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
인류 문명과 함께해온 와인, 그 역사와 숨은 이야기를 찾아서.
누구에게나 ‘첫 경험’은 강렬하게 기억된다. 내겐 와인이 그렇다. 당시엔 특별한 사람들이 향유하는 하나의 문화처럼 느껴졌던 때이기에 와인 한 병이 갖는 의미는 매우 컸다. 영롱한 붉은빛을 눈에 가득 담고 한 모금 넘겼을 때 느꼈던 쓴맛의 기억. 아마도 묵직한 보디의 드라이한 와인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누구도 쉽사리 맛을 표현할 수 없었다.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해 아는 이가 없었기 때문. 어디 가서 ‘나도 와인 마셔봤다’는 게 자랑이던 시절, 그러나 와인을 즐길 줄 아는 특별함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듯했다.
이제는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와인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맛과 종류도 다양해졌으니, 내 취향에 맞게 골라 먹으면 그만이다. 유명 와이너리의 비싼 와인이라고 해서 꼭 내 입에 맞는 게 아니듯, 개개인의 와인 취향은 브랜드와 가격에 상관없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퀄리티 높은 와인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와인 대중화에 힘을 보탰다. 특별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에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온 와인, 그 달콤한 세계를 이제야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최초의 와인을 찾아서
와인의 탄생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인류가 언제부터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와인을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와인의 재료인 포도의 기원으로 말미암아 그 역사를 가늠해볼 뿐. 포도는 인류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포도가 와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바로 발효 과정. 포도는 다른 과일보다 당분이 현저히 높고 껍질에는 효모가 가득해 자연적인 발효가 일어나기에 충분했다. 완전히 익어서 당분이 가득 찬 포도는 알알이 땅에 떨어지고, 푹 익은 포도 껍질이 벗겨지며 자연스럽게 발효가 시작됐을 것이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사실 최초의 와인에 인간의 개입은 없었던 셈이다. 와인의 시작이 애초부터 ‘자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긴 역사만큼 와인에 대한 가설과 추측도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바로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이다. 과거 유인원의 주 식량이자 에너지원은 과일이었다. 푹 익은, 혹은 과도하게 익은 열매는 일정량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었는데, 유인원이 이 냄새에 반응해 잘 익은 열매를 찾아 먹으며 진화한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얘기다. 놀라운 건 다른 동물보다 더 많은 알코올을 섭취하고도 더 빨리 분해시키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가설에 불과하지만 여러 동물 연구 결과가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페르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잠시드 왕의 전설’도 유명하다. 고대 페르시아의 잠시드 왕은 포도를 좋아해 여러 단지에 나누어 보관했는데, 단지 하나의 포도 맛이 이상해 ‘독’이라 표시해두었다. 마침 심한 두통에 시달리던 한 여성이 괴로움에 이 독약을 마셨는데, 잠에서 깨어나 보니 두통은 사라지고 오히려 몸이 가뿐해진 것. 이를 알게 된 잠시드 왕은 더 많은 포도로 ‘명약’, 즉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우연의 발견이 아닌 기록에 의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바로 성경 속 노아에 의해서다. 창세기에는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대홍수 이후 노아가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마셨다는 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주사를 보인 최초의 인간이라는 기록이 흥미롭다. 더욱 놀라운 건, 와인이 처음 만들어진 곳이 노아의 방주가 정박한 아라라트산 인근이라는 점.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란 의미다. 물론 그 어떤 이야기도 와인이 어떻게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이 될 순 없다.
인류 문명과 함께해온 와인
와인은 긴 역사 속에서 서서히 세계로 퍼져 나갔다.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나일 강의 축복을 받은 파라오, 배를 타고 지중해를 누비던 그리스의 모험가, 그리고 쾌락에 빠진 로마의 황제들에게까지 가닿았다. 특히 로마제국의 번영은 유럽 대륙에 와인 문화가 전파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유럽 정벌에 나선 줄리어스 시저와 로마 군대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점령 지역마다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로마군은 침략지에 주둔하며 양조장을 건립하고 와인 제조 노하우를 전파하며 와인을 생산했다. 전투적인 유럽의 수렵민족을 온화한 농경민족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였다고 하나, 궁극적으로는 어디서든 마음껏 와인을 맛보고 싶은 로마인의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현재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등 손꼽히는 주요 와인 생산지의 포도 경작 기술과 와인 양조 문화 역시 로마시대에 조성된 것이다. ‘와인은 신이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는 줄리어스 시저의 말처럼, 로마제국은 유럽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물을 안긴 셈이다.
중세시대 와인과 종교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중세 유럽에는 로마 교회와 수도원이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소유한 포도밭은 교회의 힘이 커질수록 더욱 팽창했다. 와인이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된 건 예수가 성찬식, 즉 최후의 만찬에서 했던 발언 때문이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와인을 건네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한 말에서 은유적 의미로 표현한 와인을, 당시에는 실제 예수의 피로 여겼던 것. 따라서 기독교에서 와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예수를 믿는다는 건 곧 와인을 향유한다는 뜻이었다. 수도원과 교회를 중심으로 양조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고 와인은 기독교 문화와 함께 유럽 곳곳으로 전파되었으니, 와인 역사에서 종교가 갖는 힘은 실로 대단했다.
요컨대 와인은 굵직한 역사의 마디마다 늘 존재하며 변화했다. 호모사피엔스라 불리는 유인원 앞의 포도가 고대 이집트인의 신을 위한 포도주로, 또 호메로스의 서사시 속 달콤한 포도는 디오니소스 신이 사랑하는 포도주가 되어 고대 그리스인의 마음을 훔쳤다. 터키 아라라트산에 정박한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만든 와인은 예수의 희생과 피가 되었고, 수도사들이 빚은 와인은 성찬식 식탁에 올랐다. 귀부병에 걸린 포도는 부르주아의 고급 포도주로, 로마군의 형편없던 ‘포도 물’ 포스카(Posca)는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랑스군을 위한 와인 피나르(Pinard)로 변모했다. 모든 인류의 역사와 문명, 시간과 공간, 사건과 기억 속에서 와인이 빚어졌고 의미가 축적되었다. 그 수천 년 문화의 결정체가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와인 한잔 속에 담긴 셈이다. “와인 한잔에는 맥주 한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프랑스 속담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