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L

STORY

소리의 실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소리부터 전기차에서 나는 소리까지 절묘하게 설계된 음향 효과다.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소리의 세계로.

Editor 장새론여름
Reference <이코노미조선>(통권371호), <살갗아래>(토머스 린치 외 지음, 아날로그 펴냄), <바디 우리 몸 안내서>(빌 브라이슨 지음, 까치 펴냄)

귀를 말하기 전에 귀 외의 것들을 살펴보려 한다. 먼저 눈은 의지대로 감을 수 있다. 무심코 깨어 있는 동안 눈은 1만4,000번가량 깜빡이고, 필요하다면 눈을 꾹 감아 시각을 닫을 수 있다. 눈처럼 코도 잠시 기능을 멈출 수 있다. 기도에 힘을 주면 냄새를 안 맡게 되거나 숨을 참게 된다. 입 역시 벌리고 닫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렇게 눈, 코, 입 모두 자발적으로 움직여지는데, 귀는 혼자서는 어쩌지 못한다. 귀를 막고 싶으면 손이든 귀마개든 다른 힘을 빌려야 한다. 심지어 귀를 막아도 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솜털을 건드리는 듯한 사박사박 소리, 무중력 상태를 유영하는 듯한 웅웅거리는 소리에 둘러싸인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귀는 열려 있어, 위협이 될 만한 소리를 감지하고 잠을 깨운다. 사람의 귀는 수정 후 약 20주 만에 완성된다. 그 덕분에 아이는 배 속에서도 각종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한 번도 증명된 적은 없지만, 숨이 멎은 뒤에도 청각 기능은 얼마간 살아 있어서 마지막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고도 한다. 죽어서도 작별 인사는 들을 수 있다니, 꽤 낭만적인 속설이다. 귀의 소중함은 귀가 불편해져야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귀에 이상이 생기면 균형 잡기도, 상황 파악도 어려워진다. 듣기는 물론 말하기도 불편해진다. 베토벤은 난청으로 소리를 점점 듣지 못하게 되자 “나의 세상은 소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세상에서 천천히 ‘추방’되고 있다”라고 했다. 음악가의 비참함만큼은 못하더라도, 소리 잃은 삶이 얼마나 절망적일지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의식하지 않아도 절로 작동해주는 귀 덕분에 세상은 보는 것 이상으로 다채롭게 느낀다.

귀를 즐겁게 하는 일

문득 의식했을 때 마음이 밝아지는 소리가 있다. 나뭇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가 그렇다. 바닷가 파도 소리와 계곡 물소리도 신경을 둥글둥글하게 한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땐 사무실의 타자기 소리도 경쾌하다고 느낀다. 소리에 대한 감상은 주관적이지만, 어느 정도 보편적이다. 자연의 소리와 음악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보편적인 좋은 소리를 활용해 이미지 메이킹을 한다. 브랜드 이미지를 좋게 하거나 고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 소리를 활용한다. 음악이 대표적이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보통 시간대별, 공간별로 다른 음악을 틀어 소비를 유도한다. 대형마트에서는 보통 고객이 가장 많은 오후 4~6시 흥겹고 빠른 음악으로 매출 증대 효과를 얻는다. 백화점 역시 시간과 공간에 따라 음악을 다르게 내보내곤 한다. 20대를 타깃으로 한 영패션 전문관에 일렉트로닉 팝을 흘려보내고, 3040을 겨냥한 패션 잡화 전문관에 재즈와 샹송을 트는 경우다. 음악 말고도 쾌감을 주는 소리는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자동차 소리는 소음과 호음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자칫 소음이 될 수 있는 경적 소리부터 깜빡이 소리, 엔진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등을 최대한 거슬리지 않도록 설계한다. 나아가 효과음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소형 SUV 브랜드 미니는 깜빡이와 후진 경고음 등 조작음을 특유의 귀여운 이미지에 맞게 익살스럽고 경쾌하게 디자인했다. 브랜드 애호가들의 호응에 힘입어 엔진음과 배기음, 도어록, 깜빡이, 후방 경고음을 휴대폰 벨소리로 편곡해 선보이기도 했다. 반면 대형 세단-스포츠카 브랜드 머스탱은 차량 외관에 걸맞은 묵직한 엔진음을 적용했다. 피아니스트와 작곡가 등 음악가들과 협업, 개발한 힘찬 엔진음은 주요 소비층인 남성의 심리를 자극했다. 심지어 여성의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수치를 높인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자동차 소리는 브랜드 가치뿐 아니라 안전과 직결되기도 한다. 특히 배기음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소전기차에서는 인위적인 음향 효과를 넣어 안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영화 <배트맨>의 배트카 엔진 소리와 <블레이드 러너>의 비행 차량 소리를 접목하거나(머스탱), <스타워즈>에서 영감을 받은 경보음으로 우주선에 탄 느낌을 내기도 한다(재규어). 정밀한 소리 디자인은 기존 자동차의 ‘감성’을 자연스레 유지하면서 미래 자동차만의 신선한 감각을 부여한다.

