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서 더 좋은 날
한 해의 결실인 오곡백과를 나누고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는 세계의 추석 풍경.
휘영청 둥근 보름달처럼, 중국 중추절
‘가을의 한가운데’를 의미하는 중국의 중추절은 우리나라 한가위와 같이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이다. 법정공휴일이긴 하나 중추절 이후 긴 연휴를 보내는 ‘국경절’이 있어 상대적으로 고향을 찾는 이들은 적다. 중추절은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며 수확에 대한 감사와 내년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달의 여신 ‘창어’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서 유래했다. 이날만큼은 밝고 둥근 보름달을 보며 모든 일이 둥글둥글 원만하게 흘러가고, 가정의 평안과 화합을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중추절을 대표하는 명절 음식으로 보름달 모양의 과자 ‘월병’을 나눠 먹는다. 월병은 찹쌀가루 반죽 안에 팥과 깨, 견과류, 육류와 같은 다양한 재료를 넣어 구운 음식으로, 최근에는 초콜릿이나 열대과일을 비롯해 값비싼 금을 넣어 고가의 선물용으로 주고받기도 한다. 기름지고 달콤한 맛의 월병은 보통 뜨거운 차에 곁들여 먹는다. 월병을 먹는 풍습 외에도 중추절에는 소원을 담은 연등을 밝힌다. 밤하늘에 풍등을 날려 보내거나 등불을 밝힌 배를 강물에 띄운다. 베이징에서는 붉은 화등을 거리마다 걸어두고, 광둥 지방에서는 장대에 다양한 형태의 등을 매달아 두기도 한다.
대만의 중추절 역시 가족이 함께 모여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월병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 이때 월병과 함께 꼭 먹는 과일이 있는데, 포멜로(Pomelo)라 불리는 대만의 자몽이다. 새콤달콤한 과즙이 매력적인 과일로 뻑뻑한 식감의 월병과 곁들이기 좋다. 가족이 함께 모여 바비큐를 해 먹는 것도 대만 중추절의 이채로운 풍경이다.
조상의 영혼을 기리는 일본 오봉
차례를 지내는 우리나라 추석처럼, 일본에서는 양력 8월 15일 오봉(お盆)을 전후해 가족을 만나고 성묘를 한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여름 휴가철에 맞춰 ‘오봉야스미’라 불리는 긴 연휴를 갖는 탓에 많은 귀성 인파가 몰린다. 오봉은 조상들의 정령을 맞이해 극진히 대접함으로써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명절로, 본래는 불교적인 색채가 강했으나 오늘날에는 여러 전통 행사를 즐기는 한여름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오봉이 시작되는 8월 13일 저녁에는 선조들의 영혼이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도록 마중하는 불 ‘무카에비’를 피우고, 16일 저녁에는 밝은 길을 걸어 저승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웅하는 ‘오쿠리비’ 장작불을 태우는 풍습이 있다.
명절 기간에는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육류나 생선 대신 두부, 채소 위주의 음식을 먹고, 오봉 당일에는 알록달록한 화과자와 달 모양으로 빚은 떡 ‘당고’를 먹는다. 특히 제사상에는 오이와 가지로 만든 조형물 ‘쇼료우마’가 빠지지 않는다. 오이와 가지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각각 말과 소 형상을 만드는데, 조상의 영혼이 이승을 오갈 때 편히 이동하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여름 밤하늘을 색색이 수놓는 하나비(불꽃놀이) 역시 오봉의 빼놓을 수 없는 의식으로, 조상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와 더불어 명절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한 베트남 쭝투
베트남의 추석 격인 쭝투(Trung thu), 혹은 뗏 쭝투(tết Trung thu)는 중국의 중추절과 유사하다. 음력 8월 15일에 치러지고, 달에 바치는 제사와 베트남식 월병 ‘빤 쭝투’를 만들어 가족, 이웃들과 선물로 주고받는다. 빤 쭝투는 꽃 모양을 찍어 만든 둥근 모양의 빵으로 달걀이나 돼지고기로 속을 채운 쭝투의 대표 음식이다. 추수를 축하하고 조상을 기리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쭝투는 어린이를 위한 날에 가깝다. 이는 베트남 독립을 이끈 호치민 주석의 연설에서 비롯됐다. 전쟁 등으로 소외된 아이들을 사랑하자는 내용의 연설 이후 쭝투는 아이들이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애정과 관심을 쏟는 날로 변했다. 낮에는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행사와 선물 파는 가게들로 거리가 들썩이고, 밤이 되면 사람들은 잉어 모양의 등불을 든 채 골목 곳곳을 누빈다. 이는 명절날 사람들을 죽이던 잉어 귀신이 밝은 등불을 보고 달아났다는 전설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밝게 뜬 보름달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별을 형상화한 별 모양 등도 자주 보인다. 쭝투의 하이라이트는 사자춤 퍼레이드다. 2인 1조로 짝을 맞춘 아이들이 사자탈을 쓰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흥겨운 북소리에 맞춰 사자춤을 추는데, 많은 인파가 이들을 따라다니며 구경에 여념이 없다. 액운과 잡귀를 쫓는 사자춤이 끝나면, 집주인은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낚싯줄에 돈 봉투를 매달아 전달한다.
