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식물로 아름다운 그곳
자연의 아름다움과 나라마다 식물을 향유하는 문화도 경험할 수 있는 세계의 정원들.
정원의 정수, 영국 큐 왕립 식물원
런던의 남서쪽 리치먼드에 자리한 큐 왕립 식물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식물원입니다. 1759년 오거스타 공주가 그녀의 사유지 3만5,000m²를 식물원으로 지정한 이후 여러 차례 확장과 통합을 거쳐 역사에 길이 남을 정원이 됐습니다. 윌리엄 켄트, 찰스 브리지먼 등 당대 유명 예술가들이 정원 곳곳에 건물을 지었습니다. 1840년 일반인에게 공개됐고, 200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다양한 식물과 자료를 보유하며 식물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큐 왕립 식물원은 영국의 풍경식 정원을 대표합니다. 나무 사이, 연못 근처 등에 마련된 벤치에서 언제나 쉬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 채의 건물은 저마다 특색을 갖추고 있는데요. 큐 왕립 식물원에서 가장 유명한 팜 하우스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열대식물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실제 열대우림과 비슷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어 사시사철 온도와 습도가 높죠. 빅토리아 유리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템퍼러트 하우스는 전 세계 온대성 식물의 집합소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 식물이 즐비하고, 오린저리 메인 전시관에서는 큐 가든의 역사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습니다. 큐 가든의 온실을 차례대로 구경하고 나면 전 세계의 온실을 둘러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광활한 식물원 전체를 조망하고 싶다면 18m 높이의 전망대 엑스트라타 트리톱 워크웨이에 올라도 좋습니다. 산업혁명을 선도하며 골치 아픈 환경문제와 생태계 파괴라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던 영국은 자연 보존과 도시 정원화에 앞장서는 나라가 됐습니다.
정원 속의 도시, 싱가포르 보태닉 가든
싱가포르 보태닉 가든은 약 328m² 부지에 3,00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는데요.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보태닉 가든은 1859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정부가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적인 식물원이자 연구기관, 휴양 및 문화 공간, 체험 교육장 등 복합 공간으로 예술 작품처럼 잘 다듬어진 정원은 식물의 상태와 공간 배치 측면에서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울창한 수목을 즐기고, 거대한 호숫가의 잔디밭에 누워 평화로운 한때를 즐겨도 좋습니다.
보태닉 가든은 생강정원, 치유정원, 잎사귀정원 등 다양한 주제의 정원을 갖추고 있는데요. 가장 인기가 많은 장소는 국립난초정원입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난초정원으로 2,000여 종의 난초가 무려 6만 포기에 이르는 곳입니다. 식물원 내에서 유일하게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둘러보고 나면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형형색색의 난초가 피운 꽃은 자연이 만들어낸 색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신비롭고 우아합니다. 세계적인 유명 인사의 이름이 붙은 명예의 전당도 볼거립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넬슨 만델라, 리콴유 총리 등의 이름을 딴 난초가 전시돼 있습니다.
화가의 영감, 프랑스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
클로드 모네는 말년에 지베르니에서 머물며 30여 년간 무려 250점이 넘는 ‘수련’ 연작을 남겼습니다. 인상주의를 대표한 그는 일찍이 성공해 명성과 부를 얻었고, 파리 근교에 집을 짓고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모네는 화가이자 정원사였죠.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면 지베르니에 닿습니다. 이곳에는 모네 가족이 살았던 집과 작업실, 그리고 모네가 평생을 가꾸고 캔버스에 담아낸 정원이 자리합니다. 짙은 초록색 창문틀이 눈에 띄는 모네의 집 주변은 온통 꽃과 풀, 크고 작은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네모네, 팬지, 장미, 튤립 등 각양각색의 꽃이 봄부터 가을까지 쉴 새 없이 피고 집니다. 일본풍의 빨간 다리가 연못을 가로지르는 물의 정원의 백미는 역시 수련입니다. 센 강변에서 물을 끌어와 조성한 연못에 단아하게 꽃을 피운 풍경은 모네의 그림과 놀랍도록 흡사합니다. 연못가의 거대한 나무는 햇빛을 가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물 위에 피어난 연꽃은 요정이 찾아올 것처럼 신비롭습니다. 모네는 ‘빛의 화가’라는 수식어를 증명하듯 이곳에서 하루 종일 풍경을 바라보며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연못과 수련의 풍경을 포착했습니다.
“내가 유일하게 잘 하는 두 가지는 그림 그리는 일과 정원 일이다”라고 스스로 말했을 만큼 지베르니 정원은 손수 꽃의 배치와 식물을 심는 시기까지 챙겼던 모네의 애정이 듬뿍 담긴 곳입니다.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 쾨켄호프 정원
네덜란드는 꽃의 나라입니다. 실제로 전 국토의 3%가 꽃 재배지일 만큼 여러 종류의 꽃을 생산하고, 수출하고 있는데요. 매년 3월 말부터 5월까지 쾨켄호프 정원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32만m²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정원에는 700만 송이의 튤립과 수선화, 히아신스, 달리아 등의 꽃이 피어납니다. 수많은 종류의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꽃물결은 쾨켄호프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입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도시 리세에 자리한 쾨켄호프는 15세기에 한 백작 부인의 사유지였습니다. 귀족들의 파티 음식 준비를 위해 허브와 야채 등을 재배하고, 사냥터로 이용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부엌이라는 뜻의 ‘쾨켄(Keuken)’과 정원을 의미하는 ‘호프(Hof)’라는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지명입니다. 1949년 당시 리세시의 초대 시장인 람부이가 이곳을 화훼정원으로 가꾸고, 이듬해부터 튤립축제를 열었고 이것이 70년이 넘은 축제로 이어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꽃 축제답게 이 시기에 네덜란드를 방문하는 상당수의 관광객이 쾨켄호프를 찾습니다.
색깔별로 줄을 맞춰 피어난 꽃들 너머 빙글빙글 돌아가는 풍차의 조합은 누구나 그려온 네덜란드의 풍경입니다. 튤립 말고 코가 얼얼할 만큼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히아신스와 연못가에 피어난 수선화 등 여러 종류의 구근식물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역사정원, 수상정원 등 테마별로 꾸며진 여러 개의 정원과 퍼레이드용 수레와 자동차를 꽃으로 장식해 행진하는 꽃차 퍼레이드 역시 큰 볼거리입니다. ‘유럽의 봄은 쾨켄호프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가장 아름다운 봄의 한때를 쾨켄호프 정원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