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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비치코밍

바다를 지키기 위한 행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Editor 조정화
Reference <바다를 살리는 비치코밍 이야기>(화덕헌 지음, 썬더키즈 펴냄)

오염된 지구를 걱정하다가도 푸르고 맑은 제주의 바다로 여행을 하거나 TV를 통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있다는 아름다운 해변을 보게 되면 이내 안심이 된다.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겠구나, 싶어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다. 지난 5월 말 서울에서 개최된 P4G 정상회의에서는 “이대로 가면 2050년에는 바닷속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올해 태어난 아이들이 서른 살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는 어쩌면 맑고 푸른 바다는 더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옛날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비치코밍을 시작한 이유

2013년 여름, 온라인상에서 지도 한 장이 화제를 모았다. 5대양 6대주가 담긴 세계지도로, 지도에는 바다를 따라 세계를 떠도는 오리 인형의 경로가 그려져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1992년 1월, 한국과 일본 인근 북태평양을 지나던 화물선이 풍랑을 만나 싣고 있던 컨테이너 하나를 바다에 빠뜨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컨테이너에는 노란 오리를 비롯해 플라스틱으로 된 목욕용 인형 약 2만8,800개가 들어 있었다. 바닷속에 그대로 쏟아진 인형들은 물 위로 둥둥 떠올랐고 곧 해류를 따라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소식을 접한 미국의 해양학자 커티스 에베스메이어(Curtis Ebbesmeyer)는 사고가 일어난 지점으로부터 해류와 바람 주기를 계산해 오리 인형이 언제 어디에 나타날지 예측하고 이를 추적하는 연구에 나선다. 그의 예측은 거의 맞아떨어졌다. 오리 인형들은 같은 해 11월 알래스카 싯카 해안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데 이어 미국 워싱턴, 캐나다, 일본, 하와이에 나타났으며, 2001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던 지역을 지나 2003년에는 미국 동부 해안에 당도했다. 북극해로 흘러가 빙하에 갇힌 오리 인형 일부와 호주, 남미, 남아프리카에 상륙한 오리 인형도 발견되었다. 다시 시간은 흘러 지난 2013년, 그 해 영국 해안에 오리 인형이 도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커티스 에베스메이어가 오리 인형 한 마리당 100달러를 현상금으로 내걸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오리 인형의 세계 일주는 해류 연구에 혁혁한 공을 세운 동시에 더는 해양오염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남겼는데, 하나는 사고 발생 후 무려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바닷물과 햇빛에 의해 표백된 몇몇을 제외하고 상한 데 없이 멀쩡한 오리 인형들처럼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또한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오리 인형들이 전 세계 해안가에 모습을 드러냈듯이 바다쓰레기 역시 돌고 돌아 결국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비치코머를 자청하며 해변으로 나가 바다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구 시민은 지금 비치코밍 중

비치코밍(Beachcombing)이란 해변(Beach)과 빗질(Combing)을 합한 말로, 이름 그대로 해변을 빗질하듯 바다의 표류물이나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뜻한다. 비치코밍을 실천하는 사람을 가리켜 비치코머(Beachcomber)라 부르며, 비치코밍과 더불어 많이 쓰이는 비치클린(Beachclean)은 바다 청소 및 정화 활동에 보다 초점을 맞춘 용어로 이해하면 쉽다. 비치코밍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지구 시민 모두가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필(必)환경 시대가 열리고, 조깅을 하며 쓰레기도 줍는 플로깅(Plogging)이 북유럽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널리 퍼지면서 함께 주목받았다. 물론 쓰레기 하나 줍는다고 해서 바다가 갑자기 깨끗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체 바다쓰레기 중 약 80%가 육지에서 흘러온 것이고, 육지에서 온 쓰레기의 80% 이상이 플라스틱 제품이며, 해변의 비닐봉지 1장은 미세 플라스틱 175만 개를 주운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니, 바닷물에 쓰레기 하나를 그저 흘려보내지 않는 일만으로도 비치코밍의 의의는 다한 셈이다. 실제 SNS에서 #beachcombing, #beachclean 등으로 검색하면 나이와 성별, 직업, 국가, 인종을 불문해 바다를 지키는 일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치코밍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도 바다 환경에 관심을 갖고 비치코밍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계속 느는 모양새다. 2017년 12월 설립된 ‘세이브제주바다’는 올 1월 기준 1,882명의 사람들이 9.8톤의 바다쓰레기를 수거했으며, 코로나19로 인해 정기 모임 대신 진행 중인 ‘나혼자한다_비치클린’ 프로그램에도 반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600명 이상이 참여해 비치코밍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8월 청년 스타트업 스포넥트에서 주관한 ‘비치 대장정’에서는 대학생 50명이 태안 학암포해수욕장부터 꽃지해수욕장까지 87km 거리를 4박 5일 동안 걸으며 바다쓰레기 1,305kg을 모으기도 했다. 2회째를 맞이한 올해는 참여 인원을 100명으로 늘렸는데 예정된 마감일보다 일찌감치 모집을 완료했을 뿐 아니라 기업 후원도 줄을 잇는 등 전년보다 반응이 더 뜨겁다.

비치코밍 즐기기

제로웨이스트, 플라스틱 프리 등 여타의 친환경 실천이 오래 지속되려면 즐거워야 하듯이 비치코밍 역시 즐겁게 하기 위한 모색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제주 바다를 사랑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재주도좋아’는 2014년부터 ‘비치코밍 페스티벌-바라던 바다’를, 부산의 마을기업 ‘에코에코협동조합’에서는 2017년부터 ‘해운대 비치코밍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비치코밍 워크숍은 물론 바다쓰레기로 만든 대형 설치 작품과 전시, 공연 등을 준비해 비치코밍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활동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치코밍을 통해 모은 바다쓰레기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제작, 판매하는 소품숍과 원데이 체험 클래스도 이제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제주의 재주도좋아(@jaejudojoa), 양양의 리오션(@reocean_yy) 등이 대표적으로 바다 유리를 활용해 액자, 액세서리, 방향제 등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다. 바다 유리는 깨진 유리병이 오랜 세월 바닷속에서 이리저리 깎여 작은 조각이 된 것인데, 유리 특유의 투명함과 반짝임이 아름다워 색깔별로 모아 병에 담기만 해도 근사해 업사이클링 소재로 특히 인기가 좋다. 그런가 하면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에서는 아예 비치코밍을 주제로 한 여행 상품도 내놓았다. 4시간가량 소요되는 체험 클래스 상품으로, 해변에 나가 비치코밍을 하고 바다에서 채집한 해산물로 지역 음식을 직접 요리해 식사한 뒤 주워온 바다쓰레기 또는 자연물을 이용해 원하는 소품까지 만드는 것이 코스다. 비치코밍은 필환경 시대를 맞이한 인류에게 필연적 선택이자 미룰 수 없는 행동이다. 가까운 미래에 색색의 산호와 물고기가 아닌 플라스틱과 헤엄치는 불상사만큼은 막고 싶은 바람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금, 바닷가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