추수 감사 기도를 올리는 독일 에른테당크페스트
독일의 추수감사절인 에른테당크페스트(Erntedankfest)는 가족이 함께 모이는 명절이라기보단 수확을 축하하는 마을 축제에 가깝다. 무엇보다 기독교 문화에서 유래된 탓에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 사람들은 축제 기간 동안 교회와 성당을 찾아 기도와 예배를 올리며 신의 가호에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교회의 제단은 가을 추수를 통해 수확한 열매로 장식되는데, 밀로 만든 면류관을 비롯해 제철 과일과 채소, 가을꽃으로 꾸민 제단은 결실의 풍요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오전의 교회 예배가 끝나면 오후에는 춤과 음악, 퍼레이드 등 본격적인 축제 즐기기에 돌입한다.
에른테당크페스트는 10월의 첫 번째 일요일로 정해져 있지만, 포도나 감자, 밀 등 지역별로 수확하는 작물 시기에 맞춰 날짜는 유동적으로 바뀐다. 자연히 지역 특산물에 따라 축제 풍경도 조금씩 다른데, 밀과 각종 수확물을 엮어 꽃과 리본으로 장식한 거대한 화환, 에른테크로네(Erntekrone, 수확의 왕관)는 축제의 상징물로 어느 지역에서나 공통 사항이다. 크고 작은 축제 가운데 7월부터 10월까지 와인 재배 지역에서 열리는 포도 수확 축제인 빈처페스트(Winzerfest)와 10월의 뮌헨 옥토버페스트가 유명하다.
수확의 결실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신의 가호에 감사를 표하는 날인 만큼, 특별한 음식보다는 소박한 음식으로 식탁을 채운다. 새롭게 수확한 감자와 새로 만든 소시지 등 그해 거둔 작물로 음식을 해 먹으며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는 데 의의를 둔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추수감사절
북미 지역의 전통 명절이자 국경일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17세기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신께 수확에 대한 감사를 올리는 축제에서 유래했다. 미국은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 캐나다는 10월 둘째 주 월요일이 추수감사절이다. 캐나다의 추수 시기가 더 이른 탓에 시기만 다를 뿐, 미국과 캐나다의 추수감사절 풍경은 대동소이하다. 민족대이동이라 할 만큼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담백한 칠면조구이와 새콤달콤한 크랜베리 소스, 으깬 감자와 호박파이 등 풍성한 저녁 식사를 즐기는 것은 추수감사절의 오랜 전통이다. 거대한 칠면조는 전날 밤부터 공들여 구워야 속까지 익힐 수 있는데, 칠면조 안에 허브 양념으로 맛을 낸 빵 조각을 채워 넣는 스터핑도 별미다.
칠면조를 먹는 풍습 때문에 추수감사절을 두고 ‘터키 데이(Turkey Day)’라고도 부르는데, 이날 하루 동안 미국에서만 약 4,500만 마리가 소비될 정도다.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지 않아도 될 칠면조 사면 이벤트는 백악관의 연례행사로 재미난 볼거리다. 캐나다인의 추수감사절 식탁에는 버터 타르트도 빠지지 않는다. 바삭한 페이스트리 속에 버터와 메이플시럽, 견과류와 건포도 등을 넣어 달콤한 맛이 디저트로 일품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가족들은 약속이나 한 듯 텔레비전 앞에 모여 미식축구 경기 중계를 보며 대화를 나누거나 단잠에 빠진다. ‘왜 사람들은 추수감사절 식사 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졸까’에 대한 재미난 분석 기사가 실릴 만큼, 미국 어느 가정에서나 볼 법한 명절 풍경이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은 득템 찬스로 불리는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다. 상점들은 앞다퉈 파격적인 할인 판매에 돌입하는데, 1년 매출의 70%에 달하는 소비가 이날 하루 동안 이뤄진다. 요즘은 온라인 쇼핑 사이트들이 블랙 프라이데이 다음 월요일까지 대대적인 세일을 진행하는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에 관심이 쏠리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