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L

STORY

나와 지구의 내일을 위해

친환경에서 나아가 필(必)환경 시대를, 그리고 더 나은 내일을 도모한 오랜 역사에 대해.

Editor 장새론여름 Photographer 최충식

‘환경보호’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린 마음에 꽤 자극적인 단어들을 배웠던 것 같다. ‘지구가 아파요’라든가 ‘이산화탄소와 프레온가스로 인한 오존층 파괴’ 같은 문장을 선생님으로부터 듣기도 하고 받아쓰기도 했다. 글자는 검은색으로 나무는 초록색으로, 구름은 파란색으로 그리며 포스터를 만든 적도 있다. 그때 그 기억이 이렇게 생생하건만, 학습 효과를 가늠하자면 스스로 조금 부끄러워진다. 장담하건대 어릴 적보다 성인이 되어 훨씬 더 많은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폐기물을 버리고, 냉난방을 했다. 부모님 세대는 손수건을 늘 지참했지만 요즘은 휴지가 워낙 흔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비닐장갑과 비닐팩을 아무런 가책 없이 사용하던 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환경 이슈가 내 일로 여겨지기까지 20년쯤은 필요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거의 생애의 절반을 보내고 나서야 이곳,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체감하고 있다. 바다가 삼키지도 소화하지도 못한 플라스틱 섬 사진을 이제는 무심히 넘기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경각심을 갖게 돼 다행이라는 생각과 갈 길이 멀다는 조급함이 동시에 인다. 물론 ‘이래도 되나’ 싶게 쌓인 재활용품을 내놓을 땐, 생각과 행동의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져 마음 한구석이 삐걱거리기도 한다. 지구를 위해 불편을 감수한다는 정의감, 그에 따른 불만, 나 하나쯤이야 하는 보상심리도 마음 한구석에 뒤엉켜 있다. 그 모든 걸 안고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려 한다.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지는 좀처럼 가늠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외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움직여야 지구가, 그리고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이 이 시대를 통과하며 점점 자라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땅의 변화

미국 언론인 다르 자메일은 <지구에 대한 의무>에서 환경 변화에 대한 생생한 경험기를 전한다. 그는 알래스카에 거주하는 빙벽 등반가이자 저널리스트다. 2003년 겨울, 마타누스카 빙하의 길목에서 그는 크레바스(눈으로 덮인 땅 위 빙하가 깨져 생긴 틈)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다행히 앞장선 친구와 연결된 로프 덕분에 추락을 멈출 수 있었고, 이내 뒤따라오던 일행의 도움을 받아 땅 위로 올라왔다. 7년여 빙벽 등반 경력이 무용했던 사건을 계기로 그는 알래스카의 변화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빙벽 등반을 즐기던 봉우리 주변에서는 해마다 얼음이 줄어들고 있었다. 산기슭의 진흙땅은 점점 넓어졌고 그만큼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자리는 얼음벽에 가까워졌다. 이 변화의 빠르기를 두고 자메일은 ‘미증유의 가속도’라고 표현했다. 알래스카는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눈도 많이 내리고 거의 1년 내내 설경이 펼쳐진다. 그런데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근 몇 년 사이 눈이 덮이지 않는 기간이 유례없이 길어지고 있다. 알래스카 일부 지역의 10월 기온은 1979년보다 2012년 7.2℃ 더 높았다. 2019년 7월에는 일부 지역에서 32.2℃까지 기온이 치솟았다. 1952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최고기온이었다. 그리고 그 온도는 꾸준히 경신되고 있다. 극지방의 기온 상승은 빙하 감소로 이어졌다. 빙하 감소는 해수면 증가로, 집중호우와 폭풍우에 의한 홍수로 나타났다. 한편 홍수 이면에는 극심한 가뭄과 대형 화재까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꼭 지구가 열병을 앓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도 열이 나면 몸이 펄펄 끓는 듯해도 어느 부분은 식은땀이 나면서 차가워진다. 오늘날 아픈 지구도 마찬가지로, 땀 흘리듯 호우가 쏟아지고 오한을 느끼듯 진동하며 열나듯 펄펄 끓기도 한다. 사람이 심하게 앓고 나면 몸의 털이 타서 없어진 듯 빠지곤 한다. 사람의 털처럼 지구 생물도 털려 나갈지 모른다는 자극적인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 시절 환경보호 캠페인에서 느꼈던 공포감이 이와 다르지 않았다. 생존에 대한 무의식 반응일 것이다.

