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도시, 포르투갈 포르투
도루 강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레스토랑에 불이 켜지면, 동 루이스 다리 난간에는 노을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포르투는 아름다운 건축물과 향긋한 포트와인, 그리고 낭만이 가득한 도시다.
포트와인을 찾아서
발효 중인 포도주에 브랜디를 첨가해 풍부한 과일 향과 진한 맛으로 사랑받는 포트와인의 시작은 영국과 프랑스가 벌였던 백년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은 와인을 온전히 수입에 의존했는데 전쟁으로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새로운 와인 생산지를 찾아 나섰고 포르투갈의 북쪽 도시 포르투에서 와인을 공급하기로 한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 탓에 바다를 건너 영국까지 와인을 운송하다 보니 맛과 향이 변했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브랜디를 와인에 첨가하게 됐다. 이게 바로 포트와인의 시초다.
포르투는 동 루이스 다리(Ponte de Dom Luis)를 기점으로 선착장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히베이라 광장(Praca da Ribeira) 지역과 와이너리가 밀집한 건너편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으로 나뉜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포트와인 셀러 20여 곳이 자리한다. 그라함 포트(Graham’s Port Lodge)는 5대째 200여 년 동안 가족 경영으로 이어오는 포르투갈 최대의 와인 기업인 시밍턴 패밀리 에스테이트가 운영하는 곳이다. 2012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60주년 행사 기념주로 그라함 포트와인이 선택됐는데, 장기 숙성으로 인한 농축미와 우아한 아로마 향 덕분에 ‘여왕의 와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서 가장 오래된 포트 하우스는 1588년 설립된 크로프트(Croft port)다. 오랜 역사만큼 뛰어난 품질 덕분에 정통 포트와인의 상징과도 같은 곳. 거대한 오크통 사이를 거닐며 와이너리의 역사에 대해 듣고, 와인을 시음해본다.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구매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와이너리 투어는 10~20유로 정도로 부담 없는 가격이며, 와인 역시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니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이도 많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르투는 기대 없이 찾은 도시였다. 수도인 리스본에 가기 전 근교 도시를 둘러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방문했지만 여행이 끝나고 몇 년이나 지난 지금 포르투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는 포르투다. 한강처럼 큰 도루 강이 흐르는 도시 곳곳에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예쁜 스폿이 가득해 사진을 찍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멀지 않아 두 발로 거닐며 골목골목을 누비는 뚜벅이 여행에도 안성맞춤이다.
기차를 탈 일이 없어도 상 벤투역(São Bento railway station)은 꼭 방문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유럽식 역이지만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단거리 열차의 종착역인 상 벤투역은 16세기 화재로 폐허가 된 성 베네딕토 수도원을 1900년 카를로스 1세가 기차역으로 꾸민 곳이다. 커다란 시계, 기차 정보가 표시되는 전광판 옆으로 내부 벽면이 온통 푸른 컬러의 아줄레주로 장식되어 있다. 아줄레주는 주석 유약을 사용해 그림을 그려 만드는 포르투갈 특유의 도자기 타일 작품이다. 포르투갈의 역사적 사건이 자세하게 묘사된 아줄레주 2만 장을 만드는 데는 1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야외에 있는 아줄레주를 보고 싶다면 카르무 성당(Igreja do Carmo)으로 가보자.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이 결합된 성당의 오른쪽 외관이 전부 아줄레주다. 푸른 하늘 아래 푸른 아줄레주의 조합은 더없이 환상적이다.
포르투에서 1년 내내 가장 사람이 많은 관광지는 바로 렐루 서점(Livraria Lello)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서점’에도 여러 차례 뽑힌 이곳은 <해리포터>를 집필한 조앤. K. 롤링이 포르투에서 영어 강사를 할 때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110년 이상 서점으로 운영되어온 렐루 서점 내부는 온통 나무로 이뤄져 있다. 벽, 계단, 천장 모두 짙은 나무 소재에 섬세한 조각을 해놓아 포근하면서도 화려하고, <해리포터>에서 봤음직한 나선형 계단은 우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색색의 빛 덕분에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세계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흔한 패스트푸드 체인점 맥도널드 역시 포르투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리베르다드 광장에 있는 임페리얼 맥도널드점은 본래 임페리얼 카페가 있던 곳을 맥도널드가 인수했다. 내부 공사를 따로 하지 않아 고풍스러운 아르누보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친근하게 접하던 햄버거와 감자튀김도 샹들리에 아래에서 먹으니 더욱 특별해지는 기분이다. 마제스틱 카페 역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중 한 곳으로 꼽힌 곳. 입구의 화려한 기둥과 장식 덕분에 멀리서도 눈에 띈다. 1921년 문을 연 마제스틱 카페는 중세 유럽의 궁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포르투 물가에 비해 음료와 음식값은 비싸지만 친절한 직원들과 멋진 인테리어는 시간 여행을 떠나온 것처럼 색다른 추억을 쌓기에 그만이다.
노을로 물들어가는 시간
도시 중앙을 흐르는 도루 강변의 히베이라 광장에는 버스킹을 하는 아티스트와 관광객을 위한 레스토랑과 카페가 즐비하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음식 종류도 다양해 점심, 저녁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활기찬 낮보다 찰나의 저물녘이, 그보다는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시간이 아름다웠다.
몇 년 전부터 SNS에서 포르투가 ‘노을맛집’으로 유명해졌는데, 핫 스폿은 동 루이스 다리 위쪽에 자리한 모루공원(Jardim do Morro)이다. 노을이 지기 전 여유롭게 동 루이스 다리로 향했다. 1886년 증축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는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172m로 에펠탑을 건축한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가 설계했다. 2층으로 되어 있는 다리로 1층은 자동차가, 2층은 메트로가 다닌다. 1, 2층에는 각각 좁은 인도가 있어 다리를 건너 다닐 수 있다. 구시가지에서 와이너리가 밀집한 빌라 노바 데 가이아 쪽으로 가면 오렌지빛 태양에 물들어가는 포르투 시내 모습을 감상하기에 좋다. 붉은 지붕과 타오르듯 빛나는 노을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푸니쿨라를 타거나 걸어서 다리 2층 부근으로 올라갈 수 있다. 야트막한 언덕이 있는 모루공원에서는 시야가 탁 트여 동 루이스 다리와 도루 강, 포르투 시내까지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노을이 진 후,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에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는 야경까지 감상하고 나면 이 도시를 충분히 즐겼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충만해진다. 하루는 다리 위에서, 하루는 언덕에서 노을과 야경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던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