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그릇 수집가 데미타스 김봉균 대표
지나온 시간만큼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깃든 물건에 진심인 사람이 있다. 빈티지 그릇 수집가이자 가정식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봉균 대표에게 빈티지 그릇의 매력을 물었다.
아늑하고 포근한 데미타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 얕은 언덕을 오르면 닿을 수 있는 부암동.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낮은 건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이 아름다운 동네다. 미술관과 갤러리, 개성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해 찾는 이들도 많다. 전통과 현대, 소박한 감성과 감각적인 트렌드가 공존하는 부암동에서 1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식당을 찾았다. 김봉균 대표가 운영하는 ‘데미타스’다.
프랑스어로 데미(Demi)는 ‘반’을, 타스(Tasse)는 ‘컵’을 뜻한다. 작은 찻잔, 즉 에스프레소 잔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1세대 빈티지 그릇 컬렉터인 김연화 디자이너의 첫 번째 수집 아이템이 바로 데미타스였다고 한다. 이곳은 그녀가 그동안 모은 그릇을 전시하고 작업실로 쓰기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지금은 동생 김봉균 대표가 가정식 전문점으로 운영 중이다.
“원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누나의 작업실이었어요. 직업 특성상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아 제가 와 있곤 했죠. 그런데 간혹 카페로 착각해서 들어오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작업실을 카페로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이제는 밥을 찾는 손님이 생기더군요. 그렇게 식당으로 영업한 지 벌써 16년째인데요. 이렇게 오랫동안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부암동 고갯길, 작은 구옥 2층에 자리한 데미타스.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오르면 조리대와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아담한 다락방 같은 공간이 등장한다. 창밖으로는 부암동의 고즈넉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뷰 맛집’으로도 통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곳곳을 장식한 다양한 그릇이다. 오밀조밀 놓인 그릇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게 없다. 손때 묻은 그릇 덕에 공간이 더 아늑하고 포근해진 느낌. 김봉균 대표도 누나와 마찬가지로 빈티지 그릇 수집가다.

빈티지 그릇 컬렉터의 길
김봉균 대표가 빈티지 그릇을 수집하기 시작한 건, 누나의 영향이 크다. 하나둘 늘어나는 그릇을 보며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는 김 대표.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늘상 보고 접하다 보니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때부터 빈티지 그릇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역사도 살펴보고 어떤 종류가 있나 찾아보면서 관심을 갖게 됐죠. 그래서 저도 누나를 따라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어요.”
김 대표의 취향은 50~70년 된 빈티지 그릇이다. 100년 이상 된 앤티크 그릇보단 담백하고 모던한 빈티지 그릇이 더 마음에 들어서다. 대표적으로 아라비아핀란드, 로스트란드, 구스타브베리 등 화려하진 않아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그릇을 선호한다.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엔 해외 벼룩시장에 가야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과 SNS를 통해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외국 기업에 이메일을 보내서 구하곤 했어요. 이제는 SNS에서 맘에 드는 걸 찾으면 메시지를 보내 거래하죠.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간혹 원하는 그릇을 발견할 때도 있고요. 요즘에도 틈틈이 인터넷으로 찾아보곤 합니다.”
한때는 빈티지 그릇 수집가들 사이에서 성지로 불릴 만큼 수많은 그릇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웬만한 그릇은 모두 있지만 같은 제품이 여러 개인 그릇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정리한 상태. 그럼에도 아직까지 구하지 못했거나 희귀한 디자인의 그릇을 찾기 위해 알람까지 설정해놓았다는 김 대표. 모양도 기능도 다양한 새로운 제품이 매일같이 쏟아져나오는 오늘날,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굳이 빈티지 그릇을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
“빈티지 그릇의 매력은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릇 하나하나에 거쳐간 사람들의 추억과 희로애락이 담겨 있잖아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해요. 그런 그릇을 하나둘 모으는 게 소소한 행복이죠.”

공간에 의미를 더해준 시간
요즘 데미타스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식당으로 손꼽힌다. 다락방 같은 아늑한 공간에 예쁜 그릇이 즐비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정성 가득한 음식 맛 때문이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집밥 같은 느낌이랄까. 오픈 키친이라 요리 만드는 모습을 직관하는 재미는 덤. 김 대표가 주문, 요리, 서빙까지 모두 담당하기에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천천히 가게 내부도 구경하고 창밖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기다림마저도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원래 요리를 할 줄 몰랐어요. 누가 해주는 것만 먹어봤지, 직접 해본 적은 없었거든요. 어머니께 레시피를 배우고 도움을 받아서 시작할 수 있었죠. 처음엔 덮밥류 위주로 메뉴가 몇 가지 없었는데, 이후 카레, 파스타 등 트렌드에 맞춰 메뉴를 추가했어요. 잘 모를 땐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제 입맛에 맞게 만드는데, 다행히 손님들 반응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대표 메뉴는 두툼한 부채살과 큼직한 야채, 감칠맛 나는 소스가 조화로운 소고기 촙스테이크 덮밥. 이 외에도 생크림 새우 카레라이스, 바질페스토 크림 파스타, 들깨버섯 덮밥 등 김 대표의 섬세함과 정성이 깃든 모든 메뉴가 인기다. 특히 직접 끓여서 만든 수제 포도 주스 때문에 일부러 찾는 이들도 많다고.
16년째 한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다시 찾는 이들도 많다. 처음엔 혼자 왔다가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가 하면, 미혼일 때 와보고 결혼한 뒤 자녀와 함께 찾는 손님도 있다. 가게 곳곳에 저마다의 추억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어 많은 손님에게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김봉균 대표가 빈티지 그릇의 가치를 알아본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데미타스의 가치를 알아보는 손님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작업실이 카페가 되고,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바뀌는 동안 김봉균 대표는 언제나 데미타스를 지켜왔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
“제가 바라는 건 단 한 가지예요. 한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는 것. 그래서 손님들이 혹시나 해서 찾았을 때, ‘아직도 있네!’ 하며 반가워했으면 좋겠어요. 추억의 공간이 오래도록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이 되잖아요. 데미타스도 그런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마치 빈티지 그릇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