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자연, 모두의 미래를 위해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한 최적의 장소들, 친환경 시대에 어울리는 여행지를 만나본다.
우리가 남길 것은 오직 발자국뿐
팔라우
남태평양 서쪽 끝, 인구 약 1만8,000여 명의 작은 섬나라 팔라우. 괌, 사이판과 함께 오세아니아 섬나라 중에는 비교적 우리나라와 가까운 편에 속한다. 섬의 크기는 우리나라 거제도와 비슷할 정도로 매우 작지만, 해안선을 따라 수많은 화산섬이 분포되어 있어 진귀하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사실 팔라우는 그리 잘 알려진 여행지는 아니었다. 시끌벅적한 관광지 대신 한적한 휴양지를 선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팔라우의 청정 바다는 소위 ‘신들의 바다’라 불리며 전 세계 다이버들의 성지가 된 것. 팔라우의 아름다운 바다를 찾아 매년 인구의 8배가 넘는 관광객이 방문했고, 결국 생태계 오염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팔라우는 2017년, 세계 최초로 환경보호를 위한 입국법을 개정했다. 일명 ‘팔라우 서약(Palau Pledge)’이다. 팔라우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여권에 팔라우 서약 스탬프를 찍고 서명을 해야만 입국이 가능하다. 흥미로운 점은 스탬프의 언어 중 한국어도 있다는 사실. 잠시나마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를 만나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팔라우 서약은 미래 아이들을 위해 이곳에 머무는 동안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겠다는 공식적인 약속이다. 실제 팔라우 서약의 초안을 현지 어린이들이 직접 작성했다고 하니, 환경에 대한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더욱 의미가 가슴에 와닿는다.
이 밖에도 해양 환경을 위한 팔라우의 노력은 다양하다. 바다의 약 8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 상업적인 어업과 석유 시추 등을 금지하고 있다. 또 일회용 플라스틱, 스티로폼 사용을 제한하는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다. 무엇보다 산호초의 백화 현상을 초래하는 자외선 차단제의 판매와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니, 팔라우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화학 성분이 없는 자외선 차단제를 준비하거나 아예 가져가지 않는 것이 좋다. 팔라우 여행에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은 오직 발자국뿐임을 기억하길.
야생동물의 보고이자 생태관광의 낙원
코스타리카
우리에게는 커피 원두 원산지이자 영화 <쥬라기 공원>의 배경으로 더욱 잘 알려진 코스타리카.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해 있으며 위로는 니카라과, 아래로는 파나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코스타리카는 스페인어로 ‘풍요로운 해변’이라는 의미지만, 국토의 절반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만큼 울창한 숲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코스타리카 원시림에는 원숭이, 나무늘보, 라쿤, 재규어 등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나라의 전체 면적이 세계 국토의 0.03%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생물종의 6.5%가 서식하는 데다가 한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조류의 종류가 북미 전체를 합한 것보다 훨씬 많을 정도로 코스타리카의 생물다양성은 단연 세계 최고다.
울창한 원시림과 때 묻지 않은 자연, 다양한 야생동물과 아름다운 바다까지, 코스타리카가 생태관광의 낙원으로 불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코스타리카는 국토의 25%를 국립공원과 보호구역으로 지정, 지속적인 자연보호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1986년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생태관광을 육성해오고 있다. 코스타리카의 생태관광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책임 있는 여행’을 원칙으로 한다. 보호구역 여행 시에는 지역 해설가를 동반해야 하며 원시림 훼손을 막기 위해 여행지 입장 인원도 제한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지속 가능한 여행 인증제인 ‘CST(Certification for Sustainable Tourism)’를 운용, 지속 가능한 환경 조성에 기여한 여행사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산림 벌채를 하지 않고, 전력의 99%를 재생에너지에서 얻으며, 일찌감치 탄소 중립국을 선언하며 환경보호에 진심을 다해온 코스타리카. 우리에게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던 때부터 이어져온 관심과 노력 덕분에 코스타리카는 오늘날 글로벌 대표 생태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자전거로 어디든 갈 수 있는
핀란드 헬싱키
청정 자연이 떠오르는 북유럽, 그중에서도 친환경 대표 국가로 손꼽히는 핀란드. 북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 역시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헬싱키는 ‘자전거의 천국’이기도 하다. 헬싱키 내 자전거 도로만 1만2,000km에 이르는데, 보행자가 도보 또는 자전거를 이용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이동성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결과다.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60% 감소라는 목표 아래 교통수단을 소유가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대중교통의 개선, 자전거 도로 및 공유 자전거 확충 등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헬싱키 주민의 70% 이상이 대중교통 또는 공유 자전거 이용을 생활화하고 있다. 시내 곳곳에서는 노란색의 공유 자전거, 시티 바이크(City bike)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시즌권을 구매하면 좀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헬싱키의 호텔도 친환경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헬싱키 시내 호텔 대부분은 정부로부터 환경친화 인증을 받은 ‘친환경 호텔’이다. 음식, 물, 폐기물 관리, 에너지 소비에 이르기까지 호텔 운영 전반에서 철저하게 친환경 계획을 세우고 이를 잘 지키고 있다는 의미다. 호텔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부착하는가 하면, 환경친화적 재료를 사용해 건축하는 등 친환경 호텔의 인증 동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헬싱키가 친환경 도시로 거듭나는 데 시민들의 수준 높은 생태적 사고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 불필요한 소비를 없애고, 재활용을 생활화하며, 대중교통을 적극 이용하는 등 그들의 삶과 일상에 친환경적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는 것. 여기에 도시와 자연의 균형을 맞추려는 정부의 노력이 더해져 세계에서 손꼽히는 친환경 도시로 거듭났다.
헬싱키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Think Sustainably(지속성을 생각하라)’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친환경 호텔, 비건 식당, 중고 상점 등 지속 가능성에 동참하는 헬싱키 곳곳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친환경 호텔에 묵고, 시티 바이크로 이동하며, Think Sustainably에서 추천하는 장소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헬싱키의 친환경 노력에 동참해보는 뿌듯함을 안겨줄 것이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꿈꾸는
르완다
아프리카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나라, 르완다. 탄자니아,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부룬디에 둘러싸여 있는 르완다는 우리나라 면적의 약 4분의 1 크기의 아주 작은 나라다. ‘르완다’라는 이름은 ‘천 개의 언덕의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토지가 비옥하고 산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르완다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강경한 환경보호 정책을 펼쳐왔다. 가뭄, 토양과 물 오염, 전염병 등 아프리카 대륙에 만연한 고질적인 문제가 모두 환경오염에서 비롯됐기 때문. 그중 르완다는 플라스틱 사용 규제에 있어 매우 강력한 의지와 실천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를 선언했다.
르완다의 전통 ‘우무간다(Umuganda)’도 주목할 만하다. 르완다를 방문하면 생각보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도시경관에 놀라게 되는데, 실제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는 공공근로 개념인 ‘우무간다’의 역할이 컸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이면 지역 주민이 한데 모여 마을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우무간다’는 환경 정화 활동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사이, 더욱 강력한 제재와 실천으로 이제는 전 세계에 귀감이 되고 있는 르완다의 환경정책.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노력이 모여 만든 값진 결과다. 참고로 르완다는 ‘나 홀로 여행이 안전한 나라’ 10위 안에 들 정도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사회 안전망을 갖추고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반입과 사용만 주의한다면, 보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이 될 터. 단, 아프리카 국가마다 플라스틱 금지 규정이 제각각이니, 방문 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