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

PEOPLE

소리의 연금술사

성대의 떨림과 섬세한 손끝, 깊은 내공으로 이름을 남긴 소리 예술가들.

Editor 장새론여름
Reference <영화음악과 오케스트라>(박운영 지음, 예진미디어 펴냄),
<친절한 클래식>(류정필 지음, 버튼북스 펴냄)

카스트라토의 대명사, 파리넬리

무대에 오른 가수가 목을 몇 번 가다듬더니 턱을 치켜올린다. 코로 숨을 한껏 들이마시자 버펄로처럼 가슴이 둥글게 부풀어오른다. 건장한 남성의 몸체는 곧 악기가 된다. 유리병 속에서 은구슬이 구르듯 가늘고 투명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성의 목소리지만 여성과 달리 묵직한 힘이 실려 있다. 카스트라토가 소프라노의 고음을 뽑아내면, 관중도 숨을 멈추고 무대를 응시한다. 카스트라토는 여성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남성 성악가였다. 1650년경 여성의 오페라 무대 진출을 금지하면서 소프라노와 알토 등 여성 역할에 공백이 생기자, ‘카스트라토’라는 전무했던 영역이 생겼다. 10세 전후의 남아를 거세하고 노래를 가르치며 카스트라토로 키웠다. 카스트라토로 발탁된 아이들은 대부분 고아이거나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었고, 아이를 거세시키는 대가로 부모들은 보상금을 받았다. 카스트라토의 전성기였던 18세기에는 해마다 4,000여 명의 소년이 거세되었다고 전해진다. 수술이 워낙 위험한데다 무대에 오르는 조건도 까다로워, 실제 카스트라토로 이름을 남긴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파리넬리는 오늘날 카스트라토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파리넬리는 유명한 작곡가의 아들로 유년 시절 꽤 부유했지만,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가세가 기울던 시기 카스트라토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파리넬리는 무대명으로, 본명은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다. 소개하기 버거우리만큼 긴 실명은 부모의 성을 함께 사용하는 유럽 문화에서 비롯한다. 무대명 파리넬리는 그의 오랜 후원자였던 ‘파리나’ 형제의 성을 기려 만들었다. 파리넬리가 노래할 때, 관중들은 “은총의 칼이여! 영원하라!”라며 환호했다. 여기에서 칼은 거세할 때 사용한 도구를 가리킨다. 파리넬리는 풍부한 기교, 힘차고도 섬세한 목소리로 관객의 마음을 홀렸다. 그의 공연 덕분에 폐업 직전의 극장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파리넬리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로마 등 유럽 각국 왕족 및 귀족과도 긴밀히 교류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뇌물을 일절 받지 않고 인간적인 친밀감을 쌓아 신뢰를 받았다. 그는 스페인 펠리페 5세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10여 년간 4곡의 노래를 반복해 부르며 그의 곁에 머물렀고, 바르바라 왕비, 페르난도 5세와 친분을 쌓았으며 1750년에는 음악가로는 드물게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는다. 파리넬리는 1759년까지 궁중 악사로 머무르다 왕권이 교체되며 은퇴했고,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여생을 보내다 일흔일곱의 나이로 운명을 달리했다.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장수한 셈이다. 모차르트와 카사노바 등 유명인사와 교류하긴 했으나 모두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에, 파리넬리는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2006년 고고학자들은 그의 무덤을 열어 유골을 연구했다. 키는 190cm에 달하는 장신이었고 팔과 다리가 길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노년기 남성과 달리 폐경기 노인 여성의 모습에 더 가까웠는데, 거세로 인한 호르몬의 영향으로 추측된다.

