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풍미 높여주는 허브
특유의 향과 효능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허브. 누구나 쉽게 기를 수 있고,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허브 이야기.
허브의 제왕 바질
이탈리아 요리의 단골 식재료인 바질은 ‘허브의 왕’이라 불리는 향신료다. 특유의 향과 맛으로 음식의 풍미를 한껏 올리는 것은 물론 다양한 효능이 있어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사용되는 허브다. 비교적 재배하기 쉬워 직접 키우고 수확하는 재미가 크다.
바질은 적당한 온도와 햇빛만 있으면 사시사철 잘 자란다. 가장 중요한 건 건조하지 않은 환경을 유지하는 것. 표면의 흙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물을 듬뿍 주는 게 중요하다. 잎이 물에 닿으면 햇빛에 타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왕이면 아침이나 해가 지는 저녁에 물을 주는 게 좋다. 자주 순을 따주어야 수확량이 늘어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점점 자라 꽃을 피우면 바질 특유의 풍미가 사라지고 쓴맛이 난다.
바질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건강 식재료다. 바질의 상큼한 향은 입맛을 돋우는 역할도 하지만 위장 기능을 높이고 우울, 불안을 진정시키며 스트레스와 같은 신경 피로를 완화해 활력을 주는 효능이 있다. 또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항산화 작용을 하고, 두통과 구내염 치료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바질은 물에 끓이거나 열을 가했을 때 맛과 향이 사라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생바질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가장 좋다. 또 향이 빠르게 날아가 없어지므로 요리의 마무리 단계에, 칼이나 가위보다는 손으로 뜯어서 넣는다.
바다의 이슬 머금은 로즈메리
로즈메리는 이름만 들어도 향이 느껴질 정도로 매우 친숙한 허브다. 바늘같이 뾰족한 잎을 손으로 톡 건드리면 금세 향이 퍼지는데, 달콤한 꽃과 시원한 민트가 어우러져 한 번 맡으면 오래 기억되는 매력적인 향이다.
짙은 향만큼 효능 또한 묵직하다. 가장 대표적인 효능은 기억력과 집중력 향상이다. 로즈메리 향에 들어 있는 카르노신산 성분 때문인데, 고대 그리스 학생들이 로즈메리 화관을 머리에 쓰고 공부했다는 이야기에서도 그 효능을 짐작할 수 있다. 또 피로 회복과 통증 완화, 류머티즘 및 혈액순환 장애에도 효과적이며 눈 건강과 탈모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로즈메리는 환경 적응력이 좋고 해충 피해가 거의 없어 키우기 수월하다. 라틴어로 ‘바다의 이슬’을 뜻하는 로즈메리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건조한 환경에 강하지만 습도에 약하다. 햇볕을 많이 받을수록 잘 자라기 때문에 실내에서 키울 땐 볕이 잘 드는 베란다가 제격. 과습에 주의하고 햇볕과 통풍만 충분하다면 1년 내내 싱싱한 로즈메리를 수확할 수 있다.
갓 수확한 로즈메리는 물에 한 번 씻어내어 바로 요리에 이용한다. 열에 민감하지 않아 열을 가할수록 풍미가 살아나는데, 특히 육류와 생선의 냄새 제거에 탁월하다. 파스타나 감자튀김 위에 뿌리거나 빵이나 쿠키를 구울 때 넣어 향을 내기도 한다. 오일 또는 식초로 만들면 좀 더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백 리까지 퍼지는 향, 타임
이탈리아에 바질이 있다면 프랑스엔 타임이 있다. 유럽에서 흔히 사용되는 허브로 특히 프랑스 음식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백리향’이라고 부르는데, 그 향이 백 리까지 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타임은 상쾌한 숲과 소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깊은 향을 뿜어낸다. 고기나 생선을 구울 때 로즈메리와 함께 많이 사용되는 허브다. 비슷한 향 때문에 헷갈리기 쉬운데, 로즈메리가 ‘풀’에 가까운 향이라면 타임은 ‘나무’ 향이 좀 더 짙고 강하다. 허브 중에서도 높은 살균 효과로 감염 예방에 탁월하다. 구강 내 살균과 피부 염증 억제에 효과적이고 타박상이나 통풍, 관절염은 물론 감기와 독감 예방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타임은 한겨울의 추위와 사막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생명력이 무기다. 단,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을 수 있으니 시간을 정해두고 물을 주기보다는 흙을 손으로 만져보고 바싹 말랐다 싶을 때 한 번씩 주는 게 좋다.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고 꽃이 피기 전, 초여름의 잎이 가장 짙은 향을 발산한다.
