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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탐색하는 유물 탐사, 유물 애호가 김서울

산책 애호가 둘, 일러스트레이터 이진슬과 유물 애호가 김서울과 잠시 동행했다. 산책에 목적을 부여하거나 산책의 의미를 발견하던 여정이다.

Editor 장새론여름
Photographer 최충식

유물 애호가 김서울 인터뷰

나를 탐색하는 유물 탐사, 유물 애호가 김서울

김서울에게 “당신은 누구인가요?”식의 질문을 할 때마다 칼날 같은 대답을 몇 가지나 들었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자랐고 한국에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 “<유물즈>,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의 저자입니다”, “귀여운 것 애호가이기도 하지요”. 또렷하고 분명한 설명이다. 그 성격은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속 문장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많은 이가 경희궁을 두고 ‘사지가 잘려나간 궐’이라는 둥 잔인한 표현도 서슴지 않지만 궁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같은 표정으로 한결같이 사람들을 기다린다. 흐릿하지만 다정하게, 그리고 끈질기게(59p)’, ‘(해치의) 볼록하게 올라온 이마와 뿔, 메롱 하는 혓바닥, 수로 아래 물에 집중하느라 살짝 방심한 엉덩이. 어느 부분이 가장 좋은지, 인기투표라도 부쳐보고 싶다(15p).’ 주관적 사유임에도 절묘하게 와닿아 내 안에서 우러난 듯 여겨질 정도다. 건물의 다리 같아서 번쩍 들어올려질 것 같은 주춧돌, 팝핀댄스를 추는 듯 팔을 유연하게 구부린 향나무 묘사도 기가 막히다. 무생물을, 그것도 유구한 역사 유물을 생물처럼 여기니 덩달아 친밀감이 생긴다. 문득 ‘고통스럽게 쓰되, 쉽게 읽혀야 한다(김두식 법학자 겸 작가)’는 문장이 떠오른다. 김서울의 책이 분명히 증명한다.

“글을 쓰는 건 너무 힘드니까, 그 와중에 제가 너무 좋아하는 것이라도 소개하자는 목표로 시작했어요. 좋아하는 대상, 제가 좋아하는 재질을 관찰하는 시간만큼은 즐거울 수 있잖아요. 어떤 때는 이것만 바라보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어떤 요소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추적하면서 그 마음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위도와 적도를 설명하듯 생각을 분명하게 전하기까지 김서울은 자신과 주변을 얼마나 뚫어지게 관찰했을까. 타인의 취향을 타지 않고 오롯이 본인의 길을 찾기까지 또 얼마나 사색했을까. 김서울은 전통 회화를 전공할 때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을 무시로 드나들었고 고궁까지 관심을 확장하며 걷고 또 걸었다. 운동화 밑창이 닳고 닳도록 지치지도 않았다. 그 과정을 두고 김서울은 “자기로 향하는 탐색”이라고 대답했다. 수많은 말풍선을 떠올리며 걷던 시공간이 이 문장 하나로 단단히 압축된다.

“산책은 나와 주변 환경을 가장 잘 느끼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의 날씨, 내가 사는 곳,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가장 기본적 지표라고 생각해요. 여유롭게 걷다 보면 내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제 경우 한국인, 한국 거주민, 유물 애호가라는 점을 인지하며 이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죠. 우리 유물·유적 속에서 걷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그저 ‘고궁’을 뭉뚱그려 바라보지 않고, 지금 걷는 곳, 보이는 것, 느껴지는 점을 감지하다 보면 실오라기 같은 미세한 취향까지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어요. 제가 궁궐의 돌을 귀여워하고 아끼는 것처럼 말이죠.” 김서울이 유물을 대하는 태도는 다섯 살 아이가 여섯 살 형 대하듯 거침이 없다. 좋아하는 만큼 표현하고 아쉬움도 더러 내비친다. 익히 떠올리는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는 느낌은 없다. 그 심정이 깃들었기에, 그의 책을 통해 친구 소개받듯 유물을 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와 함께 고궁의 너른 마당에 들어선 순간, 풀 먹여 빳빳하게 다린 이불보를 활짝 펼친 것처럼 가슴이 부풀었다. 건물과 담장, 나무와 나무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점이 만족스럽다. 마침 선선한 바람 한 자락까지 불어와 햇빛의 열기를 훔쳐간다. 본격적인 산책 시즌이 도래한 듯하다. 이 가을을 좀 더 풍요롭게 누비는 팁을 묻자 김서울은 경희궁에서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하루 코스를 추천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권한다.

“많은 분이 궁궐이나 유물, 박물관에 대해 쉽게 얘기하는 걸 어려워하는데, 간단하게 해소할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눈이 가는 지점이 있으면 ‘좋아하는 것 같다’ 혹은 ‘싫어하는 것 같다’가 아닌, ‘좋아한다’와 ‘싫어한다’로 입장을 취해보세요. 그다음 왜 눈이 가고 좋아할까, 왜 싫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동행과 충분히 얘기를 합니다. 저녁에 무엇을 먹었고 무엇이 맛있고, 어느 식당이 좋았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가볍게 내 의견을 풀어가는 것이죠.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고궁도 카페처럼 즐기는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질문과 대답 사이엔 틈이 없었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의미일 테다. 그의 안내에 따라 ‘궁며들(궁+스며드는)’겠다는 다짐을 절로 한다. 해치의 복실복실한 엉덩이를 직접 만나러 책 한 권 챙겨 들고 나설 계획이다. 20년 지기 친구 만나러 나서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500년 유적 곁으로. 예측하건대 그날 공기는 선선하고 하늘은 청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