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알아가는 재미
“와인 한잔 할까?” 누군가 이런 말을 건넨다면 왠지 달콤한 상상에 빠져들게 된다. 대체 와인의 매력이 무엇이길래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일까? 맛도 종류도 다양하지만 기본 상식만 익혀두면 누구나 더 맛있게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와인과 친해지기 위해 풀어야 할 궁금증 몇 가지.

1. 와인병에 가득 적힌 꼬부랑 글씨부터 어렵다?
와인을 처음 접할 때 제일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그럴 땐 소주병과 맥주병을 떠올려보자. 그 병에도 와인처럼 라벨이 붙어 있다. 그런데 그 라벨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자세히 읽어본 적이 있나? 대부분 처음처럼, 참이슬, Cass, TERRA 등 제품명만 대충 보고 뚜껑을 딴다. 가끔 소주 뚜껑이 빨간색인지 파란색인지 정도 따지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마찬가지다. 와인 라벨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자세히 몰라도 와인을 즐기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소주의 첫 글자가 ‘참’이든 ‘처’든 상관없이 만남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훨씬 많듯이.
2. 읽기도 어렵고 뜻도 모르는 라벨 어디서부터 어떻게 알아야 할까?
어떤 분야든 호기심은 발전을 부르게 마련이다. 와인 초보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와인 라벨을 살펴보자. 와인의 대부분은 영문 알파벳을 쓰는 나라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라벨이 ‘abcd…’인 것은 당연한데 조금 깊이 들어가보면 알파벳이긴 해도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가 대부분이다.
그럼 여기서 다시 소주병 라벨을 소환해보자. 그리고 판매자 입장에서 ‘어떤 정보를 적어야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를 떠올려보자. 우선 회사와 이름, 그리고 알코올은 얼마만큼 들어 있고 총량은 얼마인지 등이 기본 정보다. 브랜드만의 독특한 공법이 있다면 그런 유의 홍보 문구를 넣어야 할 테고, 그 외에 법률에 정해진 이런저런 자잘한 정보가 있다.
와인은 소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다품종 소량 생산이라 회사와 와인의 이름이 훨씬 중요하다. 그 외 와인 라벨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병입된 연도에 대한 기록이다. 오히려 품종을 제외한 경우는 있을지언정 언제 만들어서 병에 넣었는지, 즉 빈티지(Vintage)는 반드시 포함된다. 빈티지라는 것은 프랑스어로 ‘뱅(Vin)’이라는 와인(Wine)의 나이(Age)를 말한다고 보면 된다.
위스키와 마찬가지로 오래 묵을수록 고급술로 여기며 비싸진다는 특징이 있지만, 위스키와 달리 증류주가 아닌 과실주이기 때문에 잘 상하는 단점이 있다. 초보자는 신선하고 저렴한 와인을 자주 맛보길 권한다.
하늘의 별보다 많다는 와인인 만큼 소비자의 눈에 잘 띄고 귀에 잘 붙는 것이 선택받을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이기에, 세월이 흐를수록 초보 와인 애호가들이 많아질수록 톡톡 튀는 와인 라벨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일단 선택돼야 마시고 평가를 받게 될 테니 말이다.
3. 라벨을 쉽게 읽거나 빨리 파악하는 방법은?
라벨을 보고 일단 어느 나라 출신인지 알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그 언어에 알맞은 해석을 할 수 있으니. 그리고 각 나라마다 와인 명명법이나 등급이 있으니 그걸 체크하는 것도 필요하다. 어느 정도 주력(酒力)이 쌓이면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되겠지만 프랑스는 AOC, 이탈리아는 DOCG라는 등급 규칙이 있고,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도 별도의 방식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시작해도 좋다. 물론 등급이 높다고 다 비싸고 맛있는 것은 아니다. 와인도 술인 만큼 개인의 기호와 취향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다만 등급이 높고 비쌀수록 그만한 가치를 보여주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니 공부하면서 높은 등급의 와인에 욕심을 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팁 하나! 이탈리아 와인의 경우 가장 높은 등급인 DOCG 라벨이 붙어 있더라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풀리는 경우가 많으니 눈여겨보길.
4. 어떤 포도로 만드는지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고?
