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만나는 축제
뜨거운 여름, 그보다 더 뜨거운 축제들이 온다. 전 세계를 주름잡는 축제부터 국내 대표 축제까지.
뜨거운 공기를 지배하는 묵직한 클래식
여름이면 유럽의 클래식 팬들은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곳곳에서 클래식을 바탕으로 한 수준급 페스티벌이 열리는데, 특히 전통과 예술성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을 만날 수 있기 때문. 모차르트와 카라얀의 고향에서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 개최된 이래 1924년과 1944년을 제외하고 매년 열릴 만큼 유서 깊은 축제로, 세계 최정상급 오케스트라인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주축이 되는 관현악 무대를 비롯해 오페라, 실내악, 리사이틀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7월 18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리는 올해는 푸치니의 3부작 오페라 <외투>, <수녀 안젤리카>, <잔니 스키키>가 무대에 오르고, 금세기 최고 메조소프라노로 불리는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주연을 맡은 <세비야의 이발사> 등 품격 있는 오페라가 눈에 띈다. 얼마 전 첫 내한이 무산된 80대의 거장 마우리치오 폴리니부터 예프게니 키신, 이고르 레비트 등 이름만 들어도 떨리는 피아니스트들의 독주회도 놓칠 수 없다.
루체른 페스티벌은 한 달가량의 여름 시즌과 부활절 시즌, 가을 시즌 기간을 모두 합쳐 루체른 페스티벌이라 부르지만 하이라이트는 역시 여름 시즌. 올해는 8월 8일부터 9월 11일까지 약 한 달간 개최하여 100여 개의 연주회를 선보일 예정이다. 2014년 타계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탄탄히 구축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색채의 마법사’라 불릴 만큼 디테일한 표현에 능한 리카르도 샤이가 이끌고 있으며, 올해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과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 만돌리니스트 아비 아비탈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려 루체른의 명성을 실감하게 만든다.
프랑스와 영국의 양대 산맥 공연 예술 축제
여름은 클래식뿐 아니라 연극, 뮤지컬, 무용 등 공연 예술을 즐기는 팬들에게도 황홀한 계절이다. 프랑스 아비뇽 지역에서 열리는 ‘아비뇽 페스티벌’과 영국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7월과 8월을 책임지는 덕분. 1947년 시작되어 올해로 76회를 맞는 아비뇽 페스티벌은 아비뇽 시내 공연장과 야외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식(In) 페스티벌과 함께 학교와 교회, 카페와 술집 등 시내 곳곳의 일상 공간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는 비공식(Off) 페스티벌로 구성되어 축제 내내 도시 전체가 공연 예술의 거대한 장으로 변신한다. 차기 아비뇽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내정된 포르투갈 출신 극작가이자 연출가 티아구 호드리게스가 극본을 쓴 <이피게네이아(Iphigenia)>와 영화 <레토>의 감독으로도 유명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연출한 안톤 체호프의 <검은 옷의 수도사(The Black Monk)>가 눈에 띈다. 티아구 호드리게스는 아비뇽 페스티벌 최초로 프랑스 국적이 아닌 예술감독으로, 지난 6월 한국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그의 대표작 <소프루(Sopro)>를 선보여 묵직한 감동을 전달한 바 있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7월 7일부터 26일까지 약 3주간 열린다.
8월 5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또한 아비뇽과 마찬가지로 1947년 시작된 종합 공연 예술 축제다. 연극은 물론 무용, 오페라, 클래식 연주회 등 여러 장르의 공연이 펼쳐지며, 이 시기 에든버러에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에든버러 아트 페스티벌,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북 페스티벌 등 10여 개의 축제가 함께 개최되기에 전체를 아울러 에든버러 페스티벌이라 부르곤 한다. 올해 라인업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안무가 왕헌지가 이끄는 왕 라미레즈 컴퍼니가 초청되어 각각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무용 <위 아 몬치치>를 공연할 계획.
