 재고를 파악한 뒤 분류해 동선에 맞춰 제자리에 수납하면, 잘 진열된 마트에서 하듯 효율적으로 물건을 고를 수 있죠.”

정희숙은 정리를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물건별로 정리하려 마음먹더라도 쉽지 않다. 욕실용품을 꺼내다 보면 주방용품도 꺼내게 되고, 그릇만 꺼내고 싶은데 냄비까지 다 쏟아져나오니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어찌저찌 분류했다 하더라도, 제자리에 놓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그곳에 물건이 쌓여 있으면 치워야 하고, 그걸 또 정리하기 위해 집 안 곳곳을 뒤져 그 종류의 물건을 끄집어내고… 그렇게 적어도 한 달, 길게는 몇 년까지도 정신없이 보내야 한다. 한편 정희숙과 같은 정리 컨설턴트는 보통 4인 가구당 5~7명가량의 팀으로 움직인다. 집 안 모든 물건을 정리하는 데 하루 온종일 소요한다. 8시간은 기본이다. 언젠가는 대가족이 사는 저택에 일주일 내내 방문한 적도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쉽게들 여기지만, 소요되는 시간과 노동력을 생각하면 엄연히 전문가의 영역이다. “정리를 마음먹고 실천한다고 해서 다 잘 되는 건 아니에요. 기술과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옷을 예쁘게 개고 그릇을 가지런하게 놓는 건 정리의 손톱만 한 일부분이에요. 물건의 제자리가 정확히 정해져 있으면 옷을 대충 개어놓고 그릇을 간단하게 겹쳐 넣어도 살림이 복잡해지지 않습니다.” 정리 컨설턴트만큼 사생활에 관여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정리를 하다 보면 수저 개수며 두루마리 휴지 개수까지 헤아리게 된다. 정희숙은 정리 컨설턴트로 보낸 10여 년 사이 사회와 집의 변화도 생생하게 실감한다. 정리 컨설턴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은 열에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요즘은 고객의 70% 이상이 동물과 한 가족이다. 가전제품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TV는 두 배 커졌고 김치냉장고와 건조기는 거의 필수품처럼 두고, 커피머신과 에어프라이어 같은 소형 가전도 여러 가지로 구비해둔다. 생활이 눈에 띄게 달라졌지만, 정리의 중요성은 예전과 같고,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정희숙은 예측한다. “정리는 기획과 설계, 재고 조사와 분류의 반복입니다. 행위 자체는 엄격하고 딱딱한 분야지요. 한편 정리는 소통과 공감의 영역이기도 해요. 어쩌면 치부일 수 있는 집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정리 컨설팅을 받으며 일상의 답답함을 털어놓는 분이 많습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봐요. 정리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는 말, 정리 덕분에 우울증에서 벗어났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정리 컨설턴트로서 가장 큰 힘을 받은 순간이지요.” 정리의 정의와 원칙, 방법, 효과는 정리 컨설팅을 받는 사람마다 다르다. 물건을 단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지런히 쌓기만을 원하는 이가 있는 반면 무조건 다 비워달라는 이도 있다. 원하는 형태는 달라도, 집에서 안정을 찾게 해달라는 주문만큼은 똑같다. 전 세계 6억 인구를 통틀어 단 몇 명에 불과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모이는 곳,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없는 가장 편안한 품. 집은 어쨌든 그래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