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과일의 세계 과일 전문 MD 강야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재미있는 과일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시간. 인생의 3분의 1을 오로지 ‘과일’만 바라본 강야곱 MD를 만나 예쁘고 맛 좋은 과일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었다.
과일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다
우리나라의 연간 과일 수입액은 약 1조7,000억원. 세계 10위 안에 들 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만큼 과일을 좋아하고 자주 먹는 우리나라에서 ‘과일 MD’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삼성웰스토리에서 과일 업무를 담당하는 강야곱 MD는 17년째 오로지 ‘과일’만 바라본 전문가다.
“직업이 과일 MD라고 하면 잘 모르거나 생소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MD는 Merchandiser의 약자로 상품 기획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인데요. 흔히 바이어(Buyer)라고도 합니다. 상품의 기획부터 상품화, 출시, 홍보 및 마케팅까지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는데, 그 대상이 과일인 거죠.”
대학에서 영어와 무역을 공부한 강야곱 MD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글로벌 청과회사인 돌(Dole)코리아에서 직장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에는 단순히 외국계 기업에 가고 싶다는 마음에 들어간 회사에서 과일 인생이 시작됐다는 강야곱 MD.
“마트에서 보던 과일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 일을 하면 할수록 과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죠. 그렇게 과일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17년째인데요. 여전히 일이 재밌고 즐겁습니다.”
농장과 소비자를 잇는 징검다리
우리가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을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배경에는 과일 MD의 숨은 노력이 크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전 세계 어느 국가와 비교하더라도 과일을 보는 눈과 기준이 높다. 그러나 육안으로는 얼마나 당도가 높은지, 맛은 좋은지 그 속을 가늠할 수 없어 과일 MD에게 풍부한 경험을 통한 전문성은 필수다. 이런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강야곱 MD는 국내외 과일 산지를 돌며 직접 발로 뛰는 노력을 이어왔다.
“미국 출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오렌지, 레몬, 아몬드 농장을 거쳐 시애틀 근처의 체리 농장까지 다녀왔죠. 일주일 동안 직접 운전해서 이동했는데, 그 거리가 1,300km였어요. 숙소를 잡지 못해 차에서 자기도 했고,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사슴 때문에 놀라기도 했죠.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농장 규모와 끊임없이 펼쳐진 광야도 기억에 남고요.”
과일 소싱을 위해 여러 농장을 다니다 보면 가장 먼저 농부가 흘린 땀과 온 마음을 다해 키웠을 정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키운 과일을 소비자에게 최상의 품질로 제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된다는 강야곱 MD. 직접 수입한 체리를 홈쇼핑 생방송에서 판매했던 경험도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다.
“과일은 날씨와 작황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판매를 위해 생방송 일정을 잡아놨는데, 당시 비가 많이 와서 수확량이 급감했죠. 방송을 취소할 순 없는 상황이라 어렵게 물량을 확보해 진행하기로 했는데요. 담당자인 제가 직접 소비자에게 과일을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는 PD의 제안에 난생처음 홈쇼핑 생방송에 출연했죠.”
당시 홈쇼핑에서 판매할 상품은 체리였다. 다른 방송에서도 체리는 종종 판매되던 상품이라, 뭔가 차별화된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우리가 알고 있는 빨간 체리 외에 노란 체리를 추가해 특별 구성 상품을 준비했다.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다소 생소한 노란 체리에 대한 관심과 직접 체리를 공수한 과일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이 더해져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이후 오렌지, 블루베리, 망고 등 다른 과일 상품 판매도 이뤄져 몇 번 더 생방송 출연을 해야 했다.
“무척 긴장되고 떨렸지만, 어렵게 공수한 좋은 과일을 소비자에게 소개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레이니어’라는 노란 체리는 6~7월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과일인데요. 부드러운 식감과 높은 당도가 매력적이에요.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재배에 성공했으니 더 많은 소비자가 맛보고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알고 보면 ‘힙’한 요즘 과일
최근 SNS에서는 ‘신비복숭아’가 열풍이었다. 신비복숭아를 맛본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졌기 때문이다. 천도복숭아처럼 생겼지만, 과육의 색과 맛이 백도처럼 희고 말랑말랑해 신비롭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끈 샤인머스캣에 이어 납작복숭아, 플럼코트, 설향딸기 등 매년 새로운 품종의 과일이 등장해 소비자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강야곱 MD가 홈쇼핑에서 소개했던 노란색의 레이니어 체리도 ‘빙’과 ‘밴’이라는 두 가지 버찌를 교배해 만든 새로운 품종으로 SNS에선 ‘힙’한 과일로 통한다.
“새로운 과일이 계속 등장하는 건 소비자의 요구 때문이죠. 특히 최근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자층이 두터워졌어요.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징이 과일 품종에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새로운 과일 품종을 개발하거나, 같은 과일이라도 당도를 더욱 높이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과일 품종개량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신품종 개발 뱡항은 소비자의 트렌드와 시대적 현상을 반영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과일의 소형화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혼자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양이 문제가 되자, 기존 과일을 작게 만들기 시작한 것.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미니 사과와 미니 참외다.
“최근 신선식품에서 ‘편리성’이 화두인데요. 밀키트처럼 쉽고 간편한 제품을 많이 선호하잖아요. 그래서 컵과일의 인기가 높아요. 일일이 과일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돼 간편하고, 한 번에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양이 장점이죠. 소비 트렌드에 따라 과일 시장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한민국 과일 브랜드화를 꿈꾸며
강야곱 MD는 올해 상반기에만 태국 출장을 두 번 다녀왔다. 삼성그룹 최초로 우리나라 배를 태국에 수출하게 된 것. 태국은 과일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품종, 풍부한 생산량을 자랑하는 국가이기에 이곳에서 우리나라 과일이 인정받았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 과일 품질은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데요. 이번 배 수출을 계기로 보다 다양한 품목을 더 많은 국가에 수출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미국과 유럽, 중동 지역까지 거래선을 발굴해 우리나라 과일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게 목표입니다.”
강야곱 MD에게는 또 한 가지 목표가 있다. 세계적인 청과기업 돌(Dole), 델몬트(Del Monte), 썬키스트(Sunkist), 제스프리(Zespri)처럼 우리나라 과일의 브랜드화다.
“오렌지 하면 썬키스트, 키위 하면 제스프리가 떠오르는 것처럼 우리나라 과일도 브랜드가 필요합니다. 가방이나 신발을 고를 때 브랜드를 보는 것처럼, 과일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보다 작은 뉴질랜드는 ‘제스프리’라는 브랜드로 키위 수출 세계 3위 국가로 우뚝 섰죠. 브랜드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커요. 우리나라 과일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에도 과일의 브랜드화가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오로지 ‘과일’만 바라보고 달려온 강야곱 MD에게 과일은 단순한 일을 넘어 더 큰 의미를 품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만의 과일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도 매우 가치 있는 일일 터. 훗날 국내외 마트에서 자신이 만든 브랜드 상품이 진열대에 놓여 있고, 고객이 앞다퉈 구매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과일의 중요성과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비타민이 약이라면, 과일은 신이 만든 비타민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선물이나 다름없죠. 과일이 건강에 좋다는 건 다들 잘 아실 거예요. 특히 제철 과일은 보약이나 다름없는데요. 매일 조금씩이라도 과일을 드시면서 건강도 챙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