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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R 전성시대

음악과 언어 외적인 소리가 이렇게 각광받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20년 전만 해도 단순한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오늘날에는 ‘숙면 유도’, ‘집중력 향상’의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Editor 장새론여름
Reference <THE NEW YORK TIMES MAGAZINE>

ASMR 애호가로서 최소 1일 5콘텐츠를 소비하는 중이다. 그 이전까지 습관적으로 뉴스나 SNS를 살폈기에, 딴짓을 좀 덜하려는 의도로 ASMR에 접근했다. 사람 목소리에는 쉽게 신경이 쏠리니 ‘NO TALKING’을 검색어에 꼭 넣었다. 동물이 등장하거나 요리하거나, 공부하는 것들이 잘 맞았다. 스토리도 없고 딱히 영상미도 없기에 흘려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보다 보니, 요즘은 집중할 일을 앞두고 ASMR부터 켜고 본다. 빠져든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몸은 이완 상태지만 머리는 약간의 긴장 상태인 게 좋았다고나 할까. 그 느낌은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호불호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ASMR을 처음 인지한 사람들 역시 그랬을 것이다. ASMR은 자율 감각 쾌락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요약한 단어다. 청각 자극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시각, 촉각, 후각, 인지적 자극 등 반응을 가리키는 용어다. ASMR의 출발점은 2008년경부터 활성화한 온라인 커뮤니티다. 피부를 스칠 때의 묘한 기분, 머리를 감을 때 척추가 가려운 느낌 등 원인 불명의 기묘한 느낌을 받은 이들이 미국의 대체의학 커뮤니티 ‘Steady Health’에서 경험을 공유한 것이다. 이러한 자극 반응은 ‘Brain Massage’, ‘Head Tingle’, ‘Brain Tingle’, ‘Spine Tingle’ 등으로 불리다가, 미국 뉴욕의 회사원이던 제니퍼 알렌이 ASMR로 정의하면서 두루 쓰이게 됐다. 이윽고 ASMR 커뮤니티이자 연구 기관인 ‘ASMR UNIVERSITY’가 설립되었고, ASMR 효과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ASMR을 공론화한 제니퍼 알렌은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영상을 보는 동안 두피에서부터 척추까지 찌르르한 감각과 환희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계곡 물소리와 댓잎 소리에 아득한 기분을 느껴본 적 있다면 그 느낌이 간접적으로나마 이해될 것이다. 2018년 영국 셰필드 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은 ASMR 반응을 연구했다. ASMR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개 실험군을 나눠 각각 ASMR 영상에 대한 반응을 관찰했다. 실험 결과 비경험자들에 비해 경험자들의 심박수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더 크게 감소하며 긴장 완화 효과를 보였다. 그 이전인 2016년에는 캐나다 위니펙 대학교 심리학과와 매니토바 대학교 영상의학과가 ASMR에 따른 뇌 반응을 측정했는데, 정보를 전달하고 해석하는 부위의 활동은 감소하고 기억 및 감정을 주관하는 부위는 활성화한 것으로 확인했다. 국내에서는 한양대학교 융합시스템과 연구팀이 ASMR을 감상하는 동안 이완 효과와 수면 유도 작용, 집중력 자극 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남을 밝혔다. 학자들 사이에서 ASMR은 모호하고도 광범위한 자극 반응이기에 연구하기 어려운 분야로 여겨진다. 하지만 ASMR을 즐기는 사람들은 확신한다. 집중력을 높이는 데, 긴장을 이완하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힐링부터 개그까지 다변화한 장르

