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담그다
수확의 계절이다. 시장에 가면 뜨거운 여름을 난 제철 식재료가 풍성하다. 이 계절을 건강하고 맛있게 음미하는 취미를 제안한다.
가을은 1년 중 제철 먹거리가 가장 풍성한 시기다. 산과 들엔 온갖 과실이 익어가고, 갓 수확한 인삼과 더덕도 보약 못지않게 영양가가 높다. 곧 향긋한 국화도 지천으로 피어날 때다. 이 계절을 두고두고 맛볼 수 있도록 담금주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요리에 소질이 없어도 괜찮다. 담금주는 신선한 재료와 진득하게 기다릴 여유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취하도록 많이 마시지 않는다면 재료 본연의 영양소로 건강을 챙기고, 예쁜 유리병에 담아놓으면 알록달록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니 인테리어 효과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다.
보기도 좋고 향긋한 담금주
과일과 약초, 꽃잎, 버섯, 임산물 등 식용으로 쓰이는 재료는 대부분 술로 담글 수 있다. 요즘 한창 수확철을 맞은 사과와 배, 포도, 단감, 모과, 귤 모두 향긋한 과일주로 만들 수 있다. 새빨간 산수유 열매도 제철이고, 추석에 선물로 받은 인삼과 가을 더덕, 국화와 솔잎도 향긋한 재료다. 오미자나 복분자처럼 주로 말려서 사용하는 재료는 사계절 활용할 수 있다. 다만 각 재료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몇 가지 중요한 공식만 기억해두면 된다.
먼저 술맛을 결정하는 최고의 비결은 재료의 품질이다. 과일은 과육이 단단하고 상처가 없는 것을 골라야 한다. 담금주는 덜 익은 과일로 만들어야 술이 숙성되면서 과일향이 배어 나와 풍미를 더하고, 깨끗하고 상큼한 술맛을 볼 수 있다. 씨가 있는 과일은 씨를 빼고 담는 것이 기본이지만 포도나 매실같이 알갱이가 작은 과일은 통째로 담가도 된다. 단, 과일은 다른 재료에 비해 수분이 많기 때문에 술을 담근 후 2~3개월 이내에 재료를 걸러내야 변질되지 않는다. 꽃으로 술을 담글 때는 활짝 핀 꽃보다 갓 피었거나 반쯤 피어난 꽃봉오리를 사용해야 향과 성분이 더 좋다. 모든 재료는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바짝 말린 후에 술을 붓는데 꽃잎은 쉽게 상처가 생길 수 있으니 청정 지역에 핀 것을 채취하여 흐르는 물에 가볍게 씻어 말린다.
두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담금주에 사용하는 술의 도수다. 알코올 도수가 최소 25도 이상이어야 재료의 맛과 향이 잘 우러나고 상하지 않는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담금용 술은 25도, 30도, 35도 등으로 원료와 취향에 따라 선택한다. 수분이 많은 과일의 경우 25도 소주를 사용하면 숙성 후 17도 내외가 된다. 담금주 용기는 유리병이나 항아리를 주로 사용하는데 깨끗하게 소독해서 사용한다. 밀봉을 잘 해야 알코올이 휘발되는 것을 줄이고 야생효모 등 잡균 오염을 막을 수 있다.
건강하고 맛있게 즐기는 비법
술을 담근 후에는 재료가 잘 숙성되도록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숙성 기간은 보통 2~3개월 정도로 보면 되는데, 이것 또한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사과나 포도, 배 등 무르기 쉬운 과실은 3개월 이내에 과육을 건져내고 보관해야 술이 혼탁해지거나 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특별히 국화나 금귤, 딸기 등은 한 달 이내에 재료를 걸러내야 신선한 향을 살릴 수 있다. 인삼이나 더덕, 마늘 등은 6개월 이상 숙성하면 원재료 특유의 쌉싸래한 향을 잡을 수 있고 목 넘김이 부드러워져 오래 보관하길 추천한다. 건약재 또한 원재료가 상할 염려가 없기 때문에 6개월 이상 보관해도 괜찮다.
