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ecia

TREND

SEP-OCT 2020​

박물관 랜선 투어

원하든 원치 않든, 전시 관람 트렌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Writer 이은혜(칼럼니스트) Editor 주원

트랜드

최선책이 요원하다면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택해야 한다. 지금처럼 온 세계가 대면의 자유를 누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언택트(Untact)한 삶이 대안이 될 것이다. 덕분에 재택근무와 쇼핑, 교육 분야는 긍정적 신호를 감지했지만 여행, 문화 예술 분야는 빨간불이 켜졌다. 온라인상에서 두 발로 직접 걷고, 보고, 만지는 즐거움을 대체할 만한 현장감을 느끼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구책으로 생겨난 개념이 랜선 투어다. 공간을 생생하게 구현하는 가상현실(VR)과 대화형 매체(인터랙티브 미디어)를 통해 방 안에서 여행을 떠나고 예술의 세계를 탐험하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잠재력의 물꼬는 공연 문화계가 먼저 텄다. 그전부터 유튜브, 네이버TV 등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스트리밍 공연 문화가 서서히 자리 잡은 덕분이다. 지난 4월 이틀간 유튜브에서 무료로 생중계된 방방콘(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의 준말)은 누적 조회 수가 5,000만 건을 넘겼고, 첫 유료 온라인 콘서트의 동시 접속자 수는 최고 75만 명을 넘기는 등 가능성을 내다봤다. 이제는 랜선을 타고 뮤지컬, 오페라, 오케스트라 연주 등 공연 예술계 전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박물관도 온라인 개관을 서둘렀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박물관 홈페이지에는 전시품 관련 정보나 영상이 게재돼 있긴 했으나 흥미를 끌 만한 콘텐츠 부재로 주목받지 못했다. 최근엔 큐레이터가 직접 작품을 설명하는 영상이나 가상현실(VR) 서비스, 라이브 대담을 시도하며 온라인 전시 관람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 3대 박물관도 온라인 개관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을 비롯해 예르미타시 미술관, 바티칸 미술관 등 전 세계 유수의 박물관도 온라인 개관을 시도하고 있다. 언제까지 문을 꽁꽁 걸어 닫을 순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관람객들은 가상현실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박물관 구석구석을 관람하고, 사진과 동영상으로나마 소장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바티칸 미술관은 시스티나 성당과 피오 클레멘티노 전시관을 포함해 총 7개의 공간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인파에 쫓겨 제대로 보기 힘든 벽화나 아치형 천장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어 반응이 뜨겁다. 예르미타시 미술관은 옛 궁전으로 쓰이던 건물의 아름다운 공간과 588여 점의 작품을 영상으로 즐길 수 있다. 물 흐르듯 미술관 구석구석을 다니며 명작들을 담아내는데, 작품에 맞는 배경음악과 영상 중간중간 삽입된 무용, 악기 연주와 같은 퍼포먼스도 볼거리다. 아이폰으로 촬영된 5시간 분량의 이 영상은 애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다. 어렵사리 첫발은 뗐지만 아직 온라인 개관은 가야 할 길이 멀다. 잠깐의 호기심은 충족될지 몰라도, 재접속으로 이어질 만한 콘텐츠는 미비하다.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구글의 ‘아트앤컬처(Arts&Culture)’ 서비스다. 구글과 제휴를 맺은 전 세계 5,065개 박물관의 스트리트 뷰와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한다. 하나의 박물관을 탐색하듯 둘러보거나 음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박물관을 통해 도시의 역사를 배우며 고대 유물부터 현대미술까지 연대별로 살펴보는 등 이용해볼 만한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스트리트 뷰는 마치 미술관을 걸어 다니는 듯 제법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구글 플레이와 iOS에서 무료로 앱 이용도 가능하다.

랜선 큐레이터와 가이드까지 등장

국내 박물관의 경우 전시 관람은 시간당 입장 인원수를 제한하는 ‘거리 두기 관람’을 진행하기 때문에 온라인 사전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해외보다 국내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이긴 하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어 온라인 관람으로 대리만족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국내 주요 박물관들은 가상현실(VR)뿐만 아니라 작가 인터뷰나 큐레이터가 직접 안내하며 전시를 설명하는 등 다채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온라인 전시관은 가상현실로 볼 수 있는 전시가 현재 총 8개다. 이미 관람이 종료된 전시로, 주요 유물을 클릭하면 360도 다양한 각도에서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하이라이트 유물을 일일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화면 하단에 클립처럼 나열돼 있어 둘러보기 편하며, ‘소장품3D보기’를 통해 460여 개의 주요 소장품을 찬찬히 훑어볼 수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온라인 미술관은 큐레이터가 직접 전시를 해설해주는 영상뿐 아니라 ‘관장이 들려주는 미술 이야기’, ‘문화 예술 강좌’ 등 400여 개의 풍성한 콘텐츠를 보유한다. 전시 VR 영상의 경우 사용자가 원하는 작품을 클릭하면 텍스트, 오디오 가이드가 화면과 연결돼 랜선 관람을 돕는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는데, 오프라인 전시 종료 후 유튜브로 전시 관련 라이브 토크 방송과 온라인 전시 투어 영상을 선보였다. 서울시립미술관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SeMA_Link#모두의소장품> 영상 및 지난 전시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불안한 해외여행 대신 가이드와 함께 랜선 투어를 떠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여행 상품 중개 플랫폼을 운영하는 ‘마이리얼트립’은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세계 유명 여행지를 영상으로 둘러보는 랜선 투어 상품을 제공 중이다. 특히 박물관 투어 인기가 높은데,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박물관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가이드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PC, 노트북, 태블릿, 스마트폰 중 하나만 있으면 어디서든 정해진 시간에 접속해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화상으로 가이드의 얼굴을 볼 수 있으며,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도 가능하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에 비할 수는 없지만, 작품 감상의 몰입도가 높아 현재로선 최선의 대리만족 방법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