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의 놀이터
뉴트로 감성과 로컬 문화가 만나 새로운 놀이터가 된 골목과 동네.
약재시장으로 익숙한 경동시장에 MZ세대가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스타벅스 경동1960점이 생기면서부터다. 1960년대 문을 연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 오픈한 곳으로 로컬 문화를 계승함과 동시에 새로운 세대의 유입을 이끌어냈다는 평이다. 몇 년째 트렌드의 중심에 있는 ‘뉴트로’는 젊은 세대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선물하기에 세대를 막론하고 성공이 보장된 마케팅 수단으로 여겨진다. 100년이 넘은 광장시장 한복판에는 그로서리 스토어가 생겼다. 지방 곳곳의 양조장에서 주조한 전통주와 국산 식재료로 만든 간식, 다양한 기념품과 소품 등을 판매해 볼거리가 가득하다. 광장시장 입구에는 그동안 특색 있는 콘셉트로 주목받은 카페가 새로운 지점을 열어 시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익숙했던 동네, 골목에 새로운 상점과 문화가 스며들어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동네가 되기도 하는 요즘이다.
끝없는 리단길의 유행
2009년경 이태원 지역 상권이 크게 활기를 띠면서 임대료가 상승하자 소상공인들은 옆 동네이자 언덕길인 경리단길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독특한 상점과 식당이 밀집하면서 경리단길 역시 인기를 얻었고 ‘리단길’이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간다. 2022년 3월 기준 전국에 ‘리단길’이라는 명칭이 붙은 거리는 33곳에 달한다. 서울 망원동의 망리단길, 송파의 송리단길, 양양군의 양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 등 크고 작은 상점과 지금 가장 인기 많은 레스토랑, 베이커리 등이 생겨나면서 ‘리단길’이 붙으면 꼭 가봐야 할 곳, 놀러 가기 좋은 곳으로 인식된다.
구해운대 역사 뒤쪽에 생긴 ‘해리단길’은 이미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도 방문하는 곳이다. 해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기자기한 카페와 SNS에서 유명한 식당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평일 낮에도 카페는 빈 좌석을 찾기 힘들고, 요즘 인기 많은 동네에 가면 무조건 있다는 ‘네 컷 사진’을 찍는 부스는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으로 줄이 길다. 식당 역시 기다려야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신용산역과 삼각지역 사이에는 서울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용리단길’이 있다. 과거 노포만 드문드문 포진하던 골목에 트렌디한 가게가 여럿 생겨나며 힙한 상권으로 변모했다. 특히 외관부터 신경 쓴 카페나 식당이 많아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이도 자주 볼 수 있다. 외국어 간판과 플래카드를 붙여 현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홍콩식 중식당, 미국 샌프란시스코 감성의 브런치 가게, 프랑스 도심의 베이커리를 옮겨놓은 듯한 카페, 서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즐기는 일본식 선술집 등 용리단길을 걸으며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는 우스갯소리는 결코 과언이 아니다.
다시 주목해야 할 골목
몇 년 전 익선동이라는 낯선 동네가 인기를 끌면서 취재차 방문한 적이 있다. 골목마다 한옥을 개조한 상점이 즐비해 먹을거리, 구경할 거리가 가득했다. 익선동은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식당과 카페, 여러 상점이 입점하면서 주목받은 동네다. 이미 4~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골목마다 인파로 북적이고 특히 외국인도 많아 서울의 대표 관광지가 됐음이 실감난다. 익선동은 ‘익선다다’라는 도시재생 스타트업에서 지역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내면서 거리를 개발한 사례로 뒤이어 대전 소제동 역시 이들의 기획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노잼도시로 유명하던 대전의 소제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지어진 옛 철도 관사가 밀집한 곳이다. 익선다다의 손길이 닿자 기와지붕의 스러져가던 집은 힙한 카페로 바뀌었고, 정원에서 물이 흐르고 온천처럼 연기가 나는 조경 덕분에 사진 맛집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마당에 오래도록 방치된 대나무 군락을 그대로 살리거나 이탈리안 음식점에서는 충청도에서 난 식재료만으로 요리를 한다. 일본식 가옥의 흔적인 다다미방을 살려 만든 카페도 있다. 자연환경과 역사를 보존하고 현대의 감성을 더해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거듭났다.
서울에서 다시 태어난 골목으로 을지로를 빼놓을 수 없다. 가장 인기 많은 대상에 붙는다는 ‘힙’이라는 단어를 합쳐 ‘힙지로’로 부상한 을지로는 골목마다 숨어 있는 가게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쇄 거리 한복판, 쉴 새 없이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인쇄소 옆에 이탈리안 화덕 피자집이 있거나 허름한 건물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분위기 있는 레코드 숍이, 건물 옥상에는 와인바, 아늑하게 꾸며진 요가 체험 공간도 있다. 세운상가 주변으로 철공소가 밀집한 부근에는 눈을 크게 떠도 지나치기 쉬운 하얀 문 너머 사진 및 회화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가 자리한다. 마치 나만의 아지트를 발견한 기분, 모래사장에서 보물을 찾은 듯하다.
최근 힙지로의 인기를 힙당동이 이어받았다. 서울 중구의 신당동이다. ‘신당’ 하면 떡볶이밖에 생각나지 않던 시절은 너무 오래전 일이다. 신당역 부근, 신당중앙시장 근처 골목에 카페와 맛집이 생기면서 MZ세대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런던 감성의 수제 버거 맛집 브릭레인버거,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다는 하니칼국수, 식품부터 옷, 청소용품까지 몽땅 판매하는 핍스마트, 빈티지 감성의 가드닝 소품 숍 세실앤세드릭 등이 대표적이다. 주방가구 거리가 가까워 도로에 카페 의자가 높이 쌓여 있고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주방 집기와 분주히 오가는 오토바이까지 낯선 분위기의 동네에 새로운 상점이 생기자 신당동에는 색다른 활기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