지역성을 강조한 이색 액티브 축제
해마다 8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면 스페인 발렌시아 인근의 작은 마을 부뇰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청춘들로 미어터진다. 건강한 식품의 대명사인 토마토를 서로에게 격렬하게 던지고 그 붉은 과즙으로 온몸이 물드는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를 영접하기 위함이다. 라 토마티나는 8월 마지막 주 내내 음악과 춤, 거리 행진과 불꽃놀이 등으로 축제 분위기를 돋우며, 수요일 오전 11시에 시작해 약 1시간 동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서로에게 토마토를 던지며 토마토 난장을 즐긴다. 청소년들이 과일과 채소를 던지며 장난치던 것에서 시작됐다거나 토마토값 폭락에 분노한 농부들이 시의원에게 토마토를 던진 데서 시작됐다는 둥 축제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날이면 40여 톤의 토마토가 쓰이곤 한다. 종료된 후에는 소방차들이 동원되어 물청소를 하는데, 미처 토마토를 씻어내지 못한 사람들이 주민들에게 “Agua(물)!”를 외치면 집집마다 주민들이 호스를 들고 나와 물을 뿌려주는 것도 재미.
스페인 나바라주 팜플로나에서 열리는 ‘산 페르민 축제’도 지역에서 시작돼 세계에 이름을 각인한 축제다. 나바라 지방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된 산 페르민을 기념하는 축제로,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도 등장해 지금은 100만 명이 찾는 대규모 축제다. 산 페르민 축제는 연극, 불꽃놀이,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하이라이트는 단연 소몰이(Encierro)다. 축제 기간 내내 매일 아침 8시에 시작되는 소몰이는 투우 경기에 사용될 여섯 마리의 소들을 가둔 우리의 문을 열고 소들을 좁은 거리로 내몬다. 평균 시속 25km로 질주하는 광분한 소들 앞에 수백여 명의 참가자들이 질주하는 것으로, 때에 따라 부상자가 속출할 만큼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참가하기를 원하는 이색 축제다.
흥 많은 한국인을 위한 국내 축제
국내에도 명성 높은 여름 축제가 즐비하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만 개최되었던 보령머드축제가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부터는 축제에 산업을 결합한 국제박람회 형식을 띠어 ‘2022 보령 해양머드박람회’란 명칭을 달았다. 136km에 달하는 보령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고운 진흙인 머드는 미네랄과 게르마늄을 다량 함유해 이스라엘 사해의 그것보다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 머드탕, 머드 미끄럼틀, 머드 스프레이샤워 등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는 머드를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7월 30일과 31일, 이틀간 신촌 연세로에서 열리는 ‘신촌물총축제’도 2020, 2021년을 건너뛰고 오랜만에 돌아오는 대표적인 여름 축제. ‘V-WAR: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란 콘셉트로 일상을 앗아갔던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승리한다는 내용으로 참가자들에게 이색 체험을 선사할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를 날려줄 워터 캐논과 버블 캐논, 파워풀한 DJ 공연은 물론 물총 선수권 대회를 신규 론칭해 즐거움을 안길 태세를 갖췄다.
퓨전 국악 여름 축제인 ‘여우락 페스티벌’도 온라인과 객석 거리 두기를 벗어 던지고 완전체로 돌아온다.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는 뜻의 여우락 페스티벌은 2010년 이래 다양한 시도로 평균 객석점유율 93%를 기록하는 등 국악이 젊은 세대에게도 통하는 힙한 장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공적인 음악 축제다. 지난해에 이어 독창적인 거문고 연주로 이름난 박우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23일간 12편의 무대를 선보인다. 공사 등으로 9년간 중단되었던 야외 공연도 열린다. 월드뮤직 그룹 공명과 일렉트로닉 록밴드 이디오테잎이 협업해 지난해 여우락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한 ‘공테잎: 안티노드’를 재연한다니, 지난해 이 공연을 놓친 이들이라면 관람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