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팔고 즐기는 재미, 플리마켓
벼룩(Flea)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도 거래한다는 플리마켓은 누구나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다고 하여 프리(Free)마켓으로도 혼용되어 불린다. 사람과 이야기가 넘치는 플리마켓 나들이.
한 명의 인플루언서로 시작된, 띵굴시장
@thingoolmarket__official
띵굴시장의 시작은 독특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 다채로운 색을 빚어내는 보통의 플리마켓과 달리 띵굴시장은 ‘띵굴마님’이란 닉네임을 쓰던 블로거 이혜선 씨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2015년 9월 시작됐다.
당시 살림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던 블로그 ‘그곳에 그 집’을 운영하던 이혜선 씨가 “그거 어디서 샀어요?”란 질문을 무수히 받고 답변해주다가 아예 자신이 좋아하고 즐겨 쓰는 브랜드를 한자리에 모아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 즐겁게 어울려보자고 생각한 것이 계기. 25개 브랜드로 시작된 띵굴시장은 1년 만에 참여 업체가 100곳이 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생활 잡화 위주였던 브랜드 또한 음식과 패션 등 카테고리를 넓히게 된다. 작지만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발굴하는 데 일가견이 있던 띵굴마님이 일절 광고 협찬 없이 직접 써보고 좋았던 제품 브랜드만 선정하는 원칙 또한 신뢰를 쌓는 데 일조했다. 강원도 일대 호두나무로 제작한 ‘은곡도마’, 주부가 직접 개발한 주물냄비 ‘마미스팟’ 등이 띵굴시장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진 대표 제품들.
띵굴시장은 스몰 브랜드의 유통과 홍보 채널을 구축하며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띵굴로 거듭나, 온라인 띵굴마켓과 상설 매장 띵굴스토어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대한다. 아쉬운 것은 작년 5월 용산에서 열린 서른두 번째 띵굴시장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플리마켓 일정을 잡을 수 없어 현재는 온라인 영역에 중점을 두고 있는 상태라는 점. 2020년 9월부터 전국 유명 맛집과 전통시장의 식재료, 신선식품 등을 배송하는 띵굴마켓에 푸드 브랜드 1,000여 곳이 입점해 있을 만큼 다채로운 구성을 자랑하고, 성수동 성수연방에 위치한 띵굴스토어에 여전히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것으로 이후 열릴 띵굴시장의 그날까지 아쉬움을 달래야 할 듯싶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 보부상마켓
@bo.busang
충청과 전라권 등지에서 시작된 보부상마켓은 명칭부터 플리마켓과 잘 어울린다. 조선시대 시장을 중심으로 지게나 봇짐으로 물건을 짊어지고 다녔던 행상인 봇짐장수와 등짐장수를 아우르는 말인 보부상이 사람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다양성을 추구하는 플리마켓의 정체성과 연결되는 느낌이니까. 2016년, 전주 한옥마을의 카페 한 곳을 대여해 수제 간식과 반찬을 전문으로 하는 ‘시골 여자의 바른 먹거리’, 주방용품 전문 ‘쿠진’ 등 셀러 12팀으로 마켓을 연 것을 시작으로 이후 전주, 광주, 순천, 대전, 대구 등 전국 방방곡곡을 보부상처럼 돌며 마켓을 키웠다. 옥상 주차장에서 보부상마켓을 개최하는 등 플리마켓과 다소 상충되는 느낌인 대형마트와의 컬래버레이션도 화제를 모았는데 셀러들에겐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기존 대형마트 고객에겐 새로운 문화 체험 플랫폼 역할을 하는 등 윈윈 효과를 거뒀다는 후문. 올해에도 지난 5월, 전주 로마네시티에서 스물두 번째 보부상마켓이 열렸고, 7월에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홈테이블데코페어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보부상마켓은 장소와 날짜가 정해지면 참여를 희망하는 판매자들이 음식, 주방용품, 생활용품 등 각종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선보이는데, 간식류 등 먹거리와 독특한 아이디어 소품 등 직접 만든 물건이 주를 이룬다. 마켓 초기부터 꾸준히 함께한 고정 셀러들이 많고, 수제 가구 전문 ‘나무 목’과 키즈 편집숍 ‘어라운드 테이블’ 등 스타 셀러가 된 이들도 많다. 과거엔 ‘옥동자’로, 요즘엔 요리 유튜버 ‘옥주부’로 유명한 개그맨 정종철도 직접 만든 나무 도마 등을 들고 셀러로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축제의 한 장면 같은 즐거움, 마켓움
