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야외 활동이 증가하는 봄은 ‘발’이 분주해지는 계절이다. 하지만 야외 활동도 잘못하면 독이 될 수 있으니, 몸 상태와 기저 질환 등을 잘 파악해 건강한 봄을 맞이하자.
등산은 ‘운동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건강에 이롭다. 인체의 ‘엔진’인 심폐 기능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한발 한발 내딛는 과정에 근육·뼈가 동시에 단련되기 때문이다.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맑은 공기와 탁 트인 자연을 만끽하다 보면 바쁜 일상의 스트레스도 씻은 듯 사라진다. 하지만 혼자 하는 등산은 동전의 양면이다.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둘 것. 특히 겨우내 움츠린 생활로 활동량이 줄어든 사람은 가벼운 산행이라도 근육과 관절 손상을 부를 수 있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근육과 관절 부상을 막아라
산행 시 가장 큰 부담을 받는 신체 부위는 발과 다리 등 하체다. 특히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다치는 사람이 더 많다. 무릎을 구부리면서 하체에 더 하중이 실리기 때문이다. 걸을 때는 체중의 2배, 달릴 때는 3배, 하산 시에는 최대 4배의 무게가 다리에 실린다.
등산할 때 가장 다치기 쉬운 부위는 무릎이다. 관절의 노화가 시작된 40~50대 중년층은 반월상 연골판 손상이 흔하다. 반월상 연골판은 이름처럼 반달 모양의 연골로, 무릎 관절 위아래에 충격을 완화하는 일종의 완충장치다. 관절의 퇴행성 변화가 진행한 중·장년층은 특별한 외상 없이도 반월상 연골판이 손상될 수 있다. 한 번 다친 연골판은 자연 치유되지 않고, 방치하면 손상 부위가 점점 커져 퇴행성 관절염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무릎이 잘 펴지지 않거나 힘없이 꺾이고, 안쪽으로 통증이 뻗친다는 느낌이 들면 연골판 손상을 의심해야 한다.
20~30대는 무리한 산행이 연골·인대 손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무릎 연골 연화증이 대표적이다. 자주 산에 오를 경우 무릎이 시큰거리거나 눈에 띄게 부어오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 무릎(슬개골) 연골 연화증이 생길 확률이 높다. 무릎 연골 연화증은 주로 고강도 산행을 즐기는 산악인이나 장거리 행군을 하는 군인에게 발생하는 질환이다. 무릎의 뚜껑 뼈인 슬개골의 아래쪽 연골이 쓸리면서 성질이 연하게 변한다. 단순한 통증·부종으로 시작하지만 심한 경우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연골 전체에 균열이 갈 수 있어 조기에 대처해야 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상체보다 하체가 빈약한 사람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평소 허벅지 근력 강화 운동을 하는 것이 예방·관리에 도움이 된다.
십자인대 파열은 울퉁불퉁한 길을 걸을 때, 발을 잘못 디뎌 무릎이 꺾이거나 뒤틀릴 때, 경사로에서 빠른 걸음으로 내려올 때 흔히 발생한다. 십자인대가 끊기면서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심한 통증이 동반된다. 무릎의 불안정성이 커져 퇴행성 관절염을 유발·악화하는 만큼 적절한 치료가 필수다. 십자인대 파열은 증상에 따라 물리치료, 보조기 착용 등의 보존적 치료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 수술을 하더라도 재활 치료를 잘하면 약 6~8개월부터는 평소 하던 스포츠 활동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으며 빠른 대처가 중요하다.
