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건네는 위로
언제나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정원. 그 속에서 느끼는 삶의 기쁨과 행복에 대하여.
어린 시절 나의 봄은 우리 집 앞마당에서 시작됐다. 외할머니를 도와 훌쩍 커버린 상추와 깻잎을 따서 소쿠리에 담고, 휘어진 고추와 방울토마토 줄기는 지지대를 세워 고정시켜준다. 그새 자란 잡초도 뽑아주고, 아직 덜 자란 목련나무는 말끔히 가지치기를 해준다. 그중 가장 설레는 일은 꽃을 심는 일. 팬지, 아네모네, 히아신스, 메리골드 등 다양한 꽃 중에서도 특히 데이지를 좋아했다. 숲속 요정이 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마음에 들었고, 희망과 평화, 순수라는 의미도 좋았다. 여름이 되면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야 했기에 특히 봉선화꽃 물 주기에 신경을 썼던 기억도 난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것도 마당 정원이었다. 다 자란 돌나물이 식탁에 올라오면 봄이 왔음을, 목련꽃이 지면 곧 여름이 시작된다는 것을, 대추가 붉게 익어가면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어김없이 계절의 변화에 화답하고, 정성을 들인 만큼 보답해준 마당 풍경이 가끔은 한없이 그립다. 생각해보면 그 작디작은 마당 정원이 당시의 나에겐 녹색 소우주나 다름없었다. 그 안에 푸른 생명이 있고, 가족과의 추억이 있고, 행복한 기억과 이야기 그리고 내가 있었다. 이따금 길가에 핀 데이지를 보거나, 손톱에 봉숭아물 곱게 들인 아이를 보면 기억 속 나만의 녹색 세계가 펼쳐져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정원 안에서, 가장 인간다운
수천 송이의 붉은 장미와 대리석 조각품, 멋들어진 분수가 어우러진 푸른 잔디밭. 보통 ‘정원’이라고 하면 유럽의 화려한 궁 안에 잘 다듬어진 광활한 대지를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우리 집 앞마당도, 열심히 일군 작은 텃밭도, 다양한 식물로 채운 베란다도 꽤 근사한 정원이다. 오롯이 나의 취향과 수고를 보태어 만든 공간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사람들은 작은 화단, 한 뙈기의 헐벗은 땅을 갖가지 색채의 물결로 넘쳐흐르게 바꾸어놓는다. 우리들의 눈은 위안을 받는다. 그곳이 바로 천국의 작은 정원이다.” 평생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었던 헤르만 헤세의 독백처럼, 사람들은 정원에 저마다의 세계를 펼쳐놓으며 열심히 가꾸고, 삶의 안식처로 삼곤 한다.
식물을 키우거나 정원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행위 자체를 즐기고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해한다.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한 세상에서, 굳이 식물을 키우고 돌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각박한 삶 속에서 느낀 상실과 결핍을 자연으로부터 채우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인간은 자연의 일부였고,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인간다웠으니, 정원을 우리 안에 들이는 일은 우리가 상실한 인간다움을 일깨우는 일일지도. 그래서 나의 존재 가치, 가장 나다운 모습을 정원이 주는 위로 속에서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일 터이다.
우리는 식물을 키우고 정원을 가꾼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임을 알고 있다.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이 우리에게 베풀고 되돌려주는 게 훨씬 많다는 것을. 우리가 정원을 가꾸는 게 아니라 우리를 품고 키워주는 건 자연이라는 것을.
예술적 영감을 주는 정원
정원은 오랜 시간 인간의 삶과 함께해왔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꽃과 나무, 정원에는 수천 년이 넘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공중 정원을 비롯해 지형을 이용한 이탈리아의 테라스 정원, 프랑스의 평면 기하학식 정원과 영국의 자연 풍경식 정원 등 시대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원이 만들어졌다. 한때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의 소유물로, 이후에는 대중의 사교 활동과 놀이의 장소로 존재하며 시대의 역사와 문화, 철학을 담은 공간이었다.
정원은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가 하면, 좋은 소재가 되기도 했다. 모네는 자신이 평생 일군 지베르니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고, 추상미술의 거장인 파울 클레와 바실리 칸딘스키는 열성적인 정원사였다.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은 시골집의 정원에서 식물 친화적인 삶의 방식을 글에 녹여냈고, 애거사 크리스티, 찰스 디킨스도 소설을 구상할 때면 제일 먼저 정원으로 향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 박경리와 박완서 또한 채소밭과 정원 가꾸기에 열심이었다는 건 너무나 유명한 사실. 화단에 꽃과 나무를 심고 열매를 수확하다, 정원 한구석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친 일상에 위로 한마디 건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예술 작품 못지않게 아름다웠을 그들의 정원을 상상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늘 보던 정원도 매일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니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원 중 똑같은 풍경은 하나도 없을 터. 정원 그 자체가 살아 숨 쉬는 신비로운 예술 작품이다.
내 마음속 정원을 꿈꾸다
정원이 주목받고 정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건 사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프랑스 베르사유 정원, 영국 큐 왕립 식물원, 오스트리아 미라벨 정원 등 세계의 수많은 정원이 문화유산이자 관광자원으로 사랑받고 있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국가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과 태화강국가정원을 비롯해 곳곳에 특색을 살린 정원이 즐비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계절의 변화,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 동시에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인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정원에 대한 관심은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변화와도 맞물린다. 홈 가드닝을 넘어 ‘반려식물’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식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베란다나 거실 한편을 식물로 채우거나 옥상에 작은 텃밭을 만드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책상 위에도, 식탁 위에도 작은 화분 하나 올려놓으며 집 안에 생기를 더하고 때맞춰 물을 주고 골고루 햇빛을 받을 수 있게 화분을 이리저리 옮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새잎이 돋아나면 보람을 느끼고, 활짝 피어난 꽃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아파트 내 녹지 공간이 인기의 척도가 되고, 가까운 곳에 작은 공원이라도 하나 있으면 반갑기 그지없는 요즘. 우리는 더욱 강렬하게 정원을 내 안으로 들여놓고 싶어 한다. 어떤 예술 작품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뽐내고,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마음에 위로가 되어주니 정원에 마음이 끌리는 건 당연한 일. 어떤 이에겐 영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겐 휴식의 공간이 되어주는 정원. 저마다 마음속 나만의 정원을 품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