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L

STORY

디저트 예찬

온갖 희로애락에도 끝끝내 놓을 수 없었던 달콤한 한 입의 역사에 대해.

Editor 조정화
Reference <디저트의 모험>(제리 퀸지오 지음, 프시케의숲 펴냄), <양과자 세계사>(요시다 기쿠지로 지음, 비앤씨월드 펴냄)

쌓인 집안일도 없고 회사도 쉬어 모처럼 유유자적한 날이면 디저트가 당긴다. 얼마 전 휴일에는 커피값 못지않은 배달비를 무릅쓰고 집으로 아메리카노와 요즘 인기라는 크로플(크루아상+와플)을 주문했다. 집 안 깊숙이 길게 햇살이 든 오후,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켜놓고 소파에 기댄 채 메이플시럽과 생크림을 얹은 크로플 한 입에 커피 한 모금을 번갈아 먹었다. 터무니없는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 매일 이런 날이면 좋겠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이날의 달콤함은 힐링이었다.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은 디저트들이 제법 있다. 어릴 적 이마에 땀이 나도록 트램펄린 위를 뛰고 난 후 먹은 달고나, 목욕탕에서 나와 먹었던 시원한 바나나 우유, 어쩐지 연이 닿지 않아 성인이 되어 뒤늦게 먹어본 에그타르트의 맛에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걸 여태 몰랐다니!’ 하며 한탄한 기억도 있다. 모두 추억이 깃든 디저트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디저트가 필수품이 되었다. 출장 가방을 쌀 때는 앞주머니에 꼭 초콜릿을 챙겨 넣고,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당장 먹지 않더라도 종종 사탕이나 젤리 같은 것을 사서 넣어두었다. 살찌니까 단것은 적당히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직장인의 공식 당 충전 타임으로 통하는 오후 4시에 먹는 디저트는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문득 디저트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입속에 불이 날 듯 매운 떡볶이의 맛을 달래줄 달콤한 과일 음료가 없다면, 절로 인상이 써지는 쓰디쓴 한약의 맛을 사라지게 할 달달한 사탕이 없다면… 그토록 우울한 세상이라니. 살맛 나지 않는 세상이란 어쩌면 달콤함이 없는 세상을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달콤함에 대한 본능

영화 <나니아 연대기>에는 사 남매 중 셋째 에드먼드가 하얀 마녀가 건넨 터키시 딜라이트에 홀려 다른 형제들을 데려오기로 약속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까짓 젤리에 형제를 팔다니!’ 하고 분노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릴 적 우리의 부모님들도 ‘모르는 사람이 사탕 준다고 해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귀에 막히게 했다. 그 말인즉슨 아직 사리 분별이 분명치 못한 아이일수록 달콤한 맛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일 터다. 전문가들이 36개월 이전의 영아에게 초콜릿 같은 단 음식을 주지 말라고 조언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여러 가지 맛을 경험해야 할 시기에 강렬한 단맛을 알게 되면 다른 음식에 흥미를 잃어 자칫 잘못된 식습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책 <잘 먹고 잘 사는 법-설탕>에 따르면, 인간이 단맛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단맛에 대한 호감은 무엇보다도 먼저 생존의 문제인데, 쓴맛이 독을 품었을 가능성을 내재한 것이라면, 단맛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신호로 작용했다. 그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미각기관을 길들여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이 달콤한 맛에 끌리는 건 이렇듯 본능에 가깝다. 그러니 십자군 전쟁을 통해 11세기 말 유럽에 설탕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이 흠뻑 빠진 것은 당연했다. 이전에도 꿀을 음료에 타서 먹거나 꿀 속에 과일을 저장하는 등 단 음식이 있었지만, 특유의 풍미가 있는 꿀과 달리 설탕은 오직 강렬한 단맛이 전부였다. 사람들은 설탕을 크게 3가지 용도로 썼다. 첫 번째는 과시용이었다. 이때만 해도 설탕은 부유층에게도 무척 비싸고 귀한 품목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소중히 보관했다가 손님이 오면 한 번씩 자랑하기 위해 꺼내놓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치료제로 쓰였다. 책 <디저트의 모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설탕을 위장병에 좋다고 여겼다. 또한 열, 기침, 방광이나 신장 질환, 심지어 전염병에도 설탕을 처방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설탕은 잔칫상을 장식했다. 15세기에는 설탕으로 만든 사탕과자가 등장하는데, 당시 귀족들은 많은 양의 식사 후 이를 소화시키기 위해 일어서서 사탕과자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또 결혼식이나 축하연, 고위 성직자의 방문을 환영하는 자리에도 사탕과자가 빠지지 않았다.

