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사는 법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 세계적인 장수 마을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첫 번째 블루존 이탈리아 사르데냐
에메랄드빛 바다와 반짝이는 하얀 모래,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섬, 사르데냐. 이탈리아 서쪽에 위치한 사르데냐는 시칠리아 다음으로 지중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현지인은 물론 유럽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휴양지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의 섬이지만, ‘시간이 멈춘 섬’이라 불릴 만큼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고, 최근에는 디즈니 실사 리메이크 영화 <인어공주>의 촬영지로 주목받았다.
사실 사르데냐가 유명한 건 비단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 때문만은 아니다. 인구 160만 명 가운데 250명이 100세가 넘고, 다른 지역보다 20~30년 더 오래 사는 장수 마을이기 때문. 112세까지 살며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던 안토니오 토드 역시 이곳 사르데냐 출신이다. 더욱 두드러진 특징은 남성과 여성의 평균수명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여성 노인과 남성 노인의 비율이 4:1인 데 반해 사르데냐는 1:1을 이룰 만큼 장수하는 남성의 비율이 높다. 전문가들은 사르데냐 남성 대부분이 ‘목동’인 점에 주목했다. 이들은 산간 지역에서 양이나 염소를 치며 경사진 언덕을 하루 10km 이상 걸어다닌다. 또 농사와 낚시 등 평소 신체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사르데냐 식단은 소박하다. 통곡물빵과 함께 감자, 호박, 가지 등 직접 일군 채소가 가득하고 고기는 일요일이나 특별한 날에만 섭취한다. 목축업이 발달해 우유 대신 염소젖을 마시고 ‘칸노나우 와인’을 곁들이는 게 특징. 염소젖은 염증성 질환 예방에 좋고 칸노나우 와인은 플라보노이드 함량이 일반 와인보다 2~3배 높아 암과 심장질환 발생률을 낮춘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 노인들의 타고난 유머 감각도 유명하다. 매일 오후 거리에 모여 서로를 놀리고 짓궂은 농담을 주고받는 게 일상이다. 이렇게 한참 웃고 떠들다 보면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풀리고 심장 혈관 질환에 걸릴 위험이 줄어든다고. 가족 중심의 문화도 장수의 비결이다. 보통 3대가 함께 살며 가족 간 유대감이 강하다. 이웃 또는 가족과 늘 얼굴을 맞대고 함께 생활하며 ‘접촉’이 늘수록 행복을 느끼는데, 실제 사르데냐 노인의 행복 호르몬 수치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몸과 머리를 부단히 움직이며 일상을 즐겁게 사는 것. 장수를 위한 특별한 비법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오늘 하루 크게 웃고 행복 수치를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건강한 습관이 만든 기적 일본 오키나와
일본 최남단, 160개의 아열대 섬으로 이루어진 오키나와. 연중 온난한 기후와 진녹빛 숲, 너른 백사장과 아름다운 산호초까지 언제 찾아도 편안한 품을 내어주는 곳이다. 특히 오키나와는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 덕분에 신선한 해산물과 고기, 채소 등 식재료가 풍부한 데다가 일본 본토와 비교적 거리가 있어 오키나와 고유의 식문화를 형성한 것이 특징. 한때 ‘불사의 땅’으로 불릴 만큼 장수 인구가 많은 이유도 신선한 식재료와 건강한 식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오키나와 식단은 영양가가 높고 칼로리가 낮은 식물성 식품과 풍부한 단백질로 구성돼있다. 식단의 60%는 고구마, 죽순, 무, 양배추, 당근, 호박 등 다양한 채소로 채우고 단백질은 생선과 삶은 돼지고기를 주로 먹는다. 또 ‘건강한 탄수화물’로 불리는 통곡물과 콩류를 평균보다 3배가량 더 섭취하고 오키나와 땅에서 기르고 수확한 채소와 해조류를 즐겨 먹는다. 염분을 적게 섭취하는 것도 장수 비결 중 하나다. 청정 해수로 만든 이곳 소금은 일반 소금보다 염분이 25% 낮은 데다가 그나마도 음식에 소금 간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 햄, 소시지 같은 가공육은 지양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자연 식물식을 실천한다. 식단과 더불어 식습관도 중요한 요인이다. 이곳에서는 ‘하라하치부’라는 말이 있는데 ‘배가 조금 덜 차게’라는 뜻이다. 즉, 배가 부르기 전에 수저를 놓는다는 의미로 오키나와에서는 비만한 노인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소식을 습관화하고 있다.