영화음악계의 살아 있는 전설, 한스 짐머

영화를 즐기는 사람 중 <라이온킹>, <인셉션>, <다크나이트>, <아이언맨>, <맨 오브 스틸>, <인터스텔라> 중 한 편도 안 본 이가 과연 있을까 싶다.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부합하는 영화이자, 한 사람의 필모그래피에 모두 들어간 영화다. 영화 음악가 한스 짐머는 1988년 개봉작 <갈라진 세계(A World Apart)>를 프로듀싱한 이래 단 1년도 공백을 가진 적이 없다. 그래미 어워드부터 골든 글로브, 클래시컬 브릿, 아카데미, 토니 어워즈 등 거의 모든 음악상을 거머쥐었고,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부터 “완벽하다”는 찬사를 수없이 들었다. 학창 시절 공부에는 무관심했지만 음악만큼은 즐기던 아이에서, 독보적인 영화 음악가로 거듭난 것이다. <파워 오브 원>(1992) 수록곡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직접 합창과 타악 연주를 녹음하고 <그림자 게임> 속 음악을 위해 슬로바키아와 이탈리아, 프랑스의 집시를 연구한 열정이 한스 짐머의 음악 인생에 구석구석 스며 있다. 스토리가 좋은 작품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악기 또한 구애받지 않는다. 애니메이션과 스릴러, 드라마 등 다채로운 영화 장르를 거쳤다. 록과 신시사이저 음향, 오케스트라, 세계 전통음악까지 편견 없이 이용했다. 악기를 개량해 활용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난 수술을 할 줄 모른다. 치명적인 암도 치료할 줄 모른다. 나는 단지 영화 장면에 어울리는 영화음악만을 만들 뿐이다.” 그는 스스로도 자신할 만큼 변주 없는 음악 인생을 살았다. 비디오 게임용 음악을 만들거나 월드 투어에서 뮤지션으로서 무대에 오르거나, 전기차 사운드를 설계한 게 40여 년 작곡가 인생의 일탈이라면 일탈이다. 한국에서 한스 짐머는 인지도가 높다. 2017년 첫 내한 공연에 이어 2019년에도 한국을 찾았다. 특히 2019년 내한 공연 <2019 한스 짐머 라이브 투어>는 애초에 단 하루 예정돼 있었는데, 객석이 순식간에 매진되어 추가 공연을 열기까지 했다. 2021년 올해에는 그가 참여한 SF 영화 <듄> 개봉이 예정돼 있다. “(음악을) 제작할 때 아이를 대하듯이 하고, 그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노력합니다.” 수십 년 지켜온 신념에 따라 그는 늘 신선한 음악을 탄생시켰다. 이번엔 또 얼마나 새로운 음악 세계를 창조했을지 기대된다.

음악 예술의 진화를 이끈 존 케이지

거대한 음악홀, 공연을 앞두고 객석에 침묵이 감돈다. 무대 위에는 피아노 한 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윽고 연주자가 박수갈채를 받으며 피아노로 다가간다. 객석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자리에 앉는다. 시간이 흐른다. 건반은 두드리지 않는다. 손은 다리 위에 가지런히 모아두고, 피아노를 응시한다. 타이머를 확인한 그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는 다시 가만히 머무른다. 이따금 타이머를 확인하며 피아노 뚜껑을 다시 열었다 닫는다. 시간을 확인한 뒤 악보로 추정되는 종이를 넘기기도 한다. 침묵의 4분 33초가 지나고, 연주자가 일어선다. 객석으로 몸을 채 돌리기도 전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그는 존 케이지가 작곡한 ‘4분 33초’를 연주했다. 음표 없는 악보를 따른 것이다. 3개 악장으로 이뤄진 악보에는 ‘TACET(조용히)’이라는 악상만 적혀 있었다. 관객의 몸 뒤척이는 소리, 목 가다듬는 소리, 웅성임, 외부 소리 등은 연주의 일환이었다. “청중이 들은 모든 소리가 음악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존 케이지는 기존 음악 예술의 관념을 무너뜨렸다. 그 덕분에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소리, 연주의 법칙성과 제약성을 모두 무시한 소리까지 음악의 일환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우연성 음악’으로 정의한다. ‘4분 33초’가 연주자의 퍼포먼스와 관객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듯, 공연장에서 우연히 발생한 현상까지 음악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존 케이지는 발명가였던 아버지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듯하다. 문학과 회화, 건축과 철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두었다. 음악은 쇤베르크로부터 배웠다. 쇤베르크는 존 케이지 이전에 이미 음악적 규범을 깨트린 인물로, 음악의 3요소로 굳게 지켜오던 선율, 화음, 리듬에서 벗어난 ‘범조성(Pantonal) 음악’을 작곡한 예술가다. 존 케이지는 부모와 스승뿐 아니라 백남준과 머스 커닝햄, 데이비드 튜더 등 동시대 예술가에게 영감을 받았고, 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존 케이지의 작곡 인생은 그 자체로 음악적 실험이었다. 그가 제시한 근원적 질문,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화답하며, 현대음악은 오늘날까지도 관념에서 벗어나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