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자연을 들이다
집 앞에 정원이 없어도 일상에 자연을 들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벌써 꿈처럼 느껴지지만 몇 년 전 엄격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카페도, 식당에도 가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집에서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며 답답했던 일상의 루틴 중 하나가 식물을 살피는 일이었다. 습도가 높은 환경을 좋아하는 아스파라거스를 위해 수시로 공중 분무를 해주고, 하루가 다르게 새잎을 만들어내는 셀렘이 신기해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며 관심을 쏟았다. 덕분에 여전히 식물은 푸름을 자랑한다. 이처럼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식물계에 입문해 식집사가 된 이가 여럿이다.
행복한 식집사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홈 가드닝과 식물 인테리어를 뜻하는 플랜테리어는 팬데믹 이후 인기가 더 많아졌다. 당연한 일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식물이 주는 싱그럽고, 잔잔한 위안은 효과적이었다. 각자 상황에 맞는 방식으로 자연을 일상에 들이기 시작한다. 집 앞마당에 작은 텃밭을 마련해 상추나 파 등 채소를 기르고, 아파트에 거주한다면 베란다를 십분 활용해 ‘베란다 가드너’가 되기도 하며 작은 오피스텔과 원룸에도 화분을 몇 개 들이면 자연을 삶으로 초대할 수 있다.
집은 물론 카페나 레스토랑, 심지어 백화점에서도 플랜테리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이다. 2022년 오픈과 동시에 큰 화제를 모았던 ‘더현대 서울’은 도심 속 숲을 모티프로 진짜 잔디와 꽃, 30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실내 정원을 만들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새소리까지 나는 백화점은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칭하는 ‘집사’와 식물을 합쳐 만들어진 식집사를 자처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반려동물처럼 식물을 대하는 ‘반려식물’,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풀멍’, 파나 토마토 등 작물을 직접 키워 먹는 ‘홈파밍’, 희귀한 식물을 사고파는 ‘식테크(식물+재테크)’ 같은 신조어 역시 식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소비자 집단 8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반려식물을 기르는 목적으로 ‘정서적 교감 및 안정’을 선택한 사람이 55%로 절반을 넘었고, 공기 정화(27%), 실내 장식(14%)이 뒤따랐다. 이 외에도 어린 자녀와 식물을 기르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부모는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아이들은 우울감이 낮아졌다든지, 성인 암 환자에게 식물 치료를 했더니 정서적 삶의 질이 높아지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 분비가 증가하는 등 식물의 긍정적 효과를 입증한 다양한 실험과 결과는 식집사의 식물 사랑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취향을 반영한 트렌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사회답게 식물 키우기에도 개성이 빠질 수 없다. 저마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환경에 맞는 방식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중 LG전자에서 출시한 가정용 식물 재배기 ‘틔운’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은 와인 냉장고처럼 생긴 틔운은 씨앗키트를 장착하고 물과 영양제를 넣어준 다음 LED 조명을 켜기만 하면 된다. 휴대폰과 연동해 일조량, 식물 생장 정도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루콜라, 비타민 같은 엽채류 채소 또는 메리골드, 비올라 등의 꽃도 기를 수 있다. 집 안에서 손에 조금의 흙도 묻히지 않은 채 사계절 내내 푸르른 나만의 정원을 갖게 되는 것. 크고 작은 회사에서 다양한 크기의 가정용 식물 재배기를 출시해 접근성은 더욱 좋아졌다. 발명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식물 재배기 시장은 2020년 600억원에서 2023년 5,000억원을 예상할 정도로 늘어났다.
매스컴을 통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식테크 역시 새로운 식물 트렌드 중 하나다. 희귀 식물을 길러서 되파는 것으로 일반인이 보기에는 작은 화분에 3~4장의 잎이 달린 식물인데 300만~500만원까지 호가하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몬스테라 알보, 안스리움 등 관엽식물 중 희귀한 무늬를 가진 식물은 잎 한 장에 100만원에 거래된다. 하나 잘 키워서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된다니 기특한 식물이 아닐 수 없다.
쉽게 구매하기 힘든 희귀 식물 대신 독특한 식물에 집중한 식집사도 있다. 파인애플을 닮은 괴마옥, 거대한 완두콩처럼 생긴 남아프리카 식물 코노피튬 칼큘러스, 산발한 머리처럼 꼬불꼬불 줄기가 매력적인 준쿠스 등 남들이 흔히 키우는 관엽식물이 아닌 색다른 종과 수형을 찾아 여러 식물 가게를 투어하며 마음에 쏙 드는 ‘아이’를 고른다. 우아한 선을 자랑하는 황칠나무, 여릿여릿한 자태가 신비롭게 느껴지는 마오리 소포라는 감성 인테리어 연출용으로 인기가 좋고, 박쥐란이나 립살리스처럼 공중에 매달아 키우는 행잉 식물 또는 스투키, 아레카야자, 몬스테라 등은 실내 공기 정화 식물로 사랑받는다.
식물의 매력은 출구가 없다. 부담 없이 입문한 식집사의 세계는 평온하고 싱그럽다. 그렇게 들인 식물이 취미이자 생활이 되어 베란다 정원을 넘어 온 집 안을 장악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요즘. 삶이 삭막하게 느껴진다면 물, 햇빛, 바람 그리고 작은 애정만으로도 쑥쑥 잘 자라는 튼튼한 관엽식물 입양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