디저트의 기쁨과 슬픔

결정적 계기는 17세기에 일어났다. 아메리카 대륙에 사탕수수 공장이 세워지면서 설탕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식후 단 음식을 즐기는 디저트 문화가 정찬 코스의 마지막으로 서서히 자리 잡았다. 디저트는 더욱 화려해지고 다채로워졌다. 설탕을 묻힌 아몬드, 브리오슈, 누가 등이 인기를 끌었으며, 아이스크림도 디저트의 하나로 정착했다.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생크림과 마카롱, 크루아상이 만들어진 것도 모두 이때다. 또 이 무렵 유럽 대륙에서는 기호품으로 커피와 차를 즐기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설탕을 타 먹으면서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스페인 공주가 프랑스 왕과 결혼해 초콜릿을 가지고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초콜릿 역시 널리 퍼졌다. 16세기 스페인에 처음 전해진 초콜릿은 원래 음료 형태로, 카카오콩 본연의 쓴맛이 강해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설탕을 섞자 전혀 다른 맛이 되었고, 이렇게 완성된 초콜릿이 피레네산맥을 넘어 유럽 대륙으로 나아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내려온 셈이다. 18세기 프랑스 마지막 궁정을 그린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속 화려한 디저트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들에 연유한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듯, 달콤한 디저트 너머에는 쓰디쓴 현실이 자리했다. 설탕의 대량 생산을 위해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에서 평화롭게 살던 흑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로 끌려갔다. EBS <지식채널e> ‘2704’편에 따르면 설탕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해 1800년경 영국에서는 인구 250명이 한 해 설탕 1t을 썼다. 설탕 1t은 흑인 노예 1명이 살아 있는 동안 만들 수 있는 양의 전부였다. 그렇게 약 300년에 걸쳐 1,500만명에 이르는 흑인 노예가 생겨났다. 과도하게 당을 즐기면서 병도 뒤따랐다. 화가 폴 세잔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는 당뇨병을 앓았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단것을 너무 많이 먹어 이가 전부 썩기도 했다. 대량 생산으로 계층에 상관없이 설탕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한 끼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가난한 이들에게 설탕이 들어간 단 음식은 디저트가 아닌 그저 열량을 높여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영양소 보충 없이 열량만 채운 몸이 얼마나 상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우리의 디저트

달콤함이 과하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이제 디저트와 적절히 거리 두기에 나선다. 절제하고 인내하되, 특별한 날에는 예약이나 웨이팅 등 과정이 조금 번거로워도 맛있는 디저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노력을 감수한다. 이때 특별한 날이란 생일,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이어트 중 보상으로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는 치팅데이(Cheating Day), 고생한 나를 위해 마련한 휴식 등 나에게 의미 있는 날이면 충분하다. 오늘 하루를 누군가와 기념하고 싶은 날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커스텀 케이크를 고른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마카롱은 선물로 제격이다. 주로 호텔들에서 많이 선보이는 애프터눈 티 세트는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아낌없는 칭찬이며, 디저트 카페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디저트에 도전하는 일은 즐거운 취미 생활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동물성 재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비건 디저트, 밀가루가 잘 소화되지 않는 이들을 위한 글루텐 프리 디저트 등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디저트도 속속 등장해 또 하나의 디저트 세계를 열어가는 중이다. 스스로를 만화가, 수필가, 그리고 디저트 탐험가라 부르는 김보통 작가는 자신의 책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에 이렇게 부제를 붙였다. “대단할 것 없지만, 위로가 되는 맛.” 그렇다. 필수 영양소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명 연장에 도움을 주지도 않지만, 디저트에는 오직 디저트라서 가능한 위로와 행복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긴긴 세월 인류가 디저트를 곁에 둔 이유의 전부다. 자, 오늘은 어떤 위로를 맛보러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