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해진 요즘 시장
시장이 젊어지고 있다. 익숙함에 새로움을 더해 주목받고 있는 요즘 시장 속으로.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게 익숙해진 시대다. 사람들은 점점 편리함을 좇기 시작했고, 이제 클릭 몇 번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시장을 찾는 이들이 줄어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다소 복잡하고 불편하다는 인식과 대형마트의 등장이 맞물리며 시장을 찾는 발걸음은 점점 줄어들었다.
최근 시장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젊은 세대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이 주는 불편함과 특유의 분위기가 오히려 낯설고 즐거운 경험으로 변모하고 있다. 물건을 사고파는 곳에서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는 시장의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 청년 상인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시장에 색을 입히는가 하면 기존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시장을 채워나가고 있다. 오래된 것에 대한 호기심과 이곳에 담긴 이야기와 새로운 경험이 주는 즐거움까지. 시장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 개성 넘치는 아이템, 시장의 브랜드화로 한정된 ‘공간’을 넘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매력 넘치는 요즘 시장 세 곳을 소개한다.
익숙함 속 특별한 공간, 광장시장 ‘365일장’
서울 중심지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고 빈대떡, 육회, 마약김밥 등 다양한 먹거리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광장시장.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에게는 관광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최근 광장시장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광장시장 ‘365일장’의 인기 덕분이다.
365일장은 광장시장 안에 문을 연 그로서리 마켓(Grocery Market)이다. 단순한 식료품점을 넘어 세련된 인테리어와 유니크한 디자인,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감각적인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광장시장 입구에서 안쪽으로 쭉 걷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초록색 간판을 볼 수 있다. 익숙하고 정겨운 골목 사이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며 방문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365일장이다. 365일장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특히 와인과 맥주 등 주류가 대표 상품이다. MZ세대 입맛에 맞춰 유행하는 전통주와 내추럴 와인이 다양하고, 도수와 보관 팁은 물론, 조합이 좋은 레시피까지 세심한 설명을 덧붙여 친절하게 구매를 돕는다. 술과 함께 곁들일 주전부리도 빼놓을 수 없다. 대전 향토 음식인 콩튀김에 시즈닝을 입힌 콩부각, 김해 돼지고기를 엄선해 만든 김해육포, 제주산 애플망고를 첨가한 아르망 젤리 등 다양한 지역 로컬 브랜드 제품은 물론 365키친에서는 팟타이 순대, 오소리감투 만두 등 시장 음식을 재해석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다양한 굿즈도 단연 인기다. 티셔츠와 모자, 에코백, 문구류, 자개로 만든 오프너 등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독특한 아이템이 즐비하다.
로컬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를 살리는 시장의 순기능을 새롭게 만들고자 시작된 365일장. 시장과 사람, 세대를 잇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며 광장시장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32길 21 1층
문의 02-2275-0321
광주 1913송정역시장
광주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1913송정역시장. 광주송정역 앞에 위치해 있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시장이다. 광주송정역은 1913년 송정리역으로 처음 생겼을 당시 광주를 대표하는 기차역이었다. 이후 유동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송정리역 주변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초창기 이름은 ‘매일송정역시장’. 1990년대 접어들면서 주변에 다양한 상권이 형성되며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줄어들자, 도시재생을 통해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시장의 이름. 오랜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 시장이 처음 생긴 1913년을 넣어 ‘1913송정역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비어 있던 점포들이 청년 상인들에 의해 새로운 아이템,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 트렌드를 반영한 감각적인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면서 시장을 찾는 방문객도 늘어났다.
기존 가게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가게마다 갖고 있는 역사와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내 옛 감성을 살리면서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감각을 더했다. 170m 거리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상점은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시장을 쭉 걷다 보면 재치 넘치는 간판을 보고 절로 미소 짓게 된다. 곳곳에 숨겨진 재미를 찾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다. 고민상담 편지를 부칠 수 있는 ‘사막여우비밀우체통’, ‘1913누구나 화장실’이라는 재치 넘치는 이름의 공중화장실, 구수한 사투리가 쓰인 벤치와 주차금지 안내판 등 눈길 가는 곳마다 위트가 넘친다.
1913송정역시장의 밤은 더 아름답다. 낮에는 활력이 넘쳤다면 밤에는 잔잔한 무드를 즐길 수 있다. 건물 사이사이 달려 있는 전구들이 밤하늘을 수놓은 듯 반짝인다. 시장에는 물품 보관함도 준비되어 있어 잠깐 들르는 여행객도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봄 직하다.
주소 광주시 광산구 송정로8번길 13
문의 062-942-1914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해방촌 신흥시장
서울 용산구 남산 아래 위치한 해방촌. 광복 후 귀환했거나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에도 전국의 피란민과 도시 빈민들이 모여들었고, 산비탈에 촘촘하게 집이 들어차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금 시대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듯한 ‘해방’이란 단어는 당시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자는 의미를 품고 있다.
마을이 생겼으니 자연스럽게 장이 들어섰다. 해방촌 오거리에 위치한 신흥시장이다. 일반적인 시장과 달리 일렬로 늘어선 양쪽 건물 사이를 메워 긴 아케이드를 형성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면 시장 건물 위를 아치형으로 잇는 투명한 지붕이 눈에 띤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새로 마련한 시장 지붕은 밤이 되면 네 가지 빛을 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몇 년 전부터 젊은 아티스트와 상인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된 변화는 더욱 놀랍다. 감각적인 음식점과 루프톱 카페, 와인 바, 갤러리, 추억의 사진관과 오락실까지 청년 상인들은 신흥시장의 70년 역사를 간직하면서도 저마다 개성 넘치는 상점을 열기 시작했다.
신흥시장 간판을 따라 허름한 건물 입구를 통과하면 여러 갈래의 골목을 따라 다양한 상점이 들어서 있다. 오래된 건물과 감각적인 간판, 화려한 네온사인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해외의 어느 골목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신흥시장만이 갖는 빈티지한 매력은 각종 드라마와 영화 배경으로 등장해 빛을 발했다.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페스티벌도 종종 개최한다. 음악·요리 공연, 전시, 칵테일 파티 등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고 있는 것. 시장을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는 일도,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일도 이곳에서라면 즐거운 경험이 된다. 70년 역사에 젊은 감각과 활력이 스며들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는 신흥시장. 각박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에겐 또 다른 의미의 ‘해방’의 공간이지 않을까.
주소 서울시 용산구 신흥로 95-9
문의 02-754-7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