등산으로 인한 발목 부상은 아킬레스건염과 발목 염좌가 흔하다. 아킬레스건염은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에게 잘 나타나는 병이며 등산처럼 단시간 고강도 운동은 물론 걷기·조깅 등 장시간 저강도 운동 모두 아킬레스건염을 유발할 수 있다. 아킬레스건은 발이 앞으로 나갈 힘을 주는 힘줄이다. 이곳에 염증이 생기면 해당 부위가 붓고 열이 나거나, 운동 전후 종아리 뒤쪽까지 통증이 뻗치기도 한다. 문제는 아킬레스건이 쉽게 낫지 않는다는 점이다. 급성 아킬레스건염은 하루 이틀 정도 통증이 생기다 이내 사라지는데, 이를 놓쳐 운동을 지속하다가 힘줄이 끊어지는 아킬레스건 파열로 악화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만약 아침에 일어날 때 아킬레스건이 뻣뻣해지거나, 운동 후 발 뒤쪽이 움푹 들어간다면 병원을 찾아 정밀 진단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발목 염좌는 발목을 접질리거나, 삐어서 발과 복숭아뼈를 잇는 인대가 늘어나 발생한다. 흔한 병이라 ‘쉬면 낫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발목 통증만으로 질환의 경중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발목을 삔 직후에는 근육이 순간 긴장해 통증 강도를 정확히 인지하기 어렵다. 그보다 발목을 다친 후 첫발을 디뎠을 때 통증을 강하게 느꼈거나, 인대가 끊어지는 소리인 파열음을 들었다면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발목 염좌는 방심이 키우는 병이다. 상당수 환자는 3~6주간의 석고 고정만으로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인대가 약해져 발과 발목을 연결하는 뼈가 반복적으로 충돌하고, 이로 인해 만성 염좌나 발목 관절염으로 발전해 치료가 까다로워진다. 단순 염좌가 퇴행성 발목 관절염이나 만성 발목 관절 불안정으로 악화하면 수술을 받아야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초기 대처법은 보호(Protection), 휴식(Rest), 냉찜질(Ice), 압박(Compression), 높이기(Elevation)의 앞 글자를 딴 ‘PRICE’ 치료다. 발목을 다치면 먼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하루 3~4회 냉찜질을 한다. 붕대로 손상 부위를 감싸거나 발목을 가능한 한 심장보다 높게 두면 부기가 빨리 가라앉으면서 빠른 회복을 이끌 수 있다.
등산한 다음 얼굴을 드러내는 근골격계 질환도 있다. 주로 ‘다리에 알이 배겼다’고 표현하는 지연성 근육통이다. 등산 시에는 허벅지·종아리·허리 등 근육에 피로 물질이 쌓이면서 지연성 근육통이 발생하기 쉽다.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7일 이상 근육이 빳빳해지거나 통증이 발생하는 등 증상이 지속한다. 근육통에 가장 좋은 처방은 충분한 휴식이다. 매일 20분가량 온찜질을 하고 마사지·사우나 등으로 근육에 혈류량을 증가시키는 것도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
제2의 심장, 발 건강 지키기
산에 오른 다음 날 발바닥이 아프다면 대개 족저근막염을 의심할 수 있다. 족저근막은 발꿈치에서 발가락까지 이어지는 발바닥의 두꺼운 근막(힘줄)을 말한다. 근육을 쿠션처럼 감싸 딱딱한 바닥을 디딜 때 발생하는 충격을 완화해준다. 족저근막염은 염증으로 인해 근막의 구성 성분인 콜라겐이 변성돼 딱딱해지고, 주변 조직을 압박해 통증을 일으키는 병. 보통 발바닥과 뼈가 만나는 뒤꿈치 부위에 잘 나타난다. 족저근막염은 아침에 일어나 첫걸음을 뗄 때 ‘악’ 소리를 낼 정도로 아픈 ‘모닝 페인(Morning Pain)’이 특징이다. 잠잘 때 수축했던 족저근막에 갑자기 체중이 실리면서 극심한 통증이 발생한다.