담금주를 숙성할 때는 산화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밀봉하여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취향에 따라 당도나 산도를 높이고 싶으면 설탕이나 레몬을 넣어도 된다. 가볍게 담금주를 즐기고 싶을 때 설탕을 넣으면 1~2도 정도 알코올 도수가 줄어든다. 레몬은 당도와 산도를 모두 높이는데 레몬을 첨가했다면 2개월 이내에 걸러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원료 본연의 향취와 맛을 느끼고 싶다면 별도의 첨가물 없이 원재료와 술만으로 충분하다.
담금주는 예부터 약술로 불리며 집안의 특별한 행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상에 올리곤 했다. 재료 본연의 영양소를 오래도록 보존하며 기분 좋게 맛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술이 어디 있을까. 물론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든 담금주라도 지나친 음주는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알코올이 빠져도 좋다! 새콤달콤 과일청
술을 즐기지 않는다면 과일청도 좋다. 알코올 대신 설탕을 넣어 발효시키면 맛있는 제철 과일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과일청을 만들어놓으면 다양하게 활용하기도 좋다. 탄산수와 얼음을 넣으면 청량한 에이드가 되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건강차로 변신한다. 요즘 건강식으로 인기 있는 플레인 요거트나 샐러드에 드레싱으로 올리면 요거트도 채소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과일청 역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재료를 선택하고 깨끗이 세척한 후 껍질째 얇게 썰어 설탕과 1:1 비율로 용기에 켜켜이 쌓아주면 끝이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섭취 효과는 생각보다 훌륭하다. 기본적으로 원재료의 영양소를 맛있게 섭취할 수 있는 것에 더해 스트레스와 피로를 해소하는 달콤한 맛과 풍미는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 다만 설탕으로 숙성시킨 만큼 당과 칼로리가 높기 때문에 과하게 섭취하면 안 된다. 취향에 따라 설탕의 양을 줄이고 꿀을 넣으면 색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또 생강을 얇게 썰어 가미하면 알싸한 향과 깊은 맛을 더할 수 있다. 생강은 환절기 감기와 면역력에도 도움이 된다.
올가을에는 담금주나 과일청 만드는 것을 시도해보자. 풍요로운 가을을 좀 더 붙잡아 곁에 두고 맛과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가을맞이 담금주 만들기
붉은 매력의 사과 담금주
1 알이 작고 단단한 사과를 골라 깨끗이 씻어 말린다.
2 사과를 덩어리째 병에 담고 알코올 도수 30도 정도의 소주를 붓는다. 사과 1kg 기준 소주 1.8L 비율로 계산한다.
3 병을 꼼꼼하게 밀봉하여 2~3개월 두었다가 사과를 건져 거른 후 보관한다.
약으로 마시는 더덕 담금주
1 가을에 캔 더덕을 깨끗이 씻어 그늘에서 바짝 말린다.
2 말린 더덕을 병에 담고 알코올 도수 30도 정도의 소주를 붓는다. 더덕 500g 기준 소주 1.8L 비율로 계산한다. 취향에 따라 설탕을 100g 정도 섞어도 된다.
3 병을 밀봉하여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6개월 이상 숙성하면 맛이 좋다.
노랗게 피어나는 국화 담금주
1 갓 피어난 국화를 깨끗이 씻어 그늘에서 바짝 말린다. 활짝 핀 꽃보다 갓 피어난 꽃이 향과 성분이 더 좋다.
2 꽃잎이 뭉치지 않도록 펴서 병에 담고 알코올 도수 25~30도 정도의 소주를 붓는다. 국화 100g 기준 소주 1.8L 비율로 계산한다. 취향에 따라 설탕을 100g 정도 섞어도 된다.
3 병을 밀봉하여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1개월이면 숙성되므로 꽃을 걸러내고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