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L

STORY

브랜드가 말하는 것

식별을 위한 표시를 넘어 시대, 나아가 한 사람을 대변하는 브랜드에 대한 고찰.

Editor 조정화
Reference <브랜드의 브랜드>(백정현 외 공저, 스리체어스 펴냄), <브랜드 임팩트>(전병길 지음, 생각비행 펴냄)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처음 생긴 것은 중·고등학교 무렵이었다. 당시 앞주머니 하나만 달린 심플한 디자인의 백팩이 유행했는데, 그중에서도 잔스포츠와 이스트팩 두 브랜드가 양대 산맥을 이뤘다. 등하굣길 풍경을 생각하면 아직도 형형색색으로 색상만 다를 뿐 잔스포츠 아니면 이스트팩을 멘 아이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만 해도 하나의 브랜드가 곧 하나의 트렌드여서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 너도나도 같은 가방을 사서 메고 다닌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이상하지만, 옆자리에 앉은 친구도 이미 있는 같은 브랜드의 가방을 구해 ‘나도 이제 이거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자랑이 되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흐름이 한동안 이어졌다. 어느 해에는 신문에 보도될 만큼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패딩이 전국 중·고등학교 교실을 휩쓸었고, 또 다른 해에는 길을 걸으면 3초마다 하나씩 볼 수 있다고 해서 ‘3초 백’이라는 별명을 얻은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가방이 차고 넘쳤다. 유행하는 브랜드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트렌드에 대한 감각이 다소 떨어지거나 요즘으로 치자면 ‘아싸(아웃사이더)’로 여겨졌다. 인식의 변화는 2010년대 들어서며 스마트 시대가 열리고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와의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일어났다. 동네, 학교 등 작은 울타리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시각각 올라오는 SNS에서는 누군가 올린 같은 브랜드의 가방은 더 이상 자랑이 되지 못했다. 그보다는 나만 아는 브랜드, 전 세계 몇 안 되는 한정판 에디션이 넘쳐나는 피드들 사이에서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기에 더욱 효과적이었다.

브랜드의 시작

브랜드(Brand)는 ‘태운다(To Burn)’라는 뜻의 노르웨이 고어 ‘Brandr’를 어원으로 한다.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고대 유럽에서 자신의 가축을 다른 집 가축과 구별하기 위해 낙인을 찍던 행위에서 비롯했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으로 통한다. 식별의 표시로 시작된 브랜드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성곽을 쌓는데 쓰인 벽돌, 그릇, 기와 등 세계 곳곳의 유적과 유물에서 만든 사람을 나타내는 표식이 발견되었다. 이는 그리스와 로마, 이집트 등 고대 문명부터 중세 유럽, 중국,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시대는 물론 서양과 동양을 막론했다. 상품에 대한 품질을 보증하고 위조품 또는 유사품과 구별한다는 측면에서 기능적으로도 흡사하다.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브랜드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철도 등 운송 수단의 발달로 무역이 자유로워지면서 시장에 물건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소품종 소량 생산에서 다품종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리자 사람들은 마음 가는 대로 취향껏 능력껏 상품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책 <브랜드 임팩트>에서는 이 같은 시대에 대해 “늘 공급이 달리던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공급자가 수요자에게 자신을 선택해달라며 마케팅을 하는 시대가 열렸다”고 설명한다. 3대 명품 브랜드로 꼽히는 에르메스(1837년), 루이비통(1854년), 샤넬(1913년)이 설립된 것도 이 무렵이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최초의 브랜드인 소화제 활명수(1897년)가 탄생했다.

스몰 브랜드에서 리브랜딩까지

시대가 변하면 그에 맞는 브랜드들이 새롭게 나타났다. 1989년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발명 이후 전 세계가 인터넷망으로 연결되자 IT 브랜드 구글, 온라인 쇼핑 플랫폼 아마존이 만들어졌다. 2010년대 스마트 세상에서는 애플과 삼성전자가 모바일 시장을 두고 자웅을 겨루는 브랜드로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제 브랜드는 어디에나 있다. 작게는 휴지 한 장부터 크게는 아파트 단지까지,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플랫폼 서비스까지, 어쩌면 지금의 세상은 브랜드로 구성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몇 년째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스몰 브랜드 또한 달라진 시대의 방증이다.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고, 모두가 다 아는 브랜드가 아닌 나만 아는 브랜드가 특별하게 생각되는 시대의 반영이 프랜차이즈와 같은 빅 브랜드 대신 작지만 개성 강한 스몰 브랜드의 선택으로 이어졌다. 골목에 있는 작은 상점에서 시작한 스몰 브랜드들이 SNS를 타고 연남동, 성수동, 익선동, 을지로 등 핫 플레이스들을 탄생시켰고, 패션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플랫폼으로 성장한 무신사, 새벽 배송으로 이커머스 시장을 재편한 마켓컬리 등도 그 시작은 온라인 스몰 브랜드였다. 이제 사람들은 지도를 보지 않고서는 찾기도 힘든 주택가 외진 골목이라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부합한다면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생전 처음 보는 브랜드일지라도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면 선뜻 지갑을 연다. 대표적인 스몰 브랜드 성장 사례로 손꼽히는 미국 스페셜티 브랜드 블루보틀이 성수동에 국내 1호점을 열 당시 새벽 6시부터 줄을 서고 길게는 6시간까지 대기하기를 사람들이 마다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고의 커피를 원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비전 아래 로스팅한 지 48시간 이내의 스페셜티 원두만 사용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문 바리스타의 핸드드립을 고수하며, 커피의 본질에 집중한 블루보틀의 감성과 철학에 사람들은 공감했고 직접 경험하고 싶어 했다. 19세기 후반 또는 20세기 초 창립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건너온 100년 이상 전통을 지닌 명품 브랜드들의 리브랜딩도 인상 깊다. 특히 2014년까지만 해도 한물갔다는 평가와 함께 부진을 면치 못했던 구찌의 재도약이 눈부시다. 2015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새롭게 임명된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관능미로 함축되던 톰 포드 시대의 구찌를 벗겨냈다. 달라진 시대에 맞게 타깃 고객층을 MZ세대로 새롭게 설정하고 그에 따라 소통 채널과 제품 디자인도 정비에 나섰다. 오랜 시간 지켜온 구찌의 아이덴티티에 빈티지와 스트리트, 젠더리스, 맥시멀리즘 등을 덧입혀 ‘구찌피케이션(Guccification)’이라 부르는 구찌만의 스타일을 다시 창조했다. MZ세대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들은 ‘It’s Gucci’라는 표현을 사용해 ‘좋다, 멋있다(It’s Good)’라는 말을 대신했으며, 가장 사랑하는 명품 브랜드로 서슴없이 구찌를 꼽았다. 올해도 구찌는 2021 S/S 컬렉션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에몽과 컬래버레이션한 상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구찌가든을 열고 신상품을 공개하는 등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박찬용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책 <요즘 브랜드>에서 “현대 사회의 브랜드는 말 그대로 일종의 자기소개서”라며 “요즘의 브랜드는 정체성 세부 조절이 가능한 시대에 사람들이 구입 가능한 정체성 배지”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처럼 친환경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 선택하는 브랜드는 모두 다르다. 지금 곁에 둔 브랜드는 무엇인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