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등산
중년의 전유물은 옛말, MZ세대가 즐기는 힙한 취미로 자리 잡은 요즘 등산 이야기.
중년을 넘어 모두의 취미로
등산이 젊어졌다. 오랜 시간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던 등산이 MZ세대의 새로운 취미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구세대적 행위로 간주됐던 등산이 트렌드의 중심에 우뚝 선 이유는 팬데믹이 가져온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실내 생활이 장기간 이어지다 보니 야외 활동에 대한 욕구가 커졌고, 여기에 건강, 안전, 자연이라는 키워드가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등산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어마어마한 운동량에 아름다운 풍경 감상은 덤. 건강관리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헬시플레저 트렌드에도 딱 맞는 여가 활동으로도 손색없다.
등산은 큰 비용이 들지 않는 편이다. 헬스, 골프, 테니스 등 매월 비싼 강습료를 내야 하는 전문적인 운동에 비해 등산은 튼튼한 두 다리만 있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가까운 곳에 마음만 먹으면 닿을 수 있는 산이 즐비해 진입 장벽이 낮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극대화된 경험을 기대할 수 있는 점도 등산의 매력이다. 자신의 컨디션과 체력에 따라 페이스를 조절하며 오롯이 자신 그리고 자연에 집중하는 시간은 등산이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 남녀노소 불문하고 등산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등산복은 힙하게, 인증은 필수
MZ세대의 소통 창구인 SNS에서도 등산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등산과 어린이의 합성어인 ‘등린이’, 혼자 산에 오른다는 뜻의 ‘혼산’, 산과 인스타그램의 합성어 ‘산스타그램’ 등 등산과 관련된 해시태그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이를 SNS에 올리는 게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인데, 이는 MZ세대의 독특한 특성과도 맞물린다. 원래 운동은 체력 단련을 목표로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운동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다. 즉 운동하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과정에서 즐기는 나를 표현하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 이런 이유로 MZ세대 사이에서는 정상석 앞에서 완등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패션업계의 변화도 감지된다. 그동안 중·장년층의 등산복은 태풍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방수 재질과 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커다란 로고, 형형색색의 화려한 컬러와 획일화된 디자인으로 소위 ‘패션 테러리스트’ 아이템으로 꼽히곤 했다. 하지만 젊은층이 새롭게 유입되면서 등산복 트렌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등산복 같지 않은 등산복이 유행하면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인기를 얻고 있다.
너무 구색을 갖추거나 누가 봐도 등산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는 건 금물. 팬데믹 이후 외출이 줄어들고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유행했던 원마일웨어, 즉 집에서 입는 옷과 바깥에서 입는 옷의 경계를 허문 일상복 트렌드가 등산복에도 적용된 셈이다. 일상복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차림이 오히려 멋스럽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주목받았던 고프코어(Gorpcore) 룩이 대표적이다. ‘고프’는 그래놀라(Granola), 귀리(Oat), 건포도(Raisin), 땅콩(Peanut)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로 아웃도어 활동에서 챙겨 먹는 견과류 믹스를 뜻한다.
코어는 노멀(Normal)과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인 놈코어(Normcore)에서 가져온 것으로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일명 ‘꾸안꾸’를 의미한다. 아웃도어 아이템을 일상복처럼 스타일링해 실용성과 스타일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게 고프코어 룩의 가장 큰 장점. 아웃도어 브랜드뿐 아니라 명품 브랜드도 앞다퉈 고프코어 스타일을 선보일 만큼 인기가 높다.
등산의 재미를 높이는 다양한 활동
혼자 하는 산행도 의미 있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등산을 즐기는 함산(함께하는 산행), 즉 등산 크루(Crew)의 등장도 주목할 만하다. 회원들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 함께 산을 오르는 등산 동호회와 비슷하지만, 뒤풀이 같은 친목보다 산행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둔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 특히 등산을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에겐 등산 크루가 큰 도움이 된다.
초보자에게 적합한 산과 코스를 추천해주고 혼자 도전하기 힘든 산행을 함께하며 앞에서 끌어주고 독려하면서 정상에 닿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특히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할 수 있고,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함산의 장점. 무엇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때그때 참여자를 모집하고 산행이 끝나면 쿨하게 바로 헤어지는 방식은 동호회의 사람 간 관계 맺기나 뒤풀이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오로지 등산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완등 챌린지를 기획해 목표를 달성하면 선물을 증정하거나 정상석에서 찍은 인증샷을 앨범으로 만들어주는 등 동기부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등산 크루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그냥 산을 오르는 것도 즐겁지만 다양한 등산 챌린지에 참여하면 목표 의식도 생기고 하나씩 완등 인증을 남길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지구와 환경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는 등산에서도 친환경 운동을 실천한다.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또는 줍깅을 하기 위해 일부러 산행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산을 오르며 눈에 띄는 쓰레기를 줍는 활동은 건강 증진뿐 아니라 환경보호에도 일조한다는 점에서 등산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이처럼 MZ세대에게 등산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짜릿한 성취감을 누릴 수 있는 등산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