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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AUG 2020

좀비가 대세

요즘처럼 좀비가 이슈인 시대가 또 있었나 싶은데, 과거를 더듬어보니 좀비물의 인기는 역사가 꽤 깊다.

Editor 장새론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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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스릴러계에서 좀비물만큼 요란하게 성장한 장르는 없을 것이다. 좀비가 주인공인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 때마다, 소설과 웹툰 등에서도 유사한 소재의 작품이 출시되며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 현상이 벌어졌다. 2013년 한 언론이 게재한 기사 ‘어쩌다 세상은 좀비 · 전염병에 열광하게 됐나’에 따르면 좀비를 소재로 한 로맨스 영화 <웜 바디스>가 그해 국내 개봉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고 <워킹 데드> 시리즈가 미국 공중파, 케이블 채널을 통틀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으며, 한국에서는 전염병 소재 드라마 <더 바이러스>와 소설 <28>(정유정), <전염병>(배영익) 등이 기대를 모은다고 전한다. 기사는 이와 함께 “(현실적 재난을 두려워하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라고 덧붙인다. 2016년 <부산행>이 개봉한 이후로는 좀비 관련 기사가 등장할 때마다 언급되며 비교 대상이 되었다.

‘<부산행>의 계보를 잇는’, ‘<부산행> 이후의 이야기’ 등으로 기사와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다. 이듬해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는 ‘2016 트렌드 상품’으로 <부산행>을 꼽으며 “약해져가는 공동체, 개인의 불안이 타자와 시스템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2019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이 개봉한다. 시즌 1, 2 모두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높은 인기를 구가하며 온갖 부문에 인용됐다. 특히 한국의 전통 갓이 화제가 되었는데, 실제 글로벌 쇼핑몰 아마존닷컴, 이베이 등에서 갓의 판매량이 증가하기도 했다.

<킹덤> 이후로는 지난 6월 개봉한 <#살아있다>와 7월 개봉 예정인 <반도>까지 약진하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웹툰에서도 좀비를 다룬 작품은 끊이지 않고 연재 중이다. ‘데미지 오버 타임’, ‘1호선’, ‘지금 우리 학교는’, ‘데드 데이즈’, 그리고 최근 완결한 ‘좀비딸’까지 마니아 층의 호응을 얻었다. 좀비물의 지난 7년을 죽 훑기만 했는데도 그 인기가 식었던 적이 과연 있었던가 싶다. 그럼에도 최근 좀비물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는 건 역시 세계적 재난 사태와 맞물렸기 때문일 터다. 영화나 드라마라는 가상의 이야기 속 통제 불가능한 상황과 현실에서의 공포심이 얽혀 시너지 효과를 낸 셈이다. 대중의 관심은 현실을 제법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좀비물 역시 자연재해, 개인화 등 사회 변화로 인한 불안이 은근하거나 혹은 적나라하게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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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에 깃든 비판적 메시지

지금까지 좀비 영화는 단순한 공포물 이상의 의미를 전해왔다. ‘좀비 영화의 출발선’이라 불리는 조지 A. 로메로 감독은 좀비물에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통해 계급과 성별, 인종 갈등을 비판적으로 담아냈고, <시체들의 새벽>(1978)에서 미국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를 풍자했으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3-시체들의 날>(1985)에서 당대 정부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로메로 감독은 “현존하는 모든 재난이 곧 좀비”라고 말하며 “좀비 영화는 사람들이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낸 것”이라 했다.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지진이 일어나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 현실 자체가 영화 속 설정과 별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킹덤> 역시 좀비가 창궐한 배경 너머로 계급사회를 풍자한다. 영화평론가 허남웅은 “극중 자주 언급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미는 속한 계급마다 다양한 층위를 갖는다”고 정의했다. 세도가와 민초들에게 생존은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다. 좀비로부터 목숨을 지키는 게 우선시되는 상황임에도 혜원 조씨 일가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키며 좀비 못지않은 잔악함을 내보인다. 한편 왕세자와 민초들은 나라의 근간을 세우고 평화로웠던 일상으로 되돌아가려 치열하게 투쟁한다. 좀비에 물린 사람도, 물릴 일만 남은 사람도, 물리지 않은 사람도 어떤 의미로는 모두 희생자다. 거대한 재앙 앞에서 재물과 권위는 무의미한 듯 여겨진다. 그러나 좀비물 속 사회는 한층 심오하다. 생존이 우선인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탐욕을 내세우고 어떤 이는 연민을 발휘한다. 인간적 면모를 상실한 좀비들이 도화지처럼 깔린 상황에서 본성이 도드라지는 셈이다. 이러한 면모는 <킹덤>뿐 아니라 여러 좀비물에서 보편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좀비에 맞서며 마음속 연민과 정의감을 발휘하는 주인공이든, 공포에 잠식돼 스스로 좀비가 되고 마는 조연이든, 현실에서 누구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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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물의 진화

좀비의 움직임은 인기와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좀비는 원래 뛰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꺾인 팔다리로 어기적어기적 바닥을 기거나 터벅터벅 비틀거리며 걸었다. 좀비가 달리기 시작한 건 1985년 작 <바탈리언>부터라고 전해진다. 망가진 신체로 기이하게 달리는 장면이 공포심을 극대화시켰다. 이어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에 이어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가 고꾸라질 듯 달려오는, 심지어 사람보다 빠르고 민첩한 좀비 캐릭터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킹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데는 고개를 격렬히 흔들며 움직이는 기괴한 모습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좀비의 특징도 다양하게 설정돼왔다. 기본적으로 좀비는 식욕만 남은 채 지능이 퇴화해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고 감정이 없다. 낮에는 빛을 피해 숨고 밤에만 활동한다. 하지만 <부산행>에서는 인간이었을 때의 온순하고 눈물 많은 성격을 그대로 지닌 채 좀비가 된 캐릭터가 등장하는가 하면 낮에 주로 활동한다. 최근 개봉한 <#살아있다>에서도 좀비는 생전 버릇과 기억이 남아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 손잡이를 돌리는 등 지능이 남은 캐릭터로 등장했다. 한편 곧 개봉하는 <반도>에서는 좀비로 인해 폐허가 된 세상에서 좀비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된 집단을 담기도 했다. 좀비와 사람의 캐릭터가 다양화하면서 좀비물 역시 스케일이 커지는 듯 보인다. 좀비물은 단순한 공포 장르에서 나아가 코믹, 드라마와 접목하며 흥미를 더하기도 한다. 특히 코믹 호러물은 긴장감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해 꾸준히 인기를 끈다. <기묘한 가족>, <새벽의 황당한 저주>, <좀비랜드> 시리즈 등 영화와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 같은 드라마가 대표 코믹 호러물이다. 특히 <좀비랜드>의 경우 1편 촬영 당시 엠마 스톤, 제시 아이젠버그 등 출연진이 신인 배우였는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음에도 2편 <좀비랜드: 더블 탭>에 대거 출연하며 의리를 자랑했다. 1, 2편 모두 B급 코믹 영화의 웰메이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