친환경을 선택한 어른들

어릴 적에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권리가 많지 않았다. 지금은 성인으로서 스스로 선택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텀블러에 담아주세요”라거나 “가방에 그냥 넣어갈게요”라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제품을 선택할 때 성분부터 포장재까지 꼼꼼히 따지기도 어렵지 않다. 환경보호는 현대를 살아가는 데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필(必)환경’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누구나 환경보호를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한 사람의 생활권에서 지구를 위한 일은 무엇이 있을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건 고르기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새 제품을 구입하기보다 집에 있는 물건을 최대한 활용하고, 구입할 땐 친환경 소재인지,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도 따진다. 일회용기와 플라스틱 대신 유리, 도자, 스테인리스 스틸을 선택한다. 자연 상태로 분해가 가능하고 재사용이 용이한 소재들이다. 특히 스테인리스 스틸의 경우 세계를 통틀어 재활용률이 85%에 달한다(세계철강협회 집계). 제로 웨이스트 숍의 단골이 되면 자연스레 친환경 생활을 꾸려가게 된다. 용어 그대로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는 상점이다. 2012년 국내 처음 제로 웨이스트 숍을 도입한 ‘더 피커(성동구)’를 비롯해 마포구 ‘알맹상점’과 동작구 ‘지구샵’, 서대문구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채우장’ 등이 있다. 인천 ‘지구수호대’와 ‘소중한모든것’, 광주 ‘카페이공’, 부산 ‘천연제작소’ 등 전국 각지에서도 제로 웨이스트 숍이 속속 생기고 있다. 대부분 제로 웨이스트 숍은 토양을 깨끗이 보존하는 친환경 농법 식재료부터 유해 성분을 최소화한 세제 등을 무게 단위로 판매한다. 친환경 라이프 입문자를 위해 대나무 칫솔과 스테인리스 스틸 빨대 등으로 구성된 세트도 선보인다. 리필 스테이션도 최근 떠오르고 있다. 곡물과 세제, 화장품 등을 미리 준비한 용기에 담아 그램(g) 혹은 밀리리터(ml) 단위로 구입하는 방식이다. 가격도 저렴하다. 제로 웨이스트 숍 대부분 이러한 리필 스테이션을 갖추고 있다. 제로 웨이스트 숍 알맹상점과 화장품 브랜드 아로마티카가 협업해 국내 최초로 화장품 리필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강남구 아로마티카 브랜드 체험관 ‘하우스 오브 아로마티카’, 수원시 광교의 ‘아모레’ 매장이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 중이다. 이마트 성수지점 역시 리필 스테이션을 마련해 세제와 섬유유연제 등을 저렴하게 판매 중이다.

더 나은 미래를 믿으며

최근 명절을 앞두고 여러 기업에서는 플라스틱 소재를 최소화하고 재활용이 용이한 선물 세트를 대대적으로 마케팅했다. 투명 용기를 사용한 식용유, 플라스틱 뚜껑을 없앤 캔 햄, 합성 플라스틱 대신 한지로 보호망을 만든 과일 등이다. 과대포장을 줄이고 생분해 가능한 소재를 선택하며 친환경 이미지를 어필했다. 국가 차원에서는 대기질 개선을 위한 탄소 배출량 저감 정책 등 친환경 정책을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 산업 재편에 막대한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다. 친환경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시대, 개개인의 실천은 자연스러운 흐름에 실려가는 일처럼 여겨진다. 흐름이 만들어지면 가속도가 붙는 건 시간문제다. 과거 400년간 누적된 산업화의 부작용이 오늘날 ‘미증유의 가속도’로 나타났듯 말이다. 이와 반대로 지금부터의 결정과 행동이 훗날 청정한 환경으로 되돌릴 빠르고 강력한 기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단 하나 강조하자면, 환경보호는 삶의 방향에 관한 일이다. 방향을 정하고 나면, 이후 행동의 영향력을 따지는 건 그리 큰 의미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당장 얼마나 대단한지 혹은 얼마나 중요한지보다 실천해간다는 사실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이다. 매일 저녁 젓가락 같은 솔로 빨대를 씻는 일이 소소하다 해서 결코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꼬깃꼬깃 접은 면주머니를 펼쳐 무와 양파와 콜라비를 담는 일이 번거롭다 해서 쉽게 포기할 일도 아니다. 거대한 물결은 애초에 작은 파동에서 시작되는 법. 초등학생 시절의 경각심을 잊지 않았던 이들의 실천이 ‘필환경’ 시대를 이루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지구는 점점 변화될 것이다. 나와 누군가의 작은 움직임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