현실 같은 가상, 스피커

밀고 밀려야 겨우 타는 빡빡한 지하철에서 그나마 마음 둘 자리가 귀 안에 있다. 이어폰이 만들어내는, 소리로 가득 찬 가상의 공간이다. 신체는 비록 의지를 상실한 채 무방비 상태지만, 소리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자아는 그나마 보호받는 듯하다. 이때 이어폰은 마치 방호복 같은 안전장치처럼 느껴진다. 외부 소리를 철저히 차단한 사운드 기술이 바로 노이즈 캔슬링이다. 외부 마이크가 소음을 감지해 이와 반대되는 음파를 내보내며 소음을 상쇄시키는 원리다. 1980년대 군용 헤드셋에 적용하던 기술을 대중화한 것으로, 과거에는 고가 헤드셋과 이어폰에 적용되었지만 최근 다양한 가격대의 제품이 출시되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이용하면 소음이 제거된 상태에서 듣고자 하는 소리에 몰입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고급 스피커의 최우선 조건은 생동감이다. ‘원음에 가까운 소리’라거나 ‘가장 자연스러운 소리를 들려주는 스피커’, ‘미세한 왜곡을 제거해 깨끗하고 정확한’ 등 고급 스피커가 내세우는 문구만으로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문장만 보면 식상할 수 있지만, 스피커를 잘 안다면 단어 하나하나 염두에 둘 만한 내용이다. 나아가 사운드 시스템을 잘 갖춘 공연장에서는 소리에서도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는 바람 소리나 멀리서부터 바닥을 쿵쿵 찧으며 다가오는 움직임이 소리만으로도 생생히 전달된다. 과거에는 스피커 여러 개를 연동한 서라운드 스피커 시스템이 이러한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요즘은 이어폰과 헤드셋 등 휴대용 스피커에서도 이런 기능을 접할 수 있다. 단 두 개의 스피커만으로 온몸을 둘러싼 듯한 공간감을 낸다. 온라인 공연 실황을 볼 때 화면에 다가갈수록 소리가 커지고 멀리 떨어질수록 작아지거나, 고개를 좌우로 돌릴 때 소리 역시 움직이듯 들리는 기술도 개발돼 있다. 머리의 위치를 감지하는 등 소리 이면의 기술과 접목한 결과다. 이런 사운드 효과는 가상현실(VR) 관련 산업과 맞물려 나날이 정교하게 발전하고 있다. 사람은 정보를 습득할 때 시각에 70%가량 의존한다. 청각 활용도는 20%에 불과해 시각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청각 정보는 시각 정보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오래 기억된다. 공포 영화에서 소리 혹은 침묵이 주는 긴장감, 머릿속에 반복해서 들리는 광고 음악을 연상하면 된다. 소리를 인식하다 보면 모든 일상이 소리와 함께한다는 것을 금방 감지할 수 있다. 눈을 감고 코를 막고, 입을 닫아도 귀만큼은 쉴 새 없이 자극되고 있다. 조역 같지만 알고 보면 주역인 감각이 곧 청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