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여행법
오토바이 타고 전국을 누비는가 하면, 기타 하나 메고 떠난 유럽에서 버스킹 공연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여행길에 오른 두 사람을 만났다.
할리 타고 달리고, 만나고, 맛보고!
중화요리 전문가 신계숙
신계숙 교수를 설명하려면 많은 수식어가 필요하다. 중식 전문가, 대학교수, 방송인, 할리 타는 인싸, 꽃중년의 아이콘까지. 어떤 이름이 제일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이왕이면 ‘할리 타는 요리사’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의 진짜 본업은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조리과 교수이자 중화요리 전문가. 대중에게는 EBS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진행자로 더욱 유명하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전국 곳곳을 누비는 여행이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하니까 아무래도 남자들은 좋아하죠. 여성분들은 ‘나도 해보고 싶었다’면서 실행에 옮긴 저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 같고요. 멋있다는 칭찬도 많이 해주십니다.”
갱년기 열증을 없애기 위해 시작한 오토바이. 어렸을 때부터 워낙 타는 걸 좋아했기에 스쿠터를 먼저 익히고 난 뒤 더 큰 오토바이에 도전하게 됐다. 물론 주변의 우려와 걱정도 많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건강을 염려해서다. 그런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오히려 더 큰 자극이 되었다. “사람들이 말했어요. 사고 나면 뼈도 붙지 않을 나이라고. 그 말을 듣고 바로 오토바이를 샀죠.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오토바이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는 거잖아요.”
오토바이 타고 전국을 누비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때라는 건 없다는 걸 보여준 그의 도전은 계속 이어졌다. 우연히 출연한 방송이 소위 ‘대박’을 터뜨리며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까지 론칭하게 된 것.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는 콘셉트는 그가 직접 낸 아이디어였다. “프로덕션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았어요. 사실 음식과 여행을 주제로 한 방송은 많잖아요. 게다가 기존에 하고 계신 분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으니 차별화가 필요했죠.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답게 즐기는 모습을 담아내면 어떨까 생각한 거예요.”
2020년부터 방영된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는 현재 시즌3가 방영 중이다. 전 시즌을 통틀어 지금까지 약 서른 곳을 다녀왔다. 청량한 해안도로, 아름다운 꽃밭, 정겨운 시골길… 우리나라 곳곳을 오토바이 타고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움츠렸던 마음이 활짝 열리는 기분. 하물며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어떨까. “오토바이 타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일단 오토바이에 올라타면 모든 게 잊혀져요. 내는 속도에 따라 앞에 보이는 것들도 함께 움직이니까 생동감이 넘치죠. 내가 살아 있다는 게 느껴져서 좋아요.” 새로운 여행을 떠날 때마다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을 먹을지 늘 기대가 된다는 신계숙 교수. 놀라운 건 방송을 하기 전까지 한 번도 국내 여행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여행은 늘 설렘이 가득하다. 어느 곳을 가도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풍경이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는 경북 봉화에 위치한 청량산을 꼽았다. 태백산맥의 줄기인 중앙산맥에 솟아 있는 청량산은 특히 깎아지른 듯한 층암절벽으로 유명하다. 청량산의 산세도 아름답지만, 다른 곳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기운이 느껴진다고. 여름 여행지로는 무주, 진안, 장수, 일명 ‘무·진·장’을 추천했다. 전체 면적의 80%가 숲인 덕분에 맑고 신선한 공기를 원 없이 마시며 힐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다니며 먹어본 음식 중에는 제주도에서 맛본 쏨뱅이튀김이 단연 최고. 과자보다 더 바삭바삭한 식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남 구례에 갔을 때 만난 할머니가 생각나요. 구례오일장에 채소를 팔러 나오신 분인데, 보름 전에 할아버지가 하늘의 별이 되셨대요. 그리운 마음을 노래를 부르며 삼키시더라고요. 슬픔을 노래로 승화시킨 거죠. 다시 구례를 찾게 되면 꼭 할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가는 곳마다 제각각 특색이 있고 또 만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있으니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모든 게 새롭고 즐겁다. ‘신계숙표’ 여행이 계속되는 이유다.
일상이 곧 여행, 행복한 매일
지난해 12월 23일, 신계숙 교수는 또 다른 타이틀을 얻었다. 바로 중화요리 전문점 ‘계향각’을 오픈한 것. 국내에서 유일한 ‘수원식단’ 요리 전문점이기도 하다. <수원식단>은 청나라 원매 선생이 집필한 고서로 360가지의 조리법 외에도 요리사가 꼭 알아야 할 20가지, 요리사가 해서는 안 되는 14가지 지침이 들어 있다.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고 마음에 새겨야 할 좋은 내용이기에 스터디를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있는데, 더 많은 이들과 요리를 나누고 싶어 계향각을 열었다. 물론 또 다른 계기도 있었다. “학교 제자들에게 창업을 많이 권하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하라고만은 할 수 없잖아요.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직접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교수는 겸직 금지인데, 총장님께 말씀드려 규정을 바꿨고 창업 1호 교수가 됐죠.”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할 수 있는 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건강한 신체와 체력, 그다음으로는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도전하게 만든다는 신계숙 교수. 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이유에도 하지 못하는 핑계 여러 개를 보태며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데 안 하는 게 더 어려운 거예요. 안 하면 미련이 계속 남잖아요.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오히려 더 쉬운 일이죠. 문을 열고 나가서 하면 되는 거예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당시 여자는 힘들 거라던 중식당 주방에서 8년을 버티고, 나이가 들어 힘들 거라던 오토바이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결국 스스로를 주저하게 만든 건 편견에 지나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지독한 편견을 깨고 문 밖으로 나온 그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여행이 거창한 게 아니에요. 일상이 여행이죠. 마트를 가는 것도, 중국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내 방, 내 집에서 나오면 그건 모두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이 여행이라는 건, 난 늘 여행을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매일이 즐겁죠. 많은 분들이 하루하루 여행하는 기분으로 행복한 일상을 보내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