와인 주조용 포도는 우리가 평소 먹는 포도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다.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포도 품종 중에서 그나마 많이 생산되는 레드 와인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멜롯) 그리고 피노 누아고, 화이트 와인은 소비뇽 블랑과 샤르도네 정도의 품종으로 만든 것이 비교적 많이 알려진 것이니 이 다섯 개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이 품종을 베이스로 마이너한 품종을 둘에서 셋 정도 섞어서 블렌딩하는 경우도 많으니 최소한 몇몇 유명 품종을 기억해두면 와인 세계에서 초급을 탈출하는 단계에 이른다고 해도 좋겠다.
캠벨이나 거봉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말벡(Malbec), 피노 누아(Pinot Noir), 샤르도네(Chardonnay),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등의 비교적 알려진 품종은 물론 최근에는 쉬라/쉬라즈(Syrah/Shiraz), 그르나슈/가르나차(Grenache/Garnacha), 가메(Gamay), 슈냉 블랑(Chenin Blanc), 리슬링(Riesling) 등 덜 알려진 품종까지 인기를 얻고 있는 편이다. 같은 품종이지만 둘 이상의 언어로 통용되는 경우는 보통 기호 ‘/’나 ‘( )’로 병기한다.
5. 포도 품종 못지않게 테루아(Terroir)가 중요하다고?
와인 관련 용어는 종주국 격인 프랑스어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테루아(Terroir)는 랜드(Land)라는 영어 단어로 연결된다. ‘흙’이란 뜻에서 비롯되어 식물을 심고 기르는 ‘땅’이라는 의미로 발전된 단어가 바로 ‘테루아’다. 단순한 토양으로서의 개념을 넘어 위치와 지질, 기후 및 다양한 주변 환경에 따라 자라나는 식물에 많은 영향을 끼쳐 같은 품종을 심더라도 테루아에 따라 맛과 향이 크게 달라진다는 논점을 대변하는 위대한 용어다. 맛과 향에 진심인 커피 산업에서도 같은 의미로 테루아를 사용하고 있다.
6. 와인을 좀 더 쉽게 접하는 방법이 있을까?
300만~400만원짜리 와인 아카데미에 등록하는 것도 좋고, 마음 맞는 동료나 친구들과 뭉쳐서 마트 행사 와인을 자주 마시는 것도 좋다. 그러나 전자는 운동 초보가 EPL이나 MLB에 가서 축구나 야구를 하겠다는 꼴이고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든다. 후자의 경우 한두 명 와인을 좀 오래 마셔본 사람이 함께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공부 못하는 친구끼리 답을 맞히고 있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럴 땐 와인 동호회나 모임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선배들의 경험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각자 한두 병의 와인을 들고 모이는 BYOB(Bring Your Own Booze) 형식을 빌리면 8명쯤 모여도 대개 10종류 이상 세계 각국의 다양한 와인을 조금씩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7. 별보다 많다는 와인 중 무엇을 골라야 할까? 와인 구매 팁이 있다면?
와인을 꾸준히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 내가 이런 품종을 좋아하는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선호하는 품종에 대한 고민만 해결해도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물론 다양한 품종의 와인에 호기심을 가져야겠지만 누군가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골라 함께 마시는 기쁨을 알아갈 무렵부터 와인 마니아가 되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1년 정도 동호회 활동을 하다 보면 최애 품종 또는 와인도 생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와인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세 가지 정도를 기억해두면 좋겠다. 먼저 조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 공부로 알 수 있는 와인의 세계는 한계가 있다. 결국 다양한 종류를 많이 마셔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천천히 시간을 갖고 즐기다 보면 자연스레 와인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질 것이다. 두 번째로는 마음을 열어놓길 당부하고 싶다. 간혹 책으로 공부해서 이건 꼭 이렇고, 저건 꼭 저렇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는 정답이 없다. 누군가의 평가나 사람들의 기호가 꼭 나와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에게 강요할 필요도, 상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할 이유도 없다. 그저 내가 어떤 품종의 무슨 와인을 좋아하는구나를 느끼면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 와인의 특성 때문이겠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와인은 술이라기보다 자신이 문화를 영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기 위한 수단인 경우가 있다. 그 모습이 좋다 나쁘다 구분하는 건 아니지만 그에 걸맞게 적당한 지식을 쌓고 매너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주변 인맥의 확장과 함께 본인 스스로 성장하는 뿌듯함을 느끼며 와인을 마시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떤 경지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 이제 와인을 더 즐겁게 마셔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