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L

STORY

브랜드가 된 사람들

남다른 감각과 철학으로 브랜드를 설립해 대중들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는 인물들.

Editor 이지윤

그 자체로 명품이 된, 코코 샤넬

최근에는 밤을 새우며 백화점 앞에서 입장 대기표를 받는 행렬이 등장하고, 어렵사리 매장에 입성해도 운이 좋아야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명품 브랜드. 현대인들이 하나쯤은 갖고 싶어 하는 브랜드 샤넬은 1910년 프랑스 파리의 작은 모자 가게에서 시작됐다. 창업자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은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빈민가 출신으로 자매들과 보육원에서 자랐다. 영화, 책으로도 코코 샤넬의 삶을 다룰 정도로 샤넬은 연인이자 사업을 제안한 파트너,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사교계의 중심에 있던 만큼 비밀스러운 스캔들도 많아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화려한 사생활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샤넬이 패션계에 일으킨 개혁은 가히 독보적이다. 400여 년간 여성들의 옷을 지배해왔던 코르셋과 바닥에 질질 끌리는 긴 치마 대신 샤넬은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이고,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옷을 만들었다. 치마 길이를 짧게 조절했고, 재킷에 주머니를 만들었으며, 손에 들고 다녀야 했던 핸드백에 체인을 달아 어깨에 멜 수 있도록 했다. 관습을 탈피하고 여성들의 패션에 자유를 선물했다는 데에 샤넬 패션 철학의 큰 의미가 있다. 1921년 샤넬의 첫 번째 향수이자 마릴린 먼로가 사용해 유명해진 넘버 파이브(N°5)가 출시된다. 1954년에는 트위드 소재로 샤넬 슈트를 만들었고, 이듬해인 1955년 2월 퀼팅 숄더백을 선보였는데 출시 날짜를 따서 ‘2.55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두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샤넬의 스테디셀러다. 코코 샤넬은 갖은 스캔들과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15년간 파리를 떠났던 시절도 있었지만 70세가 넘어 프랑스로 다시 돌아와 작업을 재개했다. 죽기 전까지 컬렉션 작업을 하다 87세의 나이로 파리의 리츠호텔에서 세상을 떠났다.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는 코코 샤넬의 말처럼 20세기 패션의 선구자로서, 샤넬이 남긴 유산과 아이디어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현대인들에게 큰 영감이 된다.

최고급 승용차의 탄생, 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

자동차계의 명품으로 분류되는 롤스로이스는 차량 1대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데 60명 이상의 장인이 450시간 이상 작업하는 공정을 거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하나의 작품 수준으로 가히 완벽한 차를 만들어내기에 희소성을 추구한다. 소량 생산을 원칙으로 2019년 기준 전 세계에 약 4,000여 대가 팔렸는데, 국내에는 단 100여 대가 들어왔다. 보잉 항공기에 엔진을 납품할 정도로 롤스로이스는 항공업계에서는 엔진 제조사이자, 방위사업체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동차의 외관, 가죽 시트, 문, 바닥 등 4,400여 가지의 옵션을 모두 맞춤형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도 매력적이다. 완벽한 한 대의 자동차는 차를 정말 좋아했던 찰스 롤스와 뛰어난 엔지니어 헨리 로이스가 만나 탄생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기계공학을 전공한 찰스 롤스는 자신의 자동차로 직접 레이스를 즐길 정도로 자동차 마니아였다. 엔지니어였던 헨리 로이스 역시 차에 관심이 많아 자신이 타던 차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차를 만들었는데 이 차를 찰스 롤스가 테스트해보게 된다. 그렇게 차를 향한 열정으로 두 사람은 1906년, 둘의 이름을 따 롤스로이스라는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 바로 다음 해인 1907년 발표한 차는 일명 ‘실버 고스트(Sliver Ghost)’다. 속도가 빠른데도 시계 초침 소리만큼 조용하고 부드러운 승차감 덕분에 붙여진 이름이다. 실버 고스트는 아직도 세계 최고의 자동차로 손꼽힌다. 이후 팬텀, 실버 레이스 등 연이은 성공으로 사업은 승승장구했지만 모험을 좋아했던 찰스 롤스는 항공기에 빠져들었고, 1910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헨리 로이스는 이후 회사와 공장을 확장해나가며 1930년 자동차 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1933년 사망하기 전까지 22년 넘게 롤스로이스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다.

새로 태어난 한복, 디자이너 단하

국내에도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색다른 철학을 내세운 신생 브랜드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자 본인에게 필요했던 한복을 만든 것이 그 시작이 된 김단하(이하 단하) 대표는 브랜드 단하를 설립했다. 학창 시절 교복이 개량 한복이었고, 할아버지는 매듭 장인이었던 덕분에 우연히도 어릴 적부터 한복과 우리 문양이 익숙했던 단하 대표는 첫 유럽 여행에 한복을 가져갈 정도로 한복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 관심은 온라인 한복 대여 사업과 직접 한복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브랜드 창업까지 이어졌다. 늘 비슷한 컬러와 디자인에 제약이 있는 한복에 자신의 아이디어와 철학을 담아내고 싶었다. 한국궁중복식연구원을 비롯 대학원에서 복식사/복식미학 등을 공부하며 한복은 물론 옷을 만드는 과정을 배웠고,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등 우리나라 고유의 유물이 가득한 박물관을 놀이터 삼아 자주 드나들며 영감을 얻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 중 하나가 단하의 대표 패턴으로도 잘 알려진 궁중보자기 봉황문인문보(鳳凰紋引紋袱)다. 은은한 분홍색과 코럴, 민트, 블루 컬러 등의 조합이 현대적인 인상을 준다. 이 패턴은 스카프, 궁보치마, 저고리 등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남자들이 입던 도포, 무관의 옷 철릭을 가운이나 로브 형태로, 가슴가리개는 크롭트 톱으로 재해석했다. 민무늬 블라우스에 화려한 패턴의 치마를 매치하면 중요한 자리에도 손색없는 정장이 된다. 전통 한복을 소재로 단하만의 컬러풀하고 우아한 스타일로 풀어내니 제품군도 훨씬 다양해졌다. 창업 이후 단하의 한복은 ‘블랙핑크 의상’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유튜브 조회수 1억 회 이상을 달성한 뮤직비디오 ‘How You Like That’의 피날레에 블랙핑크가 단하의 한복을 리폼해 입고 등장한 것. 세련되고 파워풀한 현대 여성의 이미지에 단하의 감각적인 패턴과 컬러감은 잘 어울렸고 세계 각지에서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단하 대표는 전통 무늬와 패턴을 소재로 작업하는 예술가들과 새로운 컬렉션을 제작하거나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등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기에 우리의 옷과 패턴, 색감은 너무 곱고 아름답다. 전통의 멋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단하의 제품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