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L

STORY

NOV-DEC 2020

모든 일상의 공간

아늑함으로 정의되던 집이 일, 운동, 놀이까지 아우르는 멀티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가장 분명한 변화다.

Editor 장새론여름

스토리추가

집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먼저 내가 사는 집을 떠올린다. 냄새와 빛의 질감, 공간 구조를 새삼 더듬는다. 가족, 반려동물도 연상하며 흐뭇하게 웃는다. 더없이 사랑하는 것 상당수가 집에 있다. 한때 같이 살았던 사람들도, 앞으로 같이 머무를 이들 모두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다. 집에 대한 감상은 추상적이다. 만져지고 맡아지는 감각의 총체적 느낌에 가깝다. 이완과 안정 같은 편안함이 지배적이다. 향수와 그리움 같은 애잔함도 연상된다. 집의 기억은 대부분 정적이다. 집 안에서 크게 움직이는 일이래야 가구 옮기기와 청소 정도다. 두 주먹만 한 아이 엉덩이를 쫓아가거나 넘치는 냄비의 가스불을 끌 때 외에는 집 안에서 뛸 일도 별달리 없다. 한때 러닝머신과 사이클이 있었지만 옷걸이로 쓰이는 날이 많았다. 언젠가 홈시네마가 유행할 땐 빔프로젝트를 구입하며 그럴듯한 시네마 룸을 꾸미기도 했는데, 그때도 극장 나들이를 줄이지는 않았다. 집은 변화보다는 그 자리 그대로의 형태로, 지루한 권태와 익숙한 안정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는 공간이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분명 이랬다. 적어도 우리 집만큼은 그랬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상은 분명히 바뀌었다. 그 불안감은 고등학생에서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처럼 막연하고도 실제적이다. 타인과의 거리감이 신경 쓰이고 주변의 기침 소리에 예민해졌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예전보다 훨씬 피로했다. 집이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는 믿음은 나날이 커졌다. 동시에 집은 단순히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공간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재택근무가 시행되면서 집에서 하는 일이 훨씬 많아진 까닭이다.

