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여행법
오토바이 타고 전국을 누비는가 하면, 기타 하나 메고 떠난 유럽에서 버스킹 공연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여행길에 오른 두 사람을 만났다.
기타 치고 노래하는
여행 크리에이터 박기명
학창 시절, 친구들 앞에 나가 발표하며 진땀 흘렸던 기억 하나쯤은 누구나 다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건 매우 긴장되고 떨리는 일. 하물며 노래를 해야 한다면? 피할 수 있다면 반드시 피하고 싶은, 불운과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노래’가 너무 좋았던 박기명 작가는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렵지 않다.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노래가 닿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좋아하는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노래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점점 노래 부르는 게 좋아졌고, 스트레스도 풀리는 기분이었죠. 이후 독학으로 기타를 연습하며 싱어송라이터를 꿈꿨습니다.”
친한 형과 기타 듀오를 결성해 버스킹에도 나섰다. 작은 앰프 하나와 기타만 들고 사람이 모일 만한 곳이면 자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군 입대를 앞두고는 전국 버스킹 여행길에 올랐다. KTX 내일로 티켓을 끊어 약 보름 동안 전국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이면 어김없이 기타를 꺼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전남 순천만에 위치한 용산전망대. 순천만습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용산전망대에 가려면 생각보다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데, 햇볕 쨍쨍한 여름날 기타를 메고 힘겹게 오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힘들게 오른 용산전망대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날 관광객이 정말 많았거든요. 모두가 하나같이 즐거워하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시더라고요. 벅찬 감동과 함께 자신감을 얻었죠. 그때 받았던 좋은 기운과 행복했던 기억이 유럽 여행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기타 메고 유럽으로
유럽 여행을 가야겠다고 다짐한 건 군대에서였다.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이 넘치던 군대 선임의 영향을 받아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중 하나가 코너 우드먼의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였다. “운명처럼 그 책을 만났어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우다니, 여행으로 그렇게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죠. 그렇다면 나도 유럽 일주로 음악을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여행 경비는 전역 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300만원이 전부. 숙박은 에어비앤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카우치 서핑’을 통해서 해결하기로 했다. 카우치 서핑은 여행자가 잠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뜻하는 말이다. 현지인이 카우치, 즉 숙박을 제공하면 매칭을 통해 여행자가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다. 무료인 데다가 현지의 문화를 보다 빨리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호스트에게 리퀘스트(Reqest)를 보내도 거절당하기 부지기수라는 점. 그럼에도 경비를 아끼려면 방법이 없었다. 될 때까지 해보는 수밖에. 최소한의 여행 경비와 배낭 하나, 그리고 기타를 메고 첫 여행지 영국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였어요. 과연 내가 뮤지션으로서 가능성이 있는지,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기계를 좋아해서 공대에 진학했고,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음악을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제 자신을 시험해보는 여행이었어요. 걱정이 앞섰지만 설레는 마음이 더 컸죠.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니까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런던 브리지에서의 첫 버스킹 공연은 대실패였다. 유럽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니까, 더 많이 호응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길거리 공연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다 보니 되레 무관심한 경우가 많았다. “너무 긴장한 탓도 있어요. 외국인 앞에서 팝송을 부르는데 가사를 까먹지 않을까 두려웠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소심했던 거죠.” 외국이니까 팝송을 부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고, 그래야 주목받을 거라 생각했다. 실패의 원인을 생각하던 중, 런던 호스트의 한마디가 귀에 꽂혔다. “넌 한국인이니 한국어로 노래를 해봐. 남들과 똑같이 할 필요 없으니!”
이후 버스킹에서는 준비한 팝송을 한국어로 번안하거나, 아예 한국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레퍼토리가 쌓이기 시작했고,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도 점점 늘어났다. 베네치아에서는 와인과 맥주를 파는, 조그마한 펍(Pub)에서 공연할 기회도 생겼다. “존 레전드(John Legend)의 노래 ‘All of me’를 번안해서 불렀어요. 워낙 유명한 노래니까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었죠. 저 멀리 뒤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공연을 보더라고요. 노래가 끝난 뒤에는 기립박수도 받았죠.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어요.”
여행을 통해 마주하는 진짜 내 모습
길고 짧은 것을 떠나 여행은, 반드시 우리에게 무언가를 준다. 그것은 물음에 대한 정답일 수도, 새로운 숙제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여행을 통해 직접 부딪히고 해결하고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나 자신, 진짜 내 모습에 대해서도. 뮤지션과 엔지니어, 두 가지 길 위에서 고민했던 그는 여행을 통해 답을 찾았을까, 새로운 숙제를 얻었을까. “음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시작된 여행이었어요. 11개국에서 약 40회의 버스킹 공연을 했고, 좋았던 순간도 많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명확해진 건, 제가 기계를 정말 좋아한다는 거였어요. ‘음악’이란 답을 얻고 싶었는데 음악을 ‘통해’ 답을 얻은 거죠. 기계를 좋아하는 저의 진짜 모습을요.”
만약 버스킹을 통해 꽤 많은 돈을 벌었다면 또 어땠을지 모르겠다면서도,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지금의 박기명 작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 엔지니어의 길을 걷고 있고, 여전히 기타와 노래를 사랑한다. 재작년에는 유튜브 ‘쏭지니어 기명’ 채널을 오픈해 독자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며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여행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그의 얘기처럼, 많은 사람들이 직접 부딪히고 느끼며 더 많은 길을 열어갈 수 있기를. 그것이 꼭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닐지라도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박기명 작가는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