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큐레이터 이원창
그저 산에 올랐을 뿐인데 인생이 바뀐 이가 있다. 이원창 아웃도어 큐레이터를 만나 그의 삶과 산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삶에 쉼표 하나 필요할 때
계절의 변화에 화답하듯 산과 들, 꽃과 나무가 자신의 색을 찾아가는 요즘. 창밖 너머 봄 풍경은 자꾸만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잠시 짬을 내어 동네 한 바퀴 걷는 것만으로도 지친 일상에 활력이 되지만, 보다 자연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는 경험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아웃도어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이원창은 그 누구보다 자연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그저 취미로만 즐기던 등산을 업으로 삼게 된 이유다.
“원래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전공을 살려 광고회사에서 근무했는데, 워낙 일이 많다 보니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었죠. 스트레스가 쌓이면 술 마시는 걸로 해소하다 보니 건강도 많이 나빠졌어요. 어쩌다 주말에 쉴 때에도 숙취로 인해 무의미하게 보내곤 했죠.”
과도한 업무로 바쁜 일상을 보내며 개인의 삶을 돌보지 못했던 이원창 큐레이터는 어느 날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적어도 주말만큼은 생산적인 활동을 하며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것. 이왕이면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떠올린 게 바로 ‘등산’이다.
“처음에는 집 근처 산에 올랐습니다. 워낙 오랜만의 운동이라 체력적으로 꽤 힘들었어요. 하지만 계속 오르다 보니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죠.”
그렇게 등산의 매력에 푹 빠진 이원창 큐레이터는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으로 향했다. 전국에 있는 산을 찾아다니며 오르내리는 사이 체력도 부쩍 좋아졌고, 등산 경험은 직장 생활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산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니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게 좋은 곳을 혼자 가지 말고 같이 가자는 지인들이 많았어요. 제가 산에서 경험하고 느낀 걸 더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등산 가이드로 데뷔하게 되었어요.”
국내 최초 아웃도어 큐레이터
국내 최대 여가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Prip)’에서 슈퍼호스트로 60회나 선정될 만큼 이원창 큐레이터의 프로그램은 인기가 매우 높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거나, 시그너처 프로그램인 ‘랜덤눈꽃산행’의 경우 회차당 대기 인원만 200명에 달할 정도라고. ‘아웃도어 큐레이터’라는 이름은 2017년 호스트로 데뷔하면서 처음 썼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 기획자를 뜻하는 큐레이터와 등산·트레킹을 아우르는 아웃도어의 만남. 그는 요즘같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분야를 막론하고 큐레이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정보를 얻는 게 쉬워졌어요. 하지만 정확한 정보를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죠. 따라서 전문성과 지식을 바탕으로 정보를 엄선하는 큐레이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요. 아웃도어 분야에도 가치 있는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큐레이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산은 오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좀 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던 이원창 큐레이터.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한국 지리와 성인이 된 후 흥미를 느꼈던 역사 등 자신의 관심사를 등산 프로그램에 녹여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시중에 출판된 역사와 지리 관련 서적을 모두 섭렵하며 자신만의 데이터를 만들었고, 산행을 인솔하는 역할을 넘어 그 지역의 뿌리와 다양한 스토리를 풀어내며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처음 시작했을 땐 제가 공부하고 정리한 내용을 육성으로 설명했어요. 그러다가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태블릿PC를 이용해 자료를 보여주며 해설을 더하니 참여자들이 더욱 흥미로워했죠. 자료를 보며 설명을 들으니 이해도 잘 되고 쉽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가장 인기가 높았던 프로그램은 2020년 기획한 ‘지식 하이킹’ 프로그램이다. 서울 주변 산을 매주 단계별로 오르는 방식인데, 다소 높은 참가비에도 오픈 10분 만에 완판될 정도였다고. 눈이 내린 산을 찾아 떠나는 ‘랜덤눈꽃산행’도 여전히 인기가 높다. 과거 기상 데이터와 현재 기상예보 분석, 전국의 CCTV 검색, 다양한 정보 수집, 여기에 자신만의 경험을 더해 목적지를 설정해 떠나는 방식이 독특하다.
“지난해 가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청와대와 북악산을 연계해 ‘K클라이밍’ 행사를 진행했어요.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산행의 즐거움과 매력을 알리기 위한 행사였죠.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엄홍길 대장, 방송인 파비앙 등 유명인도 참석한 큰 행사에서 직접 가이드하며 북악산을 올랐던 게 특별히 기억에 남습니다.”
산의 가치와 매력을 전하는 일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등산이 새로운 취미로 각광받고 있다. 팬데믹 이후 건강과 자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데다, 휴식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등산을 즐기려는 이가 늘어난 것. 덩달아 이원창 큐레이터의 일상도 분주해졌다.
“2021년 정부의 방역 규제가 더욱 강화되면서 기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때 떠올린 게 바로 유튜브였죠. 제가 알고 있는 등산·트레킹 관련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했는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 출판 제의도 많이 받았는데, 그렇게 출간된 책이 바로 <산키피디아>입니다. 저의 콘텐츠가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전문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껴요.”
기존 프로그램에 더해 봄맞이 산행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28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이원창 큐레이터의 인솔 아래 안전하고 편안하게 봄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인왕산, 남산, 아차산, 관악산 등 서울권에서 진행하는 야간 산행도 계속된다. 퇴근 후 2시간 남짓이면 아름다운 서울 야경을 감상하면서 힐링도 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 서울의 산을 주제로 하는 인문학 강연과 등산 코스 및 해설 시나리오 개발 제의도 꾸준한 가운데 산을 중심으로 바라본 서울 역사 이야기 집필도 진행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원창 큐레이터. 이 모든 활동은 결국 더 많은 사람에게 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기 위함이리라.
“우리나라는 산이 많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빠른 시간 내에 산에 닿을 수 있죠. 건강한 두 다리와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게 바로 등산과 트레킹이에요. 신체와 정신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 스트레스와 우울감 해소에도 좋죠. 등산이야말로 적은 비용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취미라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산의 매력을 알고, 직접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