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떠나는 이유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지만 또다시 길 위에 서 있는 이유, 여행의 의미에 대하여.
인생이 밥이라면 ‘여행’은 달콤한 디저트 같다. 든든히 밥을 먹어도 케이크 한 조각 밀어 넣어야 헛헛한 마음이 비로소 채워지는 것처럼. 굳이 먹지 않아도 되고 먹고 나면 후회할 걸 알면서도, 달콤한 디저트의 유혹을 뿌리치는 건 언제나 힘들다. 여행이 그렇다. 굳이 가지 않아도 크게 달라질 게 없고, 막상 집 떠나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돈과 시간을 들여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제각각이어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기에.
유독 여행을 가면 밤새 단 한번도 깨지 않고, 이른바 ‘꿀잠’을 잤다. 매일 밤마다 괴롭혔던 불면증이 여행만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싹 없어졌던 것. 호텔의 푹신한 침대와 깨끗하고 몸에 착 감기는 침구 덕분인지, 아니면 하루 종일 구경하고 돌아다니느라 지친 탓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턴가 여행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꿀잠’이 되어버렸다.
생각해보면, 여행에서는 일상의 근심과 고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당장 내일의 스케줄과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고, 쌓아둔 집안일로부터도 해방이다. 전기 코드는 뽑고 나왔는지, 어제 돌린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냈는지, 냉장고 속 우유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여행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늘 하루를 신나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을 먹어야 할지 생각하는 것뿐. 오로지 ‘오늘’에 집중하다 보면 어제의 근심도, 내일의 걱정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떠나기를 희망한다. 각자의 이유와 의미를 품고 인생의 달콤한 일탈을 꿈꾸며 오늘도 여행길에 오르고 있다.
여행하는 인간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인간은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런 본능이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는 것. 초기 인류의 사냥 방식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칼라하리사막의 한 부족은 사냥감의 흔적을 따라 무려 8시간이나 사냥감을 쫓았다고 한다. 사냥감이 탈진하여 무릎을 꿇고 주저앉을 때까지 말이다. 인간은 치타처럼 빠르지도 않고,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은 없었지만, 엄청난 이동 능력과 지구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인간은 걷고 뛰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면서 진화해왔다. 과거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그린란드와 북극까지 갔고, 몽골에서 출발해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마야와 잉카, 아즈텍 문명을 일구지 않았는가. 인류의 DNA에는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욕망이 새겨져 있다는 마르셀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 본능, 어쩌면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자 문화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세계 어떤 곳이든 내 집 소파에서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는 세상이다. 머리 아프게 일정을 짜지 않고, 힘들게 발품을 팔지 않아도 클릭 한번으로 전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감상할 수 있다. 며칠씩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고, 큰 돈을 들여 비행기표와 관광지 티켓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오래전, 미래학자들은 인류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여행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여행자 통계를 살펴보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여행길에 오른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 찾아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 하기에 떠난다. 우리는 호모 비아토르, 여행하는 인간.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호모 비아토르는 짐을 꾸리고 길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여행이 주는 깨달음
낯선 세상은 늘 긴장으로 가득하다. 처음 마주하는 풍경, 처음 가는 길, 처음 해보는 경험…. 때로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고, 왠지 모를 도전 정신이 솟구치기도 한다. 여행은 낯선 세상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떠난 여행에서 겪게 되는 모든 일은 설렘과 두려움 그 사이에서 묘한 희열을 주기도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야말로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데, 우리는 왜 자꾸 낯선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는 걸까. 고생스럽고 불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막상 가고 나면 그제서야 ‘집 떠나면 고생’이란 걸 깨닫지만 이를 망각하고 또다시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아이러니. 만약 떠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여행 없이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처음 가본 곳에서 길을 헤맬 일도 없고 낯선 문화에 당황할 일도 없으며, 예기치 못한 변수로 마음고생할 일도 없다. <여행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에서 손미나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를 통해 “여행이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다름을 알고 인정하며, 몰랐던 자신의 뒷모습을 마주하며, 다시 돌아올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낯선 세상을 마주하며 얻는 깨달음도, 긴 여정 끝에 돌아와 느끼는 내 집의 편안함과 일상의 소중함도 알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은 때론 버겁게 느껴진다. 이미 지난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한다. 현재를 살면서도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후회와 불안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여행은 ‘해방’에 가깝다. “여행은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는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여행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비축하는 일일지도. 그래서 우리는 하염없이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그리하여 오늘을 좀 더 근사하고 힘차게 살아내기 위해.
돌아올 곳이 있기에 떠날 수 있는 것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그 어디에도 ‘자유롭게’ 갈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늘길이 막히면서 항공편도 줄어들었고, 그나마도 해외에 나갔다 오려면 꼼짝없이 보름간의 자가 격리 기간을 감내해야 했다. ‘어디론가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었던가. 팬데믹으로 묶였던 발이 풀리자, 너나 할 것 없이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어디든 상관없었다. 휴식, 치유, 힐링, 행복…. 떠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언제든 여행할 수 있다는 ‘자유’를 얻었음에 많은 사람들이 안도했다.
물론 모든 여행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꼭 맛보고 싶었던 식당이 문을 닫았거나 차를 놓쳐 일정이 어그러질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겨 당황스러운 순간을 마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시련’이라고 하지 결코 ‘실패’라 하지 않는다. 여행에는 실패란 없다. 예상치 못한 시련과 좌절을 겪는다 해도,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주어진 자유. 어디로 갈지, 또 무엇을 볼지 천천히 계획을 세워볼 차례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다시 돌아올 곳이 있고, 살아갈 일상이 있고, 언제든 다시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돌아올 곳이 있는 한, 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