삶의 목적의식을 뜻하는 ‘이키카이’도 이곳 노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정원 가꾸기, 손자 돌보기등 사소하지만 매일 해야 할 일을 정해 꾸준히 실천하며 보람을 느끼기 때문. 오키나와의 오랜 전통인 ‘모아이’도 빼놓을 수 없다. 모아이는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평생을 함께하는 사회적 모임이다.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교류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주는 삶. 모아이는 단순한 모임을 넘어 삶을 유지하고 이어나가는 데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과식하지 않는 습관, 목표를 세워 꾸준히 실천하는 보람, 많은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삶. 장수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 평범한 일상 속 매일의 실천과 작은 행복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결과일 뿐.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 코스타리카 니코야
중앙아메리카 남부, 니카라과와 파나마 사이에 위치한 코스타리카. 나라의 전체 면적이 우리나라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국토의 절반 이상이 원시림을 이루고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손꼽힌다. 특히 코스타리카 북부 태평양 연안에는 5개의 섬과 수십 개의 해변, 3개의 국립공원과 12개의 야생보호구역 등으로 이루어진 코스타리카 최대 규모의 반도, 니코야가 자리하고 있다. 우거진 열대우림과 대자연을 간직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니코야가 더욱 주목받은 건 인구통계학자 루이스 로세로 빅스비가 ‘세계의 장수 마을 조사 프로젝트’를 통해 “코스타리카의 60세 남성은 같은 나이의 미국, 프랑스, 일본 남성보다 90세까지 살 확률이 2배 높다”고 밝히면서다. 특히 니코야는 코스타리카 내에서도 평균 2~3년 더 오래 살고 장수인 거주 비율이 가장 높다. 전통적인 농경사회 생활 방식을 유지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니코야 노인들은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 소를 돌보고 목장에서 일을 한다. 직접 장을 보고 장작도 팬다. 끊임없이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바로 목적의식. 이를 니코야에서는 ‘플란 데 비다(Plan de vida)’, 인생의 계획이라 부른다. 이들은 매일의 목표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루도 빠짐없이 철저하게 지킨다. 가족 간 유대가 깊고 가족을 보살피려는 기질도 강하다. 니코야 노인 대부분이 가족과 함께 살며 자손들의 보살핌 속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실제 가족 간 연대와 목적의식은 수명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코야의 식탁도 여느 장수 마을과 다르지 않다. 옥수수 토르티아를 주식으로 한 채식 위주의 저칼로리 식단이다. 특히 끼니마다 열대 과일을 꼭 챙겨 먹는데, 이곳의 위암 발병률이 낮은 이유로 과일에 함유된 비타민 C와 베타카로틴을 꼽는다.
니코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적, 의료적 혜택이 적은 개도국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행복 지수가 높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복되는 일상에도 감사하고,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삶. 이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지극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 평범함의 가치를 되새겨볼 수 있기를.
죽음을 잊은 섬 그리스 이카리아
그리스 사모스섬·푸르노이섬과 함께 사모스주에 속해 있는 섬으로 그리스 남단과 터키 사이에 위치한 이카리아. 면적 261km의 인구가 1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섬이다. 하늘을 날다 추락한 이카루스의 신화가 깃든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죽음을 잊은 섬’.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사람이 이카리아에서 무려 45년을 더 생존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말기 암 환자를 104세까지 살게 한 데다가 암은 물론 치매와 우울증 환자를 찾아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며 이카리아의 장수 비결을 궁금해하는 이가 많다.
이카리아는 따뜻한 지중해 기후를 나타낸다. 주민 대부분이 채소와 과일, 가축을 기르며 자급자족하고 있기 때문에 식탁에는 늘 신선한 음식이 가득하다. 특히 이곳 사람들은 끼니때마다 직접 기른 채소와 과일, 견과류를 풍부하게 섭취하는데 최대한 첨가물은 넣지 않고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 소금, 와인으로 간을 한다. 육식을 거의 하지 않는 대신 생선을 자주 먹고, 젖소 대신 염소젖을 마신다는 게 특징이다. 염소젖에 다량 함유된 칼륨은 혈압과 심장병 위험을 낮추는 데 유용하고, 저자극성이라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도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그릭 커피는 일반 커피보다 카페인 함량이 적고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치매 예방에 탁월하고, 노폐물 배출과 혈압을 낮춰주는 진한 허브티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습관 역시 장수 비결 중 하나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곳 사람들의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절대 알람을 맞추지 않고, 보통 오전 11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낮잠도 꼭 챙긴다고. 노동 강도와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기에 시간에 쫓기거나 일에 치이는 법이 없다. 인간관계도 폭넓고 자유롭다. ‘사생활’이라는 표현이 없을 정도로 이웃과 친밀하게 지내는데, 평소 문을 열어두고 지낼 만큼 교류가 잦다. 젊은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밤늦게까지 와인과 춤을 즐기는 게 일상이다. 쓰고 남은 돈은 필요한 사람에게 줄 만큼 나눔에도 익숙하다. 실업률이 40%가 넘지만 불행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이카리아. 긍정적인 생각과 여유로운 삶의 태도야말로 최고의 장수 비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