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테이블웨어
단순히 먹고 마시는 본래의 용도 외에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오브제 또는 수집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테이블웨어 트렌드를 키워드로 정리했다.
좋아하는 전시회에서 사온 유리컵은 딱 한 모금의 물을 마시기에 적당해 애용한다. 친구가 선물해준 멕시코풍 그림이 그려진 작은 접시는 액세서리 수납함으로 자리 잡았다. 좋아하는 노란 컬러의 철제 트레이 위에는 즐겨 쓰는 향수를 올려뒀다. 일본 여행에서 구매한 돌고래 모양의 젓가락 받침대는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테이블웨어가 이렇게나 많다. 식음료를 위해 존재하던 테이블웨어가 생활 곳곳에 파고들어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하는 것이 트렌드인 시대다. 머그컵은 화분이 되고, 화병은 연필꽂이로 분하거나 아무런 용도 없이 선반에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소품도 있다.
귀여운 게 최고야, 오브제
“책을 읽다 문득 어떤 문장 앞에 멈추는 이유는 다양하다. 모르는 정보라. 아는 얘기라. 필요한 문장이라. 갖고 싶어서. 그저 아름다워서.” 소설가 김애란 작가의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의 한 문장이다. 책을 읽다 아름다운 문장을 마주쳐 사진을 찍거나 밑줄을 긋거나 노트에 적는 등 저마다의 방법으로 마음속으로 들어온 뜻밖의 문장을 채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단순히 귀여워서, 아름답다는 이유로 우연히 맞닥뜨린 아이템 역시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로파서울’에서 구매 가능한 권소정 작가의 디저트 잔은 얼핏 보면 장난감처럼 생겼다. 마치 골판지 같은 표면과 사랑스러운 컬러감 덕분이다. 작가는 대량 생산품의 부산물인 골판지를 주제로 그와 정반대인 수공예 작품을 만들어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작은 핸드메이드 잔에 작가의 메시지까지 담겨 있으니 미술관에 있는 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 로파서울의 와인 잔 세트는 와인 딱 한 모금이면 충분할 것 같은 아담한 사이즈지만 화이트, 블랙 컬러로만 이뤄진 심플하고 힙한 디자인과 감각적인 패키징으로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좋다. 와인을 마시지 않아도 식탁 위에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포인트가 되어줄 소품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꾸준히 이어져온 집 꾸미기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귀여운 게 최고’라는 소비 트렌드가 무용한 소품의 인기를 이끌고 있다.
접시 위에 새겨진 그림과 레터링
접시는 무조건 세트여야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무늬, 컬러로 통일한 밥그릇과 반찬 그릇을 포함한 풀 세트가 우리네 밥상에 올랐다. 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존중받는 지금은 식탁의 풍경마저 달라졌다. 청량한 푸른색의 유리 접시, 초록색으로 글씨가 써 있는 넓은 볼, 버터 컬러로 접시에 구멍이 뚫린 치즈 모양 접시까지 나만의 취향으로 꾸려진 각양각색의 테이블웨어가 식탁에 오른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예쁜 그릇에 담은 음식이 더욱 멋스러워 보이고 감성 넘치는 건 기분 탓일까? 특히 최근에는 그릇 위에 글씨나 그림이 그려진 디자인이 인기다.
여유로운 주말의 감성을 담아낸 키친&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머위켄드’의 각종 접시와 머그컵에는 커다란 레터링이 들어가 있다. 늘 먹던 빵이나 과일도 따뜻한 무드의 접시 위에 담아내니 유명 브런치 카페처럼 느껴진다. 빈티지 리빙 제품을 판매하는 가드닝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세실앤세드릭’에서는 브랜드 감성을 듬뿍 담아낸 세라믹 제품도 소개한다. 하얀 접시 위에 빈티지한 느낌의 꽃과 과일 일러스트가 들어가 심플하면서도 우아하다. 음식 대신 향수나 액세서리 등의 소품을 올려놓는 받침대 용도로도 잘 어울릴 것 같다. 친환경 대나무를 원료로 한 뱀부 테이블웨어의 대표 브랜드 ‘제니아 테일러’와 위빙&포터리 브랜드 ‘블루아워’가 협업한 시리즈는 자유로운 느낌의 일러스트와 비정형 무늬가 특징이다. 홈 카페 놀이, 집들이를 할 때도 나만의 취향이 듬뿍 담긴 접시는 빛을 발한다.
프리미엄 접시의 인기
에르메스, 구찌, 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에서도 테이블웨어를 출시하고 있다. 특히 에르메스는 ‘그릇 수집의 종착지’로 불리는데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접시 하나에 적게는 50만원에서부터 대형 플래터는 400만원을 넘기도 하지만 구매 후에도 실제 물건을 받으려면 1년 이상 대기하는 경우도 많다.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지노리1735’는 최근 테이블웨어 업계에서도 가장 핫한 브랜드 중 하나다. 2013년 구찌 그룹에 인수된 이후 패션, 스포티파이 등 장르를 넘나드는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독창적인 라인을 선보이는 중. 지노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핑크, 옐로, 블루 등 팝한 컬러는 식탁에서 더욱 화사하게 빛난다. 국내에서는 배우 고소영이 애용해 ‘고소영 도자기’로 이름을 알리며 올해 초 롯데백화점에 지노리1735 1호 매장이 생기기도 했다.
일반 접시의 10배, 100배가 넘는 가격의 프리미엄 테이블웨어는 단순히 음식을 담는 용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테리어와 리빙에 진심인 취향과 특별한 안목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거나 구하기 어려운 만큼 하나하나 모으는 재미를 즐기는 컬렉터도 생겨났다. 존재감을 자랑하는 접시 덕분에 식탁을 넘어 집 안 풍경도 근사하게 바뀔 수 있음을 요즘 테이블웨어의 인기가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