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L

STORY

걷는다는 것은

이족보행으로 넓은 세상을 탐구하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이 걷는 이유에 대하여.

Editor 이지윤
Reference <걷기 예찬>(다비드 르 브르통 지음, 현대문학 펴냄),
<소로우에서 랭보까지, 길위의 문장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외 지음, 예문 펴냄)

진화론과 창조론 논쟁을 부추기고 싶진 않지만 오늘날의 과학자 중 상당수는 인간이 온전하게 두 발로 걷게 되면서 비로소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직립보행이 가능해지자 두 손이 자유로워졌고, 놀고 있는 손으로 무엇이든 하기 시작했다는 것. 벽화를 그리고 도구를 만들거나 동물을 사냥하고 나아가 자동차를 설계하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도 두 손이 있어 가능했다. 걷기를 위해 양보했던 두 발은 현대에 와서 쓸 일이 줄었다. 수십 일에 걸쳐 지방에서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조선시대 선비들의 이야기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요즘은 하루에 만 보 이상 걷기도 어렵다. 택시, 지하철, 자동차 하다못해 도시 곳곳에 널린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다니며 발은 편해졌다. 일부러 산책을 가고, 달리기를 하거나 등산을 해야 두 발은 온전히 원초적인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 걷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가 저물고 마음을 먹어야 걷는 이 시대에 당연한 행위는 예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걷기, 모든 감각의 경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별명은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나이’. 고향인 프랑스를 떠나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말고도 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까지 평생을 유랑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두 발로 밟는 대지에서 영감을 얻었다. “숲길엔 어둠의 진영이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생동적이면서 따사로운 영감을 깨우며, 나는 걸어갔네. 그러자 보석들이 서로 바라보았고, 날개들도 조용히 비상하기 시작했지.” –‘새벽’ 중, “푸르른 여름 저녁이면, 오솔길로 가리라, 밀 이삭에 찔리며, 잔풀 밟으며. 몽상가 되어, 잔풀의 신선함 발끝으로 느끼리.” –‘감각’ 중. 철학자 루소는 걷기를 예찬한 학자 중 한 사람으로 걷다 보면 뜻하지 않은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 여행을 이렇게 회상하기도 했다. “나는 오직 행복한 날에만 늘 감미로운 기쁨을 만끽하며 걸어서 여행했다. 어느 날 짐보따리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점잖을 빼면서 자동차를 타야 했다. 내가 그 여행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가는 기쁨과 도착하는 기쁨뿐이었다.” 사회학 교수로 <걷기 예찬>을 쓴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는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법이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하다. 책의 첫 시작에서 그는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 가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문인과 철학자들이 예찬하는 걷는 행위는 장소를 이동하는 본질적 의미 대신 현대에 와서는 내 안의 무언가를 발견하기 위한 활동으로도 여겨진다.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활동

<와일드>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로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의 희망을 잃은 주인공 셰릴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하이킹 코스 PCT를 걷는 이야기를 다룬다. PCT는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코스로 길이는 4,265km에 달하며, 완주하는 데 평균 5~6개월 정도 걸린다. 물론 영화는 해피 엔딩이다. 주인공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혼자 걷는 동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역시 전 세계 여행자들이 꼭 한번 걸어보고 싶은 길로 손꼽힌다. 약 800km에 이르는 길은 과거 성지순례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국내에도 2007년부터 제주올레 길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일부러 올레길을 걷기 위해 제주를 찾는 사람이 생겨나기도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구부러진 길을 걷고 또 걸었고, 각 지방마다 올레길을 본뜬 둘레길이 생겨났다. 코스를 완주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일부러 고생을 자처해서 사람들이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걸으면서 바라보는 세상은 자동차를 타고, 비행기에서 보는 세상보다 훨씬 느리고 아름답다. <레 미제라블>을 쓴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걸어서 여행하는 방법보다 매력적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걷는 여행은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활기찬 일이다”라며 걷기 여행을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걸어서 여행하면 분명 차로 여행할 때보다 낯선 여행지의 풍경과 파도 소리, 뺨을 스치는 바람과 현지의 일상이 가까워진다. 그 어느 때보다 오감이 깨어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늘 눈앞에 머물렀던 휴대폰을 벗어나자 시야는 맑고 넓어진다. 조용한 골목을 탐험하고 잠깐 멈춰 사진을 찍는 자유로움도 걸어야 가능하다. 많은 여행자들이 아름다운 광경에 반해 걷는 지루함도, 발이 아픈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주인 모를 논밭, 말 방목지, 해변, 마을을 관통하는 제주올레 길을 걷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반면 관광하는 여행보다 더 고된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히말라야 트레킹 등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길을 선택한 이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안고 길의 시작점을 찾는다. 모든 일상과 경험에서 벗어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앞둔 한 명의 수행자는 걷는다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점점 사색의 경지에 다다른다.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때로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고, 이 길을 왜 걷나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목표를 향해 길의 끝까지 오롯이 스스로의 힘과 두 발로 이겨내보고 싶은 의지가 발을 움직인다. 눈앞의 까마득한 길 위에서는 힘들었던 기억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제법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도 생겨난다. 그리고 언젠가 걷는 이 길 끝에 종착지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힘겨운 시간과 문제를 버틸 힘도 얻는다. 이익과 효율을 위해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걷는 일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누구보다 더 빠르게 차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직 걸어서 터득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과 감각이 있다. 바쁜 일상에서 외면했던 주변의 풍경, 바깥공기보다 소중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우리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산책을 하고, 걷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