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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시에 김민선

맛있는 10분을 위해 하루 중 12시간을 기꺼이 매진하는 랑꼬뉴의 파티시에 김민선과의 대화.

Editor 장새론여름
Photographer 최충식

파티시에 김민선 인터뷰

진중한 재미로 만든 케이크, 파티시에 김민선

재미있다와 즐겁다는 대화에서 종종 혼동되곤 한다. “재미읻따”가 “즐겁따”보다 발음하기 수월해서라고 생각한다. 꼭 놀 때만이 아니라 일이 원활하게 잘될 때, 어려움을 어떻게든 해결할 때도 재미있다는 표현을 쓴다. 파티시에 김민선도 “재미”를 자주 말했다. 메뉴를 소개하거나 고민을 얘기할 때마다 “재밌는 점”이라고 말한 뒤 설명을 이어갔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당시에는 그 의미를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고될 법한 시간을 진중하게 얘기하는데, 무엇이 재미있는지 아리송했다. 글로 풀고 나서야 의미를 알겠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쁜’, 즉 즐거움이라는 사실 말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을 하면 몸이 힘들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김민선은 하루 12시간은 더 일한다. 다달이 신메뉴를 개발하느라 일상이 곧 일이 됐다. 제철 재료를 이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뉴 회전이 빨라졌다. 그래서 이번 달 판매한 케이크를 다음 달에도 판매하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다가올 시기에 가장 맛있는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다짐만큼은 받을 수 있다. 지금껏 예외 없이 그래왔다. “매월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철 재료가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포기할 수가 없어요. 랑꼬뉴의 제과 방식은 프렌치 디저트를 베이스로 하지만, 재료는 다분히 한국적입니다. 제조법이 한정적일 때, 우리만의 제철 재료가 경쟁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요. 오미자와 호박씨, 메밀, 금귤 등은 맛도 우수하고, 색다르게 가공했을 때 굉장히 좋은 효과를 냅니다.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으로 변주할 수 있는 재료들이에요.”

열매부터 뿌리까지 이리저리 가공하는 게 무척 재미있다고 김민선은 또 한번 강조한다. 가령 국수나 전으로 먹는 메밀은 프랄린(설탕과 견과류 등을 졸여 만든 것)처럼 만들었을 때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잘 살아난다. 5월부터 시장에 깔리는 산딸기는 라즈베리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향과 맛을 갖고 있어 독보적인 디저트 재료가 된다. 제주에서 생산되는 레몬도 조만간 활용할 계획이다. 갓 수확한 채소를 저장 채소에 비견할 수 없듯, 제주 레몬 역시 상큼한 향이 남다르리라 기대한다. “약간의 욕심이 있다면, 쉽게 완성된 맛이 아니라는 걸 고객이 조금이나마 알아주길 바란다는 점이에요. 파리브레스트의 재료 중 하나인 프랄린만 해도 직접 만드는 곳이 흔치 않아요. 제대로 만들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워낙 많이 들어가거든요. 또 한편으로는 프렌치 디저트를 너무 엄격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해요. 

재료의 변주를 두고 프렌치 디저트가 맞다 아니다를 논하기보다, 일단 맛을 보고 음미하고, 여운을 즐기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여깁니다.” 김민선은 맛있는 디저트의 첫째 조건으로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 즉 밸런스를 손꼽는다. 프랑스에서 디저트를 배울 때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아 마음에 새긴 단어다. 처음 한 입이 맛있는 건 흔하다. 하지만 마지막 한 입까지 만족스러운 디저트는 흔치 않다. 끝까지 맛있으려면, 단맛과 신맛, 부드러움과 바삭함 등 다채로운 매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민선은 디저트 한 조각을 한식의 7첩반상에 비유한다. 과일을 익히고 절이고 말린 정과, 견과류를 볶고 갈아 설탕물에 졸인 프랄린, 밀가루를 반죽하고 발효해 구운 빵 등 하나하나 직접 준비하기 때문이다. 나물과 절임, 찜으로 구성한 7첩반상 못지않게 공이 들어간다. 그 정성을 알고 맛본 이들은 기꺼이 랑꼬뉴의 단골이 된다. “개인적으로 디저트 시장이 굉장히 유행에 민감하다고 여깁니다. 카스텔라, 크로플 등 유행이 뚜렷한 시장에서 한 장르를 파고들기는 어려운 환경이에요. 더군다나 요즘은 디저트를 인증샷만으로 소비하고 마는 경우가 많아요. 그 와중에 재구매율이 40%가 넘는다는 걸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구매한 고객의 절반쯤은 다시 찾아오기에 더 책임감을 갖고 있고요.” 

과거 언젠가 랑꼬뉴의 케이크를 접했을 때, 세 번 놀란 기억이 있다. 상자를 받아 들었을 때 3kg짜리 아령 못지않은 묵직함에 한 번, 케이스를 연 뒤 빽빽한 딸기 양에 두 번, 한 입 물었을 때 솜사탕처럼 녹아내린 질감 그리고 두고두고 남은 향긋한 맛에 세 번 놀랐다. “재미있는 한 랑꼬뉴를 계속 운영할 거예요.” 김민선의 ‘재미’가 오래 가길 진심으로 바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맛에 있어서만큼은 진심인지라, 사심을 거둘 수 없어 이렇게 또 표현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