타임을 월계수와 대파 잎으로 부케처럼 감싼 ‘부케 가르니’는 프랑스 국물 요리의 필수 재료다. 토마토 소스나 라타투이 같은 채소 스튜에 넣으면 한층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올리브 오일에 굵은 소금과 타임을 섞은 후 감자와 곁들여도 좋고, 버터에 타임, 마늘, 레몬을 혼합해 만든 타임갈릭버터는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마음을 달래주는 딜
깃털 모양으로 촘촘하게 나 있는 잎이 독특한 딜은 유럽과 미국에서 사랑받는 허브다. 특히 미국은 매년 25억 파운드가 넘는 딜을 소비하고, 유럽에서는 해산물 요리에 자주 곁들여 먹는다. 딜은 ‘진정시키다’라는 뜻의 스칸디나비아어 ‘딜라(Dilla)’에서 유래했다. 고대 이집트 고분에서 기록이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허브다. 17세기 북미 지역에서는 예배의 지루함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 딜 씨앗을 먹었다는 데서 ‘교회의 씨’라고 불렸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진다.
딜은 이름이 가진 뜻처럼 진정 효과가 뛰어나다. 항우울제 성분이 있어 과거에는 가슴앓이 치료제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딜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신체 호르몬 생성을 촉진시켜 불면증 개선에 도움을 주고 기침과 딸꾹질을 진정시켜준다. 특히 생리통 완화와 불규칙한 월경 주기 개선에 효과적이어서 여성 건강에 이롭고 칼슘과 비타민 C 함량이 높아 치아와 뼈 건강에도 탁월하다.
딜 향은 감초와 비슷하고 단맛이 난다. 가장 대표적으로 쓰이는 건 피클을 만들 때다. 오이피클에 딜을 넣으면 맛이 배가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해산물과도 잘 어울리는데 특히 연어 요리에 넣으면 맛을 돋보이게 해준다. 샐러드, 샌드위치, 수프 등 어디에 넣어도 적은 양으로 맛의 퀄리티를 높여준다. 단, 열을 가하는 요리에는 식탁에 내기 바로 전에 넣어야 오래도록 향이 유지된다.
허브 관리 & 활용법
필요한 만큼, 주기적으로 수확하기
허브를 꾸준히 잘라주면 성장을 촉진시켜 계속 자란다. 다 자라 꽃을 피우지 않고 발달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때 허브의 풍미와 향은 배가된다. 하지만 과하게 자르면 시들거나 죽을 수 있으니 필요한 만큼씩 자주 자르는 게 좋다. 만약 꽃이 피었다면 잘라줘야 성장 단계를 유지할 수 있어 더 오래도록 신선하고 향기로운 허브를 맛볼 수 있다.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말린 허브
허브를 말리면 오래 두고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먼저 허브는 물로 씻어 물기를 없애준다. 건조망이나 채반에 담거나 적당량씩 묶어 거꾸로 매단 후 말리면 되는데, 바람이 잘 통하고 습기가 없는 서늘한 그늘에 두는 게 좋다. 바스락거릴 정도로 바싹 마르면 유리병이나 밀폐용기에 넣은 후 직사광선을 피해 보관한다. 말린 허브는 요리뿐 아니라 차로 마시거나 면주머니에 넣어 방향제로도 제격이다.
풍미 가득한 허브 소금 만들기
로즈메리, 타임, 이탈리안 파슬리, 오레가노 등 취향에 따라 고른 허브를 잘게 다진 후 접시에 펼쳐 말린다. 말린 허브와 소금을 절구에 넣어 찧거나 믹서기로 굵게 간다. 용기에 담아 밀봉하고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허브 소금은 수프나 샐러드에 뿌려 간을 맞추거나 바비큐를 할 때 향을 가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