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식탁, 따뜻한 마음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를 더욱 빛내줄 테이블웨어의 세계.
우리에게 ‘집밥’이라는 단어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바쁜 생활로 집에서 밥을 챙겨 먹는 게 여의치 않거나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게 일상이 되면서, 정성스러운 한 끼 식사의 소중함이 더 크게 와닿는 이유다.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자, 한때 식당에서는 ‘집밥’이라는 메뉴가 등장하기도 했다. 정성, 건강, 가족··· 사전에도 없는 집밥이라는 단어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스며 있다.
“언제 한번 밥 먹자”는 말이 일상적인 인사가 된 요즘. 그리운 사람에게 밥은 먹었냐는 말로 안부를 묻고, 위로가 필요한 이에겐 말없이 밥 한 끼를 권한다. 밥은 관심이고 사랑이다. 매일 먹는 밥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떠올리면, 마음마저 든든하게 채워지는 기분이다.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아 식탁을 채우고, 소중한 사람과 마주 앉아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든든하고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부와 권력의 상징에서 식탁 위의 예술로
우리는 언제부터 화려한 식기로 테이블을 수놓았을까. 테이블웨어를 꽃피운 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했던 64년(1837~1901)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였다. 산업혁명과 함께 사회, 문화, 정치,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근대화가 무르익던 시기다.
이 시기 지배계급의 상류층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집에서 파티를 열었다. 이들에게 정찬 파티는 상류층 간 유대감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수단이자 신분의 상징이었다. 온갖 희귀하고 화려한 재료를 사용해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 특별한 정찬 모임을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당시 손님 초대 횟수는 신분을 구분 짓는 잣대와 같아서, 되도록 자주 파티를 열고 10코스 이상의 화려한 만찬을 준비했다. 스털링(순은)으로 만든 값비싼 촛대, 화려하고 다양한 커틀러리, 아름다운 크리스털 센터피스 등 오늘날 정찬의 표본이 되는 화려한 테이블 세팅은 이때 완성되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신분 사회가 무너지자 이들이 꺼내든 건 ‘식탁 매너’였다. 빳빳하게 풀을 먹인 하얀 식탁보 위에 포크와 나이프, 유리잔과 냅킨을 가지런히 놓는 등의 까다로운 규칙을 만든 것이다. 특별한 식탁 문화를 통해 자신들의 지위에 도전하는 중산층과 신흥 부자를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상류층이 커틀러리의 꽃을 피웠다면, 커틀러리의 천국으로 이끈 건 중산층이었다. 자수성가한 중산층이 귀족의 특권이었던 홈 파티를 따라 하기 시작한 것. 이들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값비싼 커틀러리로 식탁을 화려하게 치장했다. 부드러운 과일의 과육을 먹을 때 사용하는 끝이 뾰족한 스푼, 앙증맞은 크기의 머스터드 스푼, 음료를 젓는 기능을 추가한 빨대, 얼음용 집게 등 다양한 용도의 식기가 식탁 위에 올랐다. 심지어 한 세트에 1,000피스가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 끼 식사에 이렇게나 많은 식기가 필요할까 싶지만 잘 차려진 식탁은 집안의 품격과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상아 손잡이로 장식한 그릇은 물론 값비싼 유리 공예품까지 커틀러리는 점점 사치스러움을 더하며 식탁 문화의 절정을 이뤘다.
영국 차 문화와 명품 도자기 브랜드
오늘날 ‘명품’으로 손꼽히는 그릇의 역사를 따라가보면, 영국의 차(Tea) 문화와 맞닿아 있다. 영국 하면 ‘홍차’가 떠오를 만큼 영국의 차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웨지우드(Wedgewood), 로열덜턴(Royal Doulton), 민턴(Minton) 등 유수의 도자기 브랜드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화려하고 아름다운 찻잔이 생각나는 이유다. 영국은 서양에서 가장 뒤늦게 차 문화가 전파되었음에도 가장 화려하게 홍차 문화를 꽃피우며 수많은 도자기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영국의 차 문화는 포르투갈 캐서린 브라간사(Catherine of Braganza) 공주가 찰스 2세와 결혼할 당시, 지참금으로 차를 가져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담소를 나누며 차를 즐기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고, 점심과 저녁 사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스콘, 케이크 등과 함께 홍차를 마시면서 애프터눈 티 문화가 형성됐다. 영국 왕실과 귀족 사회를 중심으로 한 차 문화의 발달은 멋진 찻잔과 차 도구 등 티웨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 탄생한 수많은 도자기 브랜드는 가장 영국적인 품위와 디자인 그리고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오늘날에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문화가 된 집밥, 오늘날의 테이블웨어
지난 몇 해 동안 이어진 팬데믹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비대면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럽게 ‘집밥’을 해 먹는 일이 잦아졌다. SNS에는 맛집 탐방 대신 근사한 집밥을 자랑하는 게시물이 늘어났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공유하곤 했다.
집밥의 의미가 확장된 점도 눈에 띄는 변화다. 과거 집밥이란 말 그대로 집에서 조리해서 먹는 밥을 뜻했다면, 오늘날에는 밥을 먹는 장소가 ‘집’이라는 데 중점을 둔다.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를 일일이 구매하지 않아도 맛있는 한 끼를 뚝딱 만들 수 있는 밀키트가 인기인 이유다. 장을 볼 필요도 없고, 불필요하게 낭비하는 재료도 없다. 무엇보다 요리를 할 줄 몰라도 근사한 집밥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나만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홈 카페의 인기도 여전하다. 집에서도 다양한 커피 메뉴를 즐길 수 있도록 레시피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이 등장하는가 하면, 나만의 꿀조합 레시피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맛에 도전하는 커피 모디슈머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집에서 즐기는 밥과 커피가 하나의 취미이자 문화가 되어 삶의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는 주방용품 그리고 식기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실제 팬데믹 유행 이후 각종 주방 가전과 테이블웨어 매출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끼를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담아 장식하고, 혼밥도 정성을 다해 플레이팅하는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다. 신혼집 찬장을 가득 메우던 혼수용품에서 벗어나 이제는 일상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식기가 주목받고 있다. 쌓는 재미가 쏠쏠한 모듈형 플레이팅부터 장인의 혼이 담긴 방짜 유기, 합리적인 가격에 만날 수 있는 도예 작가의 도자기, 환경을 생각한 신소재 그릇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소중한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크지만 좀 더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면 테이블웨어에 주목해보자. 상대방의 취향과 분위기를 고려해 선택하면 금상첨화. 특별한 순간을 더욱 오래도록 추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