몇 발자국 걸으면 나았다가, 오후쯤 증상이 재발하면 족저근막염일 가능성이 크다. 초기 족저근막염은 1~2주 안정을 취하고, 진통제로 통증을 다스리면서 스트레칭을 병행하면 좋아진다. 상태가 악화해 걷기가 불편할 정도라면 체외충격파 시술이나 족저근막 절개술을 고려한다. 절개술은 두꺼워지고 손상된 족저근막을 잘라내는 치료다. 체외충격파는 염증이 생긴 부위에 충격파를 가해 혈류량을 늘리고, 신경세포를 자극해 통증을 완화하는 방식인데 10명 중 8명은 체외충격파만으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만성질환에는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당뇨병·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에게는 등산도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 당뇨병 환자는 저혈당이 복병이다. 당뇨병 환자는 혈중 포도당 농도를 떨어트리기 위해 약을 먹거나 인슐린 주사를 맞는다. 일상생활을 할 땐 문제가 없지만, 식사를 건너뛰거나 등산처럼 과도한 운동을 하게 되면 에너지를 내기 위해 부족한 포도당이 쓰이면서 저혈당으로 이어진다. 저혈당의 증상은 식은땀, 공복감, 손 떨림, 집중력 저하 등 다양하다. 반복적으로 저혈당을 겪으면 몸이 낮은 혈당에 적응하는 ‘저혈당무감지증’이 발생해 심장 손상, 치매 등 합병증 위험이 더욱 커진다. 포도당은 뇌의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혈중 포도당 수치가 심하게 떨어지면 뇌 활동도 저하돼 정신착란, 의식 저하 등 응급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저혈당은 관심을 갖는 만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등산 등 고강도 운동을 할 경우엔 이에 맞춰 식사량을 늘리거나 약물의 양을 줄이는 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고혈압·심장 질환과 같이 혈관 건강이 좋지 않은 환자도 준비 없는 산행은 지양해야 한다. 등산할 때는 안정 시의 8배, 빠르게 걸을 때의 2배 정도 산소량이 요구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공기 중의 산소가 줄어 심장·폐가 받는 부담은 급증한다. 급성심근경색 등 응급 질환의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등산 시엔 신체 활동량 증가로 탈수가 동반되기 쉬운데, 이로 인해 혈압·맥박이 증가하고 혈관이 수축해 심장의 운동량이 증가한다. 협심증·심근경색을 앓았던 환자는 니트로글리세린 등 비상용 약을 꼭 지참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안전한 등산 요령
등산은 준비하는 만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우선 장비다. 배낭의 무게는 체중의 10%를 넘지 않도록 한다. 끈 길이가 길수록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고 보폭이 줄어 부상 위험이 커진다. 몸과 가방이 한 몸처럼 밀착하는 수준으로 가방 크기와 끈 길이를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등산화는 산의 높이와 코스의 험난한 정도에 따라 다른 종류를 선택한다. 동네 뒷산처럼 가벼운 산행은 목이 낮은 로컷 신발이 제격이다. 목이 높고 무거운 하이컷 신발은 발을 보호할 순 있지만, 무겁고 둔해서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재질은 고어텍스가 무난하다. 방수가 되면서 땀 배출도 잘돼 여름철에 특히 유용하다. 초보 등산객이나 당뇨병 환자는 충격을 흡수하는 면양말과 깔창을 이용해 발의 마찰력·피로를 줄여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등산에 나설 때는 2~3시간 전 평소 식사량의 3분의 2 정도만 먹어야 속이 부대끼지 않는다. 가능한 한 탄수화물은 많이, 지방·단백질은 적게 먹는다. 지방은 소화·흡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단백질은 대사 과정에 수분을 빨아들여 산행 중 탈수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 등산 중에는 물과 함께 비타민·미네랄이 풍부한 오이·당근을 틈틈이 섭취하는 것이 근육통과 탈수 예방에 효과적이다.
준비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산에 오르기 전 15~30분가량 스트레칭을 하면 무릎과 발목 주변 근육이 이완되고, 보조 근육이 강화돼 부상 위험을 덜 수 있다. 산을 오르내릴 때 자세도 중요하다. 허리를 구부리거나 뒷짐을 지는 행동, 무릎을 짚고 산을 오르는 것은 모두 관절에 좋지 않다. 가슴·무릎·발끝이 일직선이 되도록 서고, 평지보다 좁은 보폭으로 발바닥 전체가 땅에 닿는다는 느낌이 들게 산을 탄다. 내리막길을 걸을 때는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힌 채 무릎을 살짝 굽히면 무릎·발목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중년층은 등산 시 거리만큼 속도 조절에도 신경 써야 한다. 가슴이 아프거나 맥박이 너무 빨라지면 즉시 휴식을 취하면서 몸 상태를 체크한다. 등산 속도는 상대방과 얘기할 수 있을 정도, 혼자 산을 오를 땐 휘파람을 불 수 있는 정도가 적당하다. 맥박수 측정이 가능하다면 평상시보다 20% 늘어난 정도를 유지하도록 한다.
등산이나 트레킹을 통해 면역력을 높이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해 삶의 질이 향상된 인구가 늘고 있다. 숲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White Noise) 특성을 지녔다. 또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피톤치드는 후각을 자극해 마음을 안정시킨다. 다만 본인의 몸 상태와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기저 질환 등을 잘 파악해야 건강한 야외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