국내에서 ASMR 콘텐츠는 2015년을 기점으로 관심이 급증했다.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종류도 다양해졌고, 자연의 소리를 담은 고전 힐링 사운드부터 음식을 활용한 콘텐츠, 일상을 편안하게 담은 브이로그까지 다양한 카테고리가 생겨났다. 좋게 여겨질 리 없을 만한 소리도 ASMR이라는 타이틀 아래 활발히 소비된다. ASMR이 정의된 지 불과 10여 사이에 나타난 현상이다. 음식을 먹는 소리, 피부를 긁는 소리, 기계음 소리 등이다. 종류가 워낙 다양해 한계에 다다른 듯하면서도, ASMR계에는 늘 참신한 콘텐츠가 등장한다. 최근에는 개그우먼 강유미의 유튜브 채널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이 돋보인다. 심신 안정과 집중력 향상을 추구하던 기존 ASMR과 달리 웃음 코드를 더했는데, 속삭이는 소리에 실감나는 분장, 현실적인 연기로 완성도를 높였다. 채널에는 2020년 12월 기준으로 50개 이상 콘텐츠가 게시돼 있다. 대부분 100만 뷰를 훌쩍 넘기며, 많게는 580만 뷰에 가까운 것도 있다. 드라마적 요소를 더한 콘텐츠도 인기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asmr soupe’는 ‘짱구네 집에서 낮잠 자기’, ‘해리 포터의 방’ 등 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비롯한 가상 세계를 설정하고, 주택가 소음과 까마귀 울음소리, 멀리서 들리는 거실 소리 등을 어우러지게 접목했다. 댓글에는 ‘해리포터와 함께 숙제하는 듯하다’라거나 ‘짱구네 집에 놀러 간 것 같다’처럼 절묘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일상에서 무심코 흘려듣는 소리들이 스크린에서 느낀 감동을 현실로 소환하는 것이다.

ASMR을 발 빠르게 접목한 시장

ASMR이 보편화하고 청취자도 늘면서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월트디즈니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가 대표적이다. 디즈니플러스는 2020년 5월 애니메이션 클립과 ASMR을 접목한 오리지널 시리즈, ‘제니메이션(Zenimation)’을 공개했다. <모아나>와 <겨울왕국>, <알라딘>, <뮬란> 등 애니메이션의 주요 장면에 음악 대신 효과음을 넣은 영상 클립이다. 어린 모아나가 바다의 부름을 받는 장면에 파도 소리를 부각하고,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함께 걷는 장면에 사박사박 눈 밟는 소리를 넣었다. 오케스트라 선율 대신 일상의 편안한 소리를 배경에 깔아 안정감과 리프레시 효과를 선사한다는 의도다. 당시 디즈니플러스는 각각 7분 분량의 열 개 에피소드의 제니메이션을 선보였는데, 4개월 뒤인 지난 9월에는 각 영상의 재생 시간을 늘린 확장판 버전을 출시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에서는 온라인이 아닌 현실에서 ASMR을 경험하는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극작가 앤드류 호프너가 개발한 일명 ‘위스퍼롯지(whisperlodge)’다. 심신을 이완시키는 스파와 유사한 효과를 내기에 ‘ASMR 스파(Spa)’라고 정의한다. 참가자들은 90여 분간 3개의 방을 거치며 눈이 가려지거나 눈 감은 상태에서 빛과 소리, 촉감을 느끼게 된다. 진행자는 머리를 빗겨주거나 빗으로 피부를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귓속말을 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와 숨소리, 접촉이 주는 안도감은 온라인에서 귀로만 경험하는 ASMR과는 차원이 다르다. 광고계 역시 ASMR을 적극 활용한다. 제품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제품이 주는 느낌과 감성을 소리로 전하는 것이다. 지난해 공개된 BMW X7은 세차되는 차량 안에서의 소리를 활용해 아늑하면서도 역동적인 이미지를 나타냈다. 2017년 이케아는 무려 25분에 달하는 광고 영상에 가구를 두드리거나 긁는 소리를 담아 숙면을 유도했는데,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를 반영한 것이다. 한편 수면을 위해 ASMR을 청취하는 이를 위한 전용 헤드폰도 등장했다. 수면안대와 결합한 블루투스 이어폰, 헤어밴드 형태의 헤드폰 등 독창적인 형태다. 국내에는 정식 출시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쉽게 구할 날이 오기를 ASMR 팬으로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