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함 최나영 대표
오래도록 간직해온 기억을 곁에 두고 매일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소중한 기억과 이야기를 특별하게 담아내는 모리함 최나영 대표를 만났다.
소중한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법
빠른 게 미덕인 시대다.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어 있더라’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 되레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더 오래 기억하도록 도와주는 곳이 있다. 전통 표구를 기반으로 고객의 기억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모리함’이다. 마음으로 그릴 모(募), 특별하게 다룰 리(異), 품을 함(函)을 합해 지은 이름으로 ‘마음으로 그리는 소중한 기억과 이야기를 담다’라는 뜻이라고 최나영 대표는 이야기한다.
“모리함을 처음 접한 분들께는 ‘메모리함으로 기억해주세요’라고 이야기해요. 기억이란 뜻의 메모리(Memory)와 상자를 뜻하는 함(函)을 합한 이름이기도 하거든요. 한국의 전통 표구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의 소중한 이야기나 추억을 액자에 담아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표구는 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 병풍, 족자, 서적 등의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다. 모리함은 전통 표구 방법인 배접 기술을 이용해 액자로 완성하는데, 표구의 대상에 제한이 없다는 게 강점이다.
“사람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이 다르고, 추억이 담긴 물건이 다양하잖아요. 물건마다 보존 방법과 처리하는 방법이 달라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간 쌓아온 경험과 꾸준한 연구를 통해 고객이 만족스러워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어떤 물건을 가져오시든 정성을 다해 표구합니다.”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하여
최나영 대표는 모리함을 열기 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업무 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IT업계에서 무려 10여 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던 최 대표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 건 사랑하는 엄마와의 이별.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오는 동안 정작 소중한 것을 잊고 지낸 건 아닌지 되돌아보는 순간이었다.
“오래도록 기억하거나 영원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이 생겼어요. 그리고 떠올린 게 바로 표구였죠. 저의 첫 작업은 엄마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진주 목걸이였는데요. 그렇게 모리함이 시작되었습니다.”
최나영 대표가 한국 전통 표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더 오래 보존하고 아름답게 담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표구 전문 교육기관이 없어 인사동을 전전하며 장인들로부터 표구를 사사하고 꾸준히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그 연장선상에서 문화재 수리에 대한 전문 기술과 지식을 갖춘 ‘국가유산수리기능자’ 자격도 취득한 최나영 대표.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표구에는 상당히 많은 기술이 필요해요. 선생님들마다 표구하는 방법이 다르고 각자의 노하우가 있으신데요. 이분들에게 표구를 사사하면서 기술을 익혔지만,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다고 느껴져요. 시대가 변하면서 표구의 대상이나 소재가 다양해지는 만큼 전통을 지키면서 모리함만의 기술과 노하우를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작품이 되기까지
남산터널 부근, 한적한 소공동 거리에 눈에 띄는 건물 하나. 붉은색 벽돌이 인상적인 모리함의 보금자리다. 커다란 창으로 쏟아지는 햇볕 덕에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은 삶에 포근한 감동을 전하는 모리함과도 닮아 있다. 1층은 모리함의 작업 공간으로 표구 작업을 위한 다양한 도구와 목공을 위한 공간,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상담 공간이 자리한다. 모리함의 작품은 모두 원목 액자를 사용하기에, 작업 공간에는 은은한 나무 냄새가 맴돌고, 각자의 자리에서 세심하게 고객의 물건을 다루는 직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모리함의 작업은 100% 맞춤 제작으로 진행해요. 의뢰부터 픽업까지 대면 상담을 고수하는데요. 물건에 담긴 이야기와 고객의 표정이나 눈빛에서 전해지는 감정까지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서예요. 그 과정에서 색과 소재, 액자 프레임과 크기 등 고객의 취향을 반영하고, 액자를 걸어둘 공간까지 염두에 두어 세상에서 하나뿐인 액자를 만들죠.”
작품을 전달할 때에도 ‘모리함스러운’ 배려가 돋보인다. 입구에 마련된 하얀색 벽에 완성된 액자를 걸어두고, 이를 찾으러 온 고객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 모리함의 슬로건처럼, 나의 이야기가 근사한 작품이 되어 만나는 감동을 선사한다.
“많은 고객이 결과물도 만족해하셨지만, 만들어가는 작업 과정을 더 행복해하셨어요. 자신의 기억 속에만 있던 이야기를 꺼내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잖아요. 저 역시 고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공감하고, 어떻게 하면 물건을 정성스럽게 잘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추억에 의미를 더하는 표구
한남동의 작은 공간에서 소공동 건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새롭게 마련한 공간이 있다. 2층과 3층에 자리한 모리함 전시관이다. 2022년부터 한 사람의 일생을 보여주는 ‘일생의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모리함의 작업이 기억을 액자에 담아 보여주는 형태라면, 이를 액자에서 공간으로 확장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마련한 전시다.
“첫 번째 전시는 돌아가신 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아쉬웠던 부분이 많았거든요. 엄마를 기억하고 의미 있게 기록하려고 <장례식>이라는 주제의 전시를 개최했죠.
어린 시절 사진부터 생전 좋아하셨던 음악, 저희 집에서 나던 섬유유연제 향기, 즐겨 드시던 음식을 마련해 손님들과 함께 나눴어요.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각과 후각으로도 감상할 수 있는, 오감으로 즐기는 전시라고 볼 수 있어요.”
돌, 환갑, 칠순 등 일생의례의 소중한 순간을 특별하게 기록하는 모리함의 전시는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찰나의 순간을 넘어 인생 전체를 표구하는 모리함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다. 올해에는 보다 다양한 전시가 기다리고 있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비롯해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한 전시도 진행될 예정이다. 더불어 표구도 재료의 확장을 통해 보다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는 최나영 대표.
“무언가를 표구한다는 건, 그만큼 소중하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는 뜻이잖아요. 그 마음을 알기에 고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정성껏 액자에 담아드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물건에 깃든 추억에 의미를 더하고 싶을 때, 모리함을 떠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