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달린다 러닝 전도사 안정은
위기의 순간, 삶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건 다름 아닌 운동이었다. 운동을 통해 삶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살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곤 한다. 안정은 작가는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가 그랬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후 자연스레 프로그램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안정은 작가. 어느 날 문득 이 길이 맞는 건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고. “성적에 따라 전공을 선택하고, 전공에 따라 직장을 구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 생각했어요. 개발 일이 재밌기는 했지만, 제 적성과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이제라도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평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소통하는 데 즐거움을 느꼈던 그가 도전한 분야는 승무원. 1년 동안 친구들과 교류도 끊은 채 영어, 중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은 물론, 혹독한 다이어트에 면접 연습까지 간절한 만큼 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그토록 들어가고 싶은 중국 항공사에 당당히 합격했지만 해냈다는 기쁨은 잠시,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국제적 이슈로 인해 중국 취업비자가 나오지 않았던 것.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되어 돌아왔고 ‘역시 난 안 되는 건가, 난 행복하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절망을 느낄 때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밖을 바라보니 맑고 투명한 날씨가 눈에 들어왔다. 기분 전환을 위해 밖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고 울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부끄러운 마음에 도망치듯 달리기 시작했어요. 한참을 뛰다 잠깐 멈춰 섰는데, 마음에 변화가 일더라고요. 뭐든 다시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긍정의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었어요. 제 달리기는 그렇게 시작됐어요.”
삶의 위로와 용기가 되어준 달리기
달리는 순간만큼은 고민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자유롭다고 느낀 이후 그의 달리기는 계속됐다. 처음 5분으로 시작된 달리기는 다음 날 6분, 그다음 날 7분이 되고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갔다. 그리고 불과 6개월 만에 마라톤에 도전하게 된 안 작가. 마라톤은 1년을 꼬박 준비해도 힘들 만큼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하기에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그에게는 무모한 도전이나 다름없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잖아요.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달리고 나면 나의 길이 보일까 싶었죠. 우울감이 많았던 터라, 머리를 맑게 할 필요도 있었고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전했어요.”
많은 걱정과 우려와는 달리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성공한 안 작가. 해냈다는 기쁨도 컸지만 그 과정에서 보고 느끼며 깨달았던 게 훨씬 많았다. “그날 경기에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를 만났어요. 건강한 사람도 마라톤을 하다 보면 당장 쓰러질 것처럼 너무 힘든데 앞까지 안 보이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막막하죠. 그런데도 그분은 묵묵히 피니시 라인을 향해 달렸어요. 뛰고 싶은 길이 있고, 넘어서고 싶은 결승선이 있다는 것만 중요해 보였죠.” 목표가 분명하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처한 상황과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든 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것. 마라톤이 가진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들기 시작했다.
안 작가의 도전은 계속됐다. 12차례의 풀코스 마라톤 완주는 물론 철인 3종 경기, 극한 레이스로 손꼽히는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까지. 지난해에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 완주에 성공하며 ‘국내 최연소 세계 6대 마라톤 완주’라는 기록을 세웠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달리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마라톤 완주라는 큰 목표를 세웠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1분씩 늘려나가는 과정을 겪었잖아요.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워 이뤄내고 거기에서 얻은 성취감으로 한번 더 도전할 힘을 얻는 거죠.”
안정은 작가는 이후 대기업 마케터, 연극배우, 가야금 연주자, 여행 인솔자 등 일곱 번의 이직을 거쳤다.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한 과정 속에서 다양한 경험은 큰 자산이 됐다. 지금은 런더풀(RUNderful)을 설립해 달리기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고 있다. “달리기의 매력은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준다는 거예요. 내면의 힘이 강해진다는 게 느껴지죠. 그 힘으로 더 열심히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게 달리기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통해 내면의 힘을 기르고 삶을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달리기로 꿈꾸는 행복한 세상
우리는 항상 목표를 향해 달린다. 그러고는 순위권 안에 들었는지, 새로운 기록을 달성했는지 결과에 연연한다. 하지만 안 작가는 달리기 그 자체에 의미를 둔다. “달리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잠시 멈춰도 돼요. 숨을 돌리고 다시 시작하면 되죠. 순위보다는 끝까지 해냈느냐가 더 중요해요. 꼴등으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더라도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이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해주거든요.”
그녀는 스스로를 ‘러닝 전도사’라 소개하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고, 퇴근 후 러닝 크루를 모집해 함께 달리는가 하면 국내 관광지를 달리며 여행하는 런트립을 꾸준히 기획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원화성 근처에 베이커리 카페를 열었다. 수원화성은 그가 좋아하는 러닝 코스 중 하나. 길게 뻗은 수원화성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직접 만든 에그타르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새롭게 준비 중인 프로젝트도 있다. “서울 송정동에 러닝 베이스를 만들고 있어요. 달리기를 하는 분들이 자유롭게 와서 짐도 보관하고, 여름철에는 샤워도 할 수 있는 공간이죠. 러닝 커뮤니티가 좀 더 활성화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통해 자신감을 얻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는 안 작가.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됐다는 그에게 달리기는 삶 그 자체였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많은 게 변했어요.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죠. 두 발로 땅을 딛고 뛰었을 뿐인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더라고요. 달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달리기의 힘을 믿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