집 안의 일상 탐사

지난 2월, 재난 위기 경보 단계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되면서 공공도서관이 모두 문을 닫았다. 도서관 방문을 빌미로 한 동네 산책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었건만, 산책조차 불안한 시기에 도서관까지 문을 닫으니 심리적 타격이 컸다. 외출을 삼가고 꼼짝없이 집에 머물렀다. 그저 며칠 꾹 참으면 곧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도서관도 문을 열고, 예전처럼 갈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휴관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답답한 와중에 다행히도 택배 대출 서비스는 이용할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 책을 대출해 왕복 배송비를 부담하고 집에서 받아보았다. 6개월가량 한 달에 두어 번 택배로 책을 빌리고 반납했다. 그사이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에 따라 도서관은 부분적으로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2월 이후 지금까지 도서관에 들르지 않았다. 외출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큰 이유고, 배송 서비스가 워낙 편리하니 밖으로 나설 필요가 없는 게 두 번째 이유다. 도서관과 함께 운동 시설 역시 문을 닫았다. 그동안 큰 욕심 없이 대충 운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중 한두 번의 운동이 제법 체력 소모가 컸던 모양이다. 일주일 만에 몸이 근질근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는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조만간 괜찮아질 줄 알고, 집에서 대충 스트레칭하고 푸시업을 하는 정도로 가볍게 운동했다. 하지만 땀 흘리지 않은 만큼 운동량은 예전 같지 않았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체중계 숫자도 함께 늘어났다. 그렇게 넉 달째, 몸무게는 5kg가량 늘어 있었고, 앞자리가 바뀌기 직전에 이르렀다. 그제서야 경각심이 들었다. 갖가지 운동 물품을 구입하고 온라인 홈 트레이닝 콘텐츠를 구독했다. ‘출석 체크’하듯 유튜브를 클릭해 땀을 흘렸다. ‘확찐자(살이 확 찐 사람)’의 문턱을 살짝 넘어섰다가, 지금은 서서히 예전 몸무게로 돌아가고 있다. 그렇게 반은 강제로, 반은 자발적으로 ‘집콕’을 경험했다. 집에서 책도 읽고 운동도 했고, 때로는 일도 했다. 밖에서 하던 것을 집에서 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집에는 아늑한 쉼터가 너무 많았다. 침대와 소파가 유혹했고 달콤한 간식 역시 틈틈이 마음을 홀렸다. 집 안에서 사적 영역과 공적(업무적) 영역을 동시에 마주하면서, 의지의 한계도 종종 마주했다. 유년 시절 방학 생활계획표 짜듯 일상의 루틴을 새로 정해야 했다. 계획을 지키다 못 지키며 작심삼일을 수십 번 반복했다. 그렇게 반년을 훌쩍 보낸 지금, 내면에서부터 무언가 크게 바뀌었다고 느낀다. 이제는 누군가 집에 대해 물으면 감성적으로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2020년의 집은 여가, 취미, 업무 등 갖가지 일상이 혼재한 공간으로 머릿속에 저장돼 있다. 집 하면 자동 반사적으로 떠올리던 ‘쉼’과 ‘휴식’의 비중이 줄어든 반면 ‘긴장’과 ‘스트레스’의 비중은 늘었다.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여러 번 집에 가고 싶었는데, 이곳이 곧 집이었다. 저녁에 어디에도 들르지 않고 집에서 쉬다 보면 문득 나태해지는 것 같아 초조했다. 책을 펼치고 애써 운동복을 갈아입으면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안했다. 수년간 바깥을 누빈 사회인의 관성 때문인지, 집에서도 굳이 긴장을 자초한 셈이다. 비단 나뿐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밤낮으로 스마트 기기와 함께 생활하는 요즘은 집에서 운동하고 공부도 하는 시대다. 홈쿡, 홈트, 홈러닝, 홈오피스, 홈카페 등 ‘홈(home)’을 키워드로 한 산업 전반이 크게 성장했다. 20~60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뷰티·헬스 케어 기업의 설문조사에서, 67%가량이 ‘현재 홈트(hometraining)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대다수 온라인 쇼핑몰은 코로나19 사태 전후 홈테인먼트(home+entertainment) 관련 매출이 2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집을 다용도로 활용하는 추세는 주택 구조에서도 엿보인다. 거실은 작아도 방을 여러 개 둔 구조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감미로운 집콕 생활

집콕 생활의 가장 극적인 감흥은 식물이 주었다. 아열대 지역 출신 관상식물 몬스테라의 성장이다. 원래 세 개였던 줄기가 어느 날 보니 네 개로 늘어 있었다. 첫 발견 때 돌돌 말려 있던 이파리는 다음 날 볼펜만 하게, 그다음 날은 휴지심만 하게 펴졌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이파리는 손바닥만 하게 쫙 펴졌다. 과거 같았다면 줄기가 솟아난 줄도 모르다 물을 갈아줄 때야 잎사귀를 발견했을 테다. 식물이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본 건 처음이다. 몬스테라를 바라본 시간은 집콕 생활 중 가장 감미로운 한때였다. 식물에 눈길을 둔 건 시작에 불과했다. 오래 머무르다 보니 자연스레 집 관찰이 늘었다. 그동안은 바빠서, 귀찮아서 부러 관심을 두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홈 인테리어 콘텐츠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화사하게 꾸민 집들을 보다 보면 내 집 분위기도 바꾸고 싶어졌다. 러그와 쿠션을 바꾸고 선반도 달았다. 가구도 몇몇 점찍어 두었다. 관심이 쏠려서인지, 최근 뉴스에서 인테리어 플랫폼 서비스가 월 거래액 사상 최대 기록을 냈다거나, 가구 및 홈 인테리어 기업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00% 이상 늘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미약하게나마 이 현상에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2020년을 지나온 거의 모두의 일상이 그랬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