@market_ooom
캠핑을 좋아하던 손지민 마켓움 대표가 친구들끼리 ‘재미있는 거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마켓움. 명칭 또한 즐거움의 ‘움’, 새싹이 돋는 ‘움’이란 뜻에서 가져왔다. 친구와 친구의 지인들을 그러모아 캠핑 및 각종 물건으로 9개 부스를 채웠고, SNS에 사진을 올릴 때만 해도 일회성의 축제 정도로 예상했지만 힘주지 않고 의도하지 않은 ‘찐 즐거움 추구’에 끌린 덕분일까. 행사 당일 500여 명이 방문했고, 바다가 보이는 캠핑장에서 자연과 어우러져 파티와 음악회가 열리는 등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놀러 오는 곳’이란 콘셉트가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부채질하며 부산 지역 최대 플리마켓이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켓움의 특색은 ‘로컬’에 있다. 부산, 대구 등 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작가와 셀러들의 작품과 제품을 지역을 상징하는 공간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 경북 지역에서 목공예 제품을 선보이는 ‘장스목공방’이나 수제 소스 브랜드 ‘메종드율’ 등 보석 같은 지역 브랜드들이 마켓움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와 만나왔다.
바닷가에서 시작해 창고형 플리마켓으로 진행되다 대룡마을, 부산 영화의전당, 복합문화시설 F1963 등 부산의 명소 이곳저곳을 돌며 성장한 역사도 눈에 띈다.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연 마켓에서는 셀러 130개 팀이 참여했고 이틀간 관람객 7만 명을 기록했을 정도. 비정기적으로 열리지만 지난 2018년에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제안으로 옛 서울역 역사인 ‘문화역 서울284’에서 ‘마켓유랑’이란 이름의 원정 마켓을 열고, 2019년에는 노들섬 스케이트장 오픈과 함께 마켓움을 진행하는 등 착실하게 전국구 브랜드로 확장 중이다. 올해는 지난 5월 5일, 해운대와 동백섬, 마린시티 마천루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더베이 101에서 열려 성황리에 장을 마쳤다.
강을 닮은 사람들의 작품들, 문호리 리버마켓
@river_market
2014년 4월 시작해 경기도 양평의 명소이자 전국 최대 규모 플리마켓으로 거듭난 문호리 리버마켓. ‘조금 느리지만 정성스럽게 직접 만든 물건을 판매한다’는 원칙 아래 매월 셋째 주 주말, 문호리 강변에서 지역의 작가들이 만든 수공예 제품과 지역 농부가 직접 재배한 상품과 먹거리 등을 만날 수 있는 장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강변 대신 인근 테라로사 서종점 타운광장에서 ‘매일상회’란 이름으로 상설 매장이 열리고 있으며, 양평 외에 경기도 곤지암과 자라섬, 강원도 양양과 태백 철암 등 다양한 장소에서 쇼핑과 체험, 문화가 결합된 로컬 문화 커뮤니티 공간으로 선보이고 있다. 지난 5월 21일에는 리버마켓 판매자들의 유통 채널을 온라인까지 확대한 공식 온라인 플랫폼도 오픈해 전국 어디에서든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문호리 리버마켓의 장점은 판매자인 위버(We+River)들의 개성을 담뿍 느낄 수 있다는 것. 제품은 물론, 판매 부스의 깃발과 간판, 쓰레기통 등 소품 하나하나까지 개성을 담아 직접 제작해 공간 자체로 볼거리가 되곤 한다. 장소에 따라 기존 고정 위버들이 장비와 제품을 챙겨 움직이기도 하지만, 문호리 외 해당 지역 판매자를 추가해 지역성을 강조한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발달장애를 앓는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 ‘영희’ 역할로 출연한 정은혜 작가 또한 문호리 리버마켓의 위버. 정은혜 작가는 2016년부터 자신의 집 근처에서 열렸던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캐리커처를 그려왔는데, 지난 6월 23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에서는 그가 인기 셀러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아냈기에 코로나19 이전의 생생했던 문호리 리버마켓